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살리는 일에 가격표를 붙일 수 있을까.
당연히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생명을 다루는 일조차 '돈이 되느냐, 아니냐'로 평가하고 있다.
고난도 의료, 특히 외상, 심장, 신경계 수술 등은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매번 한 사람의 사명감에만 의지해야 하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들이 지치고 쓰러질 때까지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이국종 교수라는 이름
이국종 교수는 대한민국 의료계의 몇 안 되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의사’였다.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우리는 뉴스와 다큐멘터리,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접했다.
하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카메라 앞의 이미지가 아니라,
그가 감당했던 ‘현실’이었다.
이 교수는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장으로 일하면서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외상센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싸웠다.
말 그대로 ‘싸움’이었다.
2011년부터 중증외상 환자를 위한 진료에 매진해 온 그는
주 100시간이 넘는 과로를 견디며
헬기로 직접 환자를 옮기고,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을 지휘하고,
의료 시스템의 모순을 하나하나 지적해 왔다.
그가 이끈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는
2017년 판문점 귀순 병사를 살려내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그의 수술실에서 사경을 넘긴 병사는 살아났고,
그는 그 해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현실을 고발했다.
“살릴 수 있는데, 못 살리는 현실이 문제입니다.”
“의사 한 명이 아무리 버텨도, 시스템이 이러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찬사가 아닌
병원 내부의 갈등, 끊임없는 감시,
헬기 이착륙을 놓고 벌어진 마찰,
인력 부족에 따른 탈진이었다.
2020년, 그는 센터장직에서 사임했고
2021년, 진료 현장을 떠났다.
그리고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왔습니다.”
의료의 '속'을 보는 눈
대한민국은 겉으로 보기엔 의료 선진국이다.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대형병원이 서울에 밀집해 있다.
의료보험 체계도 상대적으로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그 속은 썩고 있다.
특히 고난도의 외과계열, 중증 외상과 심장, 신경계 등은
인력 부족, 낮은 수가, 과중한 업무, 불투명한 진급 시스템까지
모든 것이 ‘지속 불가능’을 향해 달리고 있다.
젊은 의사들은 수련 과정에서 '살리는 일'에 집중하고 싶어도
라인을 타야 하고, 상위 교수의 논문에 이름을 올려야 하며,
수술실보다 회의실, 연구실, 행정처를 더 많이 드나든다.
그리고 어느 날, 진료보다 정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 앞에 무너진다.
대학병원 시스템은 사실상 의학적 역량보다 정치적 줄 서기가 좌우하고,
그렇다고 개원하려고 해도 고난도 수술 분야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
이 모든 압박 속에서,
의사 한 명이 지켜야 할 ‘소명의식’은
결국 한 사람 몫이 아닌 전체 구조의 책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외국은 어떻게 다를까
미국은 ‘National Health Service Corps’를 통해
중증외상·응급의료 전공자에게 학비 전액 지원과 대출 탕감을 제공한다.
지방·취약지역 근무 시 보너스도 붙는다.
일본은 지방 병원과 수도권 병원을 연계한
‘의사 순환 파견제’를 운영한다.
신경외과, 외상 분야 인력이 수도권에 몰리는 걸 막고,
한 명의 의사가 과로로 탈진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독일은 고난도 수술이 필요한 분야에선
'기술 수가'를 따로 책정하여,
일반 외래진료보다 훨씬 높은 보상을 책정한다.
또한 병원의 평가 기준도 수익이 아닌
의료 접근성과 환자 생존율로 운영되기에,
‘돈이 안 돼서 외상센터를 없애겠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는 지금이라도 바꿔야 한다.
다음과 같은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1. 인재 육성 보장제
– 중증외상, 심장외과, 신경외과 등 필수 기피 전공 선택자에게
학비 면제, 국가장학금, 장기근속 시 퇴직연금 등 보장
– 의대 입학 전 별도 트랙 선발과 후속 지원 제도 설계
2. 의료 노동환경 개선
– 전공의 및 전담 전문의 초과 근무 강제 제한 및 수당 지급
– 필수 진료 과목 종사자에 대한 휴게시간 법제화
– 지방 병원 순환근무 시 주거·가족돌봄비 국가 보조
3. 공공-민간 병원 간 연계 강화
– 응급·외상센터 운영 시 정부 예산 직접 지원
– 적자 진료 과목에 대한 ‘국가가치 가산 수가’ 신설
– 병원 평가기준에 ‘공공 기여도’ 지표 포함
4. 시민 주도의 정책 감시와 요구
– 지역별 응급센터 실태 공개 및 개선 의견 수렴 제도
– 시민단체, 지역의사회, 의료노조의 공동 대응 구조 활성화
한 명의 의사가 살려낸 수많은 생명은 기록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한 명이 지쳐 무너지는 장면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더는 ‘의사 한 명의 사명감’만으로 이 모든 굴레를 지고 가도록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앞서 『법의 두 얼굴』에서 말한,
지식 있는 시민의 역할이자 목소리 아닐까.
고난도 의료는, 생명을 살리는 가장 고귀한 노동이다.
그 일이 ‘싸구려 취급’을 받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 이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누군가의 사명감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