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 집은 너무 현실적이다.
눈 뜨면 시계부터 찾고, 이 닦으며 오늘 할 일들을 머릿속에 재생시킨다.
어김없이 쌓여 있는 메일함, 반복되는 인사, 잊지 말아야 할 일들.
이게 ‘첫 번째 집’이다.
누구나 공유하는 이 현실의 집.
나는 여기서 살아가고, 버티고, 가끔은 웃는다.
그런데
하루가 너무 현실뿐이라면,
나는 종종 **‘두 번째 집’**으로 도망간다.
그 집은 눈을 감으면 열린다.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이 가능하다.
아니, 무엇이든 '되어볼 수 있는' 곳이다.
나는 거기서 부자가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에 예쁜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웃고 있다.
하지만 꼭 그 행복한 클리셰만 상상하진 않는다.
어떤 날은 나는 흙빛 피부의 노예가 되어,
세상의 잔혹함을 뼈저리게 느껴본다.
이건 차마 내 상상력조차 버거운 장면이지만,
그 집에서는 ‘상상하지 않으면 모를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어떤 날은 독립투사가 된다.
총성과 피, 나를 짓누르는 무게, 하지만 살아야 하는 이유 하나.
그날의 나는 용감하다.
살아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믿음 하나로 버틴다.
또 어떤 날은 서울역 노숙자가 된다.
세상의 끝에 다다른 사람들과 플라스틱 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어떤 웰메이드 드라마보다 진하고 진실한 삶의 농도가 느껴진다.
그리고 가끔은,
첫사랑과 다시 만나기도 한다.
놓쳤던 순간이 다시 내 손에 잡히는 상상.
근사한 저녁, 불 꺼진 골목의 짧은 하룻밤.
그 아찔함과 아련함의 교차.
어느 날은 백화점에서 도둑질을 한다.
비싼 시계, 작고 반짝이는 것들.
그걸 훔치며 느끼는 짜릿함과,
뒤이어 밀려오는 죄책감이
몸을 통째로 흔들어 놓는다.
그건 현실에서 절대 허용되지 않는 감정,
하지만 두 번째 집에서는 가능하다.
그 집에서는
도덕도, 윤리도, 계급도, 성공도
모두 벗겨진다.
오직 내가 나를 실험하는 공간일 뿐이다.
어쩌면
그 집이 있기에
나는 이 첫 번째 집에서
견딜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은 언제나 단선적이지 않다.
현실은 직선으로 흐르지만,
내 마음속의 집은
수많은 가능성과 감정의 우회로를 품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나를 용서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때로는 겪지 못한 고통을 대신 껴안아본다.
두 번째 집은 그런 곳이다.
내가 현실에서 미처 살지 못한 모든 가능성을
숨겨두는 작은 은신처.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지친 하루 끝에
그 집의 문을 조용히 연다.
그리고 속삭인다.
“오늘은… 어떤 내가 되어볼까.”
작가의 말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나 정답에 내 삶을 자꾸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도 잊게 된다.
그래서 나는 종종 ‘두 번째 집’으로 향한다.
그곳은 누굴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나를 구원하거나 위로하기 위한,
어쩌면 오직 나만을 위한 안전한 실험실 같은 곳이다.
그 안에서는 내가 해보지 못한 선택을 시도하고,
감히 겪지 못했던 고통을 상상하고,
놓쳐버린 순간을 다시 불러낸다.
그건 희생도, 도피도 아니다.
그저 현실이 다 보여주지 못한 나의 또 다른 가능성을
스스로 확인해 보는 일이다.
현실은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나는 그 안에서 다양한 결로 존재할 수 있다.
두 번째 집은, 내가 그 다양함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만의 은신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