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생 할머니

조기를 계양하며

by 이제이

아들에게 아침 겸 점심으로 브런치를 차려주고, 조기를 게양했다.

오늘은 순국선열을 기리는 날.

문득, 우리 할머니가 떠올랐다.


1929년생이신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모두 겪으셨다.

나라를 잃은 설움, 그 속에서 자식을 낳고 키우며

묵묵히 책임을 다하셨던 그분에게

‘나라’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할머니가 태극기를 다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땐 오히려 태극기를 걸지 않은 집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뉴스에서도 국기 게양에 대한 권고조차 없다.

우린 너무 먹고살만해졌고,

이젠 돈만 있으면 이 나라 사람이 아니어도

시민권, 영주권이 주어진다.

나라들은 “어서 오십시오” 하며

문턱을 낮추고 기다린다.


세계는 인구 과밀과 기후 위기로 몸살을 앓는다.

밀도 높은 도시들엔 자연재해와 기상이변이 일상이 되고,

나는 그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애통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물티슈 한 장을 20번 넘게 쓴다.

자연 유래 세제를 만들어 쓴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니까.


반만년 이어온 금수강산,

그 아름다움을 지켜온 수많은 이들.

그리고 이곳을 지켜낸 선열들께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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