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빌언덕

by 이제이

우리 집은 여섯 남매가 함께 자란, 참으로 북적이고 시끌벅적한 집이었다. 부모님은 늘 바쁘셨고, 그 빈자리를 한없이 넓은 품으로 채워주신 분은 할머니셨다.

나는 여섯 남매 중에서도 유난히 예민한 아이였다. 잠들기 힘들어 밤새 뒤척이는 나를, 할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조용히 업어 주셨다. 곱지도 않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접은 채, 한밤중의 거북이처럼 등을 내어주셨다. 잠든 아이가 깨지 않도록, 한 번도 허리를 펴지 않고 그대로 밤을 새우셨다.

그 시절의 나는 그 사랑을 알지 못했다. 그냥 따뜻했고, 그냥 편안했다. 하지만 우리 막내가 태어났을 때, 나는 그제야 할머니의 ‘구부정한 잠’을 눈으로 보았다.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바닥에 짚고, 그 위로 조심스럽게 아이를 업고 계셨다. 말 그대로 등껍질이 올라온 거북이 같은 자세였다. 그 자세로 주무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한 폭의 기도처럼 느껴졌다. 숨결 하나에 담긴 깊고 조용한 사랑이, 그때서야 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우리 여섯 남매는 그렇게 자랐다. 말보다 더 큰 사랑 속에서, 눈짓과 손길로 전해지는 온기를 먹고 자랐다. 어느덧 우리는 하나둘씩 세상 속으로 나아갔고, 할머니의 손길이 분주하던 거실과 주방에는 조용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 고요를 대신 채운 건 집안일을 돕는 기계들, 그리고 할머니와 그 기계들 사이의 ‘대화’였다.

어느 월차 날, 오랜만에 낮 시간 집에 머물며 할머니와 이런저런 시간을 보냈다. 그때였다. 세탁기가 마지막 헹굼을 알리며 ‘삐뽀 삐뽀’ 소리를 냈다. 섬유유연제를 넣으라는 신호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소리를 들었지만, 할머니는 활짝 웃으시며 말했다.

“피죤, 피죤~ 오야 간다~~ 재촉 마라 아가~~”

마치 기계가 할머니를 부르고, 할머니가 대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으며 물었다.

“할머니, 그거 삐뽀 소리잖아. 그게 피죤이야?”

할머니는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웃으며 대답하셨다.

“잉~ 피죤 달라고 부를 때 세탁기가 피죤피죤 안허냐~ 귀여워서 얼른 간당께~”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세탁기의 소리에도 사랑이 묻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에 익숙해진 사람은, 기계조차 친구처럼 대할 수 있다는 것을.

할머니는 나에게 세상의 언어보다 먼저 온기를 알려주신 분이다. 사람의 마음은 말이 아니라 손끝과 등허리로도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할머니를 통해 배웠다.

세상은 바쁘고, 사람들은 점점 말이 많아진다. 하지만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말은, 할머니가 세탁기에 하시던 대답이다. “오야 간다~ 재촉 마라 아가~”

그 한마디에 담긴 느긋함과 사랑, 배려와 유쾌함은 지금도 내 마음 한쪽에서 나직이 울린다. 어릴 적 등에 업혀 듣던 심장소리처럼.

인생이 버거운 날엔 가만히 눈을 감는다. 그러면 어느새 내 마음 한켠에, 할머니의 구부정한 등이 언덕처럼 떠오른다. 말없이 나를 비빌 수 있게 내어준, 그 단단하고도 따뜻한 언덕. 나는 아직도 그 언덕에 기대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