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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이 되고 싶어 / 박상영

소설 서평 쓰기

by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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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이 되고 싶어 / 박상영 / 문학동네



줄거리


2000년대 초반, D도시에 사는 중학생인 주인공 ‘나’는 독서실에서 만났던 동성 친구인 ‘도윤도’를 짝사랑하고 있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이하여 몰래 도윤도 책상 위에 초콜릿을 놔두다 같은 학년 여학생인 ‘이무늬’에게 들키고 만다. 이무늬는 나의 마음을 약점 잡아 담배 심부름을 시키고 나는 순순히 무늬의 말을 따른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아는 언니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무늬의 고백을 듣게 되고 둘은 비밀을 나눈 친한 친구 사이가 된다. 나는 어느 날 수영장에서 우연히 윤도와 마주치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오락실 노래방에 놀러 다니며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 싸이월드에 서로만 볼 수 있는 다이어리를 쓰며 윤도와 나 사이엔 알 수 없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윤도를 향한 나의 마음은 점점 커져 가지만 윤도는 고등학생이 된 이후, 문제아들과 어울리며 순수했던 모습을 잃어간다. 한편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나던 나의 동네 친구 ‘태리’는 같은 학년 남자아이들에게 ‘게이, 호모’라고 불리며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나는 이를 철저하게 방관한다. 충동적으로 술을 마신 날 윤도와 나는 수성못에서 비밀스러운 키스를 나누게 되고 며칠 뒤 1004 번호로 의미심장한 문자가 도착하는데..





작가와 작품 소개


1988년 대구에서 태어난 박상영 작가는 성균관대에서 프랑스어문학과 신문방송학을, 동국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을 공부했다. 이후 잡지사, 광고 대행사, 컨설팅 펌 등 다양한 업계에서 7년 동안 일했으며, 2016년 단편 소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에세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등이 있으며, 앤솔러지 『놀이터는 24시』에 「바비의 집」을 수록했다. 2019년 「우럭 한점 우주의 맛」으로 제10회 젊은 작가상 대상, 허균문학작가상을 수상했다.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는 성인이 되어 심리상담사가 된 ‘나’에게 온 DM으로 시작된다. ‘수성못에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미스터리 한 내용의 DM을 받고 나는 패닉에 빠지며 수성못이 있는 D도시에 대해 회상한다. 소설은 월드컵으로 뜨겁던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IMF로 인해 붕괴된 가정의 모습과 숨 막히는 대입 경쟁 속 학교 안 선생과 학생들의 폭력적 행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주인공 ‘나’가 사는 궁전 아파트라는 공간적 배경을 통해 무능력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들의 대학 입학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종교에 집착하는 어미니, 그들과 갈등하며 흔들리는 나의 모습은 2000년대 초반 학군과 입시를 중시 여겼던 그 시절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등수대로 학급을 나눠 차별하고 학생들에게 성적인 농담을 서슴지 않는 선생님들의 모습과 약자를 괴롭히는 학생들의 행동을 나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남몰래 짝사랑했던 도윤도를 향한 나의 위태롭고 따뜻한 마음은 오로지 10대에만 누릴 수 있는 날 것의 사랑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유분방하지만 속이 깊었던 이무늬와 어려서부터 연약하고 또래 남자아이들과는 사뭇 달랐던 태리, 그의 누나 태란 등 주위 인물들 역시 다채롭게 펼쳐진다. 또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초반 수성못에서 발견된 시체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독자로부터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며 이후 1004로부터 온 문자로 긴장감이 고조되어 흥미를 이끈다.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싸이월드, 캔모아, MSN 등의 배경과 소요들은 독자로부터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감성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책 속에서


사람 한 명 없는 독서실의 고요함을 뚫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귀를 막았다. 세상과 나 사이에 유리막 하나가 놓인 기분. 바깥에서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 나는 더 철저히 혼자였다. 모두가 하나가 된 세상에 속하고 싶지 않다는 치기 어린 반항심이 들면서도 단 한 순간만이라도 어딘가에 속해 보고 싶다는 과장된 고독감이 나를 휘감았다. 그러니까 제발 누군가 나를 이 지긋지긋한 삶으로부터 구원해줬으면. 단 한번만이라도 내게 손을 내밀어줬으면.
그 순간, 거짓말처럼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P. 41



살집 없이 마른 윤도의 몸이 내 품안에 들어왔다. 윤도는 스쿠터를 타고 수성못을 한 바퀴 돌았다.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도로에 가득 떨어진 완연한 가을이었다. 윤도의 운전 실력이 미숙한 탓에 스쿠터는 이따금 요동쳤지만 무섭다기보다는 설렜고 설레이면서 또 불안했다. 이상하게 내 품에 안긴 윤도가 자꾸만 쪼그라들어 당장이라도 사라져버릴 것만 같이서 나는 윤도를 더욱 꽉 안았다.

P.108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와 윤도는 부둥켜안은 채 함께 가라앉고 있다. 푸르다 못해 검은빛이 도는 물속에서 한도 끝도 없이 깊은 곳으로 천천히 내려가고 있다. 생과 사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내려갈수록 수압이 세져 점점 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그것을 온몸으로 감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괜찮다. 내 품안에 네가 있고 네 팔 안에 내가 있으니까 괜찮아. 이렇게 하나의 점이 되어도 좋아. 아니 그게 차라리 낫겠어. 그러면 좋겠어. 그것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형태. 우리의 최선이야.

P.123



"그럼, 우리 1차원의 세계에 머무르자."
네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너와 나라는 점, 그 두 개의 점을 견고하게 잇는 선분만이 존재하는 , 1차원의 세계 말이야."
지금도 방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면 너를 생각해. 숨 막히게 나를 짓누르던 너의 질량과 그 무게가 주던 위안을 기억해.

p130



전체 느낌


책장을 덮었을 때 사랑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아이 둘을 키우며 30대 후반이 된 내게 사랑은 젊은 날 황홀하고 뜨거웠던 이미지와는 달라져 있었다. 사랑의 대상이 아이로 변했기 때문인지 내게 사랑은 부드럽고 든든한, 안전하고도 완벽한 모습이었다. 이 소설을 보며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던 10대 때 사랑을 떠올렸다. 불완전하고 위태롭게 흔들리는.. 비밀이 많고 순수했던 사랑. 이 소설에선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책을 처음 폈고 덮을 때까지 한 순간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2000대 초반 그때 학생이었던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사랑 말고도 친구 관계와 가족, 더 나아가 사회와의 불완전한 관계로 흔들렸던 '사춘기'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 마치 내 학창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제목처럼 윤도와 '나'의 사랑은 1차원적인 사랑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순수하고 날 것 그대로의 사랑. 소설 속 윤도와 나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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