불혹(不惑)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by 이제이

“불혹(不惑)”이라는 전통적 의미와는 상반되게, 혼란과 성장이 뒤섞인 “40 춘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40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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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0대


“불혹이라지만, 여전히 궁금하고 여전히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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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반의 그녀 – 혜진 (41세, 치과위생사)


“나는 이제 좀 알 줄 알았어, 근데 또 모르겠는 게 생겼네.”


혜진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출근 시간보다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유치원 다닐 때는 몰랐던 ‘학교 엄마 사회’라는 생경한 세계에 적응하느라 자주 속이 쓰린다. 20대에 결혼했고 30대엔 아이 키우고 일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달려왔다. 그래서 40이 되면 뭔가 좀 편해지겠거니 했다. 그런데 편하긴커녕,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든다.


어느 날 거울을 보며 말했다.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요즘 나?”


아이를 재우고 나서 뒤늦게 EBS 방송에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찾아본다. 때로는 인문학, 때로는 뇌과학, 가끔은 철학 강의. 그러다 작은 독서모임에도 가입했다. 그녀는 말한다.


“40대가 되고 나니, 남 눈치 보다 내 안을 보게 돼요. 겁나긴 해도, 이게 진짜 나를 찾는 시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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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반의 그 – 민석 (43세, 스타트업 운영자)


“망해도 한 번은 다시 해봐야 하지 않겠어?”


민석은 번번이 ‘될 것 같은데 안 되는’ 창업을 반복하며 어느덧 40대를 맞았다. 부모님은 아직도 그에게 안정적인 직장을 권한다. 친구들 중 몇은 벌써 2층 집을 장만하고, 연금 펀드도 운용하며 ‘인생의 중반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그는 속으로 ‘나는 뭔가 잘못 살아온 걸까’ 반문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단 낫잖아. 그렇지?”


밤새 개발자와 메신저로 기능을 조율하고, 다음 날엔 투자사 미팅에 나간다. 쉰 살까지 세 번은 더 망할지도 모른다고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민석은 지금이 제일 좋단다.


“스무 살엔 몰랐어요. 서른 땐 무서웠죠. 근데 마흔이 되니까 망가질 각오가 생기더라고요. 그게 용기인지 무모함인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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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반의 그녀 – 연주 (45세, 경력단절 7년 차, 재취업 준비생)


“다시 뭔가 시작할 수 있을까?”


연주는 결혼 후 육아에 전념하다 7년째 ‘경력단절 여성’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여유가 생기자 문득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30대 초반에 쌓았던 HR 관련 경력은 이미 너무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력서를 쓰다 말고 울컥 눈물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라고 능력이 없던 건 아닌데… 다 지나버렸어.”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재취업 교육에 등록했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색하게 커피를 마시며 자기소개를 반복했다. 그 속에서 자신처럼 ‘지금이라도 뭔가 해보고 싶은’ 여성들을 만났다. 그들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고, 동지가 되었다.


“마흔다섯이에요. 아직 젊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도요, 한편으론 절박해요. 하지만 하루하루 다시 땅에 뿌리내리는 기분이에요. 제가 조금씩 살아나는 걸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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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중반의 그 – 상훈 (46세, 교사)


“아이들은 여전히 예쁘지만, 나는 이제 무너질 것 같아.”


상훈은 고등학교 국어 교사다. 20년 넘게 교단에 있었지만 요즘은 교실 안이 점점 낯설게 느껴진다. 학생들과의 거리, 학부모의 민원, 자꾸 바뀌는 교육 정책… 어느 날은 수업을 마치고 나서 한참을 교무실 창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불혹이라고요? 저는 점점 더 헷갈려요. 나의 가르침이 이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그는 요즘 작은 위안을 시와 글쓰기에서 찾는다. ‘나에게 수업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이 길을 택했는가’라는 질문을 하루 한 줄로 적어 내려간다.


“마흔 넘으면 철이 드는 게 아니라, 그 철조차 무게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 무게가 삶의 맛이란 것도 알아버렸어요. 그래서 이제는, 예전보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사람을 대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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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후반의 그 – 지우 (49세, 이혼 3년 차, 1인 가구)


“지금도 나를 처음 사는 것처럼 낯설어요.”


지우는 3년 전 이혼했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직장도 오래 다닌 곳을 그만두고, 1년 전부터 동네에서 작은 공방을 운영 중이다. 손으로 흙을 만지는 시간이 가장 마음이 편하다.


“이혼하고 나니까, 사람들이 다 지나가는 말을 하더라고요. ‘어쩌다 그런 선택을…’ 근데요, 그 선택 덕에 내가 다시 숨 쉬는 법을 배웠어요.”


공방엔 하루에도 몇 명씩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30대 젊은 엄마부터 60대 시니어까지. 그들과 흙을 만지며 오가는 대화 속에 지우는 때때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모두, 살아내느라 참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이따금 SNS에 짧은 글을 올린다.

“49세, 오늘도 처음 살아보는 하루. 어색하지만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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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불혹,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공자는 “마흔에 미혹되지 않았다”라고 했지만, 오늘날 마흔은 또 다른 ‘첫 번째 봄’이 된다.

질문이 많아지고, 방향을 다시 틀어야 하며, 관계는 더 복잡해진다.


누군가는 ‘다시’ 시작하고,

누군가는 ‘처음’으로 돌아가며,

누군가는 여전히 ‘중간’에 있다.


‘불혹’은 고요한 나이가 아니라,

세상의 소리보다 자기 안의 소리를 더 듣고자 애쓰는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40대라는 계절을 40 춘기(春期)라 부른다.


꽃이 피기 전, 땅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씨앗처럼,

불안하지만 생명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이들.


그들이 바로 우리다.

그리고 우리는 묻는다

잘하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