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팔베개 위에서, 편안한 잠을 꿈꾸다

by 이제이

아픔이, 외로움이, 무시받음이, 가난이,
그리고 남들과 다르다는 낯섦이
나로 하여금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 순간들을 견디기 위해
나는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속했다.
자꾸만 감정을 차단했고,
그 행동이 반복되며 연습이 되었고,
연습은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어느새 체득이 되어
이제는 감정을 ‘느끼는 법’ 자체를 잊었다.

가끔 사람들은 내가 무심코 뱉은 말에
멍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치 “기계가 대답한 건가?”
그런 듯한 시선으로.

나는 나를 잘 내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훈련된 모습으로
능숙하게 사회와 조직 안에 스며든다.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스스로 닫아버린 감정의 문과,
감정 없이 오랜 시간 연습해 만들어 낸 미소,
정답처럼 암기된 대화 패턴을.

그리고 나는
결코 나 자신에 대한 통제를 놓지 않는다.

연애도, 늘 일정한 거리까지만 허락한다.
그 거리를 넘지 않을 사람만을 조심스럽게 선택하고
그 정도만 허용된 관계만을 유지한다.

약점이나 취약함은 결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철저한 겸손함으로 포장해
그 상황들로부터 유연하게 빠져나온다.

이 모든 게
너무 오랜 연습과 훈련을 통해 체득된 결과다.
이제는 나 자신조차
가끔은 내가 만든 모습에 속을 정도로 능숙하다.

그런데 문제는,
내 안 아주 깊숙한 곳에 묻혀 있던 ‘진짜 나’가
가끔, 조용히 올라오려 할 때다.

나는 사랑받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보살핌을 받고 싶다.

누군가의 품에서
아무런 긴장감 없이
편안한 쉼을 누려보고 싶다.

나를 위해 따뜻한 식사를 준비해 주는
안락한 공간과 정성을
그대로 받아보고 싶다.

그 모든 것은
결국 진심에서 비롯된 사랑이길 바란다.

나는 정말, 이런 것들을 원한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쓴맛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감정은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은 관계의 변화, 시간의 흐름,
상황과 환경에 따라
쉽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달콤한 감정에 쉽게 젖어
사람을 믿고 나를 내어주는 일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나의 딜레마다.

나는, 어쩌면
삶이 끝날 때까지도 이 딜레마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할지 모른다.
정말이지,
아주 특별한—
아주아주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은.

나에게도
조건 없이,
무한하게,
그저 내어주기만 하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특별한 기회가
과연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