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Aug 16. 2023

천국에서 온 알바생_2

명절의 주차 아르바이트

 

 사달이 난 것은 설날 전날이었다. 설을 앞둔 마트는 점장의 말처럼 전국 매출 2위 다운 듣도 보도 못한 혼잡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장을 보러 온 고객들로 마트는 인산인해를 이뤘고 주차장의 차들은 오도 가도 못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트 앞 큰 도로까지 차가 막혀 마트에서 차가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주차 팀장까지 밖으로 나와 교통정리를 했지만, 차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주차장 입구에 만차 표지판을 세워두고 출구는 물론 입구까지 차가 나갈 수 있도록 했다. 8층부터 내려오는 차들과 중간에 나가려는 차들로 주차장은 난장판이었다. 위부터 내려오는 차 3대를 보내고 지금 있는 층에서 2대를 내려보내는 식이었는데, 뭘 먼저 내려보내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차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빵빵- 차 안에서 짜증이 난 사람들은 의미 없는 경적만 울렸다. 나는 이곳에 왜 서 있는가. 내가 손을 써서 차가 빨리 빠진다면야 4층과 8층을 몇 번이고 오르내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차는 한 대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을 뿐이었다.     


“야 이 씨발년아. 너 뭐 하는 년이야!”     

순간 내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주차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뒤를 돌아보니 다마스에서 내린 남자가 씩씩거리며 허리에 손을 올리고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씨발 차를 빨리빨리 빼야 할 거 아니야! 너 여기 놀러 왔어!”     

남자의 고함에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이 나 때문이라는 듯 남자는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멱살을 움켜잡을 것 같았다. 남자의 고함에 얼어붙은 내게 정아가 다급히 뛰어왔다.     


“고객님. 저희도 밑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고요, 명절 앞두고 차량이 많아서.. 죄송합니다.”     

“씨발 장사 하루 이틀 해? 이런 것도 계산 못 하고 니들 뭐야!”     

아, 정말 우리가 뭐였을까. 나와 정아는 이 모든 사단이 우리의 죄인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는 욕지거리를 몇 마디 더 하고는 차로 돌아갔다. 남자의 목소리가 멈추자 더 없는 고요가 찾아온 것 같았다. 차 안에 많은 눈들이 우리를 향해 있는 게 느껴졌다.     

“언니, 어차피 지금은 할 것 없으니까 들어가서 좀 쉬고 있어요. 차 좀 빠지면 다시 나와요.”     

나는 떨어지는 눈물을 감추려 고개를 푹 숙인 채 사무실로 들어왔다. 줄줄이 서 있는 차 안에서 사람들이 날 향해 욕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사무실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 그날 주차권 발급 업무를 본 민정이 테이블에 앉아 울고 있었다. 얘도 욕을 먹었나 싶어 별 대수롭지 않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얼굴을 봤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민정의 한쪽 뺨이 부어있었다.     


“입구에서 기다리던 차가 왜 못 들어가게 하냐고 하면서.. 막 화내면서 가다 오더니 다짜고짜 뺨을..”     

민정의 부은 뺨 위로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팀장님은 아셔? 내 물음에 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수습한다고 저는 이만 가보래요. 내일도 쉬래요.”     

민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를 이렇게 보내는 게 맞나 싶어 탈의실까지 따라 들어갔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는데 민정이 나를 돌아봤다. 그렁그렁 한 눈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언니도 위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나는 민정의 부은 뺨을 보며 고개를 저였다. 아니, 아니야. 씨발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탈의실에서 나와 미끄러지듯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밖에선 차들의 경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며칠 뒤 민정이 손에 봉투 하나를 쥐고 탈의실로 들어왔다. 웬 거냐 묻는 내 눈빛에 민정은 낯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번에 뺨 맞은 거요.. 그거 때문에 회사에서 상품권 줬어요. 20만 원.”

“너 때린 사람 핸드폰 번호는?”     

내 물음에 민정이 고개를 저었다.


“근데 이거 주면서 무슨 서류 같은 거에 사인하라 하더라고요. 저 뺨 맞은 거 아무 곳에도 말하지 말라고.. 무슨 서약서 같은 거래요. 발설하면 법적 조치한다고. ”     

민정의 말에 너털웃음이 나왔다. 직원들 앞에서 넉살 좋게 웃던 점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쩌면 점장은 어제의 사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하청업체 직원이니까. 욕을 먹고 뺨을 맞아도 그게 고객이 아니라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마트 입장에선 우리 직원이 고객에게 맞은 게 아니라, 우리의 고객이 하청 업체를 때린 것이라 생각하겠지. 어머, 우리 고객이 널 때렸구나. 미안. 민정의 손에 들린 흰 봉투 진 주름이 어쩐지 서글퍼 보였다.     


“엄마 속상하셨겠다.”

“..엄마 알면 안 되죠. 말도 안 했어요.”

민정이가 씁쓸하게 웃었다. 탈의실에 패딩을 쑤셔 넣다가 갑자기 나를 돌아봤다.


“말 안 하길 잘했네. 이거 뺏겼음 어쩔 뻔. 히히.”     

민정이 봉투를 흔들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민정의 웃음에 나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웃어버리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이후 알바생들의 일과는 평소와 똑같았다. 고객의 짓궂은 농담에 어색하게 웃고 무심한 태도에 투명인간이 되었다가, 가벼운 친절함에 가슴속으로 절절하게 감사함을 느꼈다.     



두 달여 알바가 끝나고 나는 다시 그 마트의 고객으로 돌아갔다. 가끔 차를 타고 주차장 입구로 들어가면 전에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가 닫힌 차 문을 뚫고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안쪽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나는 선팅 된 차 창문으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자, 다 아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