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에겐 없는 '외할머니'란 이름
친한 친구가 외할머니댁에 놀러 간단 말을 듣고는 아이가 집에 와 물었다.
“엄마, 엄마의 엄마는 어디에 있어?”
아이의 물음에 잠깐 생각하는 척하다 어깨를 으쓱하며 ‘글쎄-’하고 대답했다.
“하늘나라에 간 거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내 대답이 오히려 답답했는지 아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어딨 는지도 몰라?”
아이의 말에 나는 또 답답한 소리를 했다. “그러게-”
아이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라는 말을 알지만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의 엄마를 지칭할 때도 ‘엄마의 엄마’라는 말을 쓴다. 아이의 눈에 엄마가 없는 내가 얼마나 이상해 보였을까.
아이가 6살 때쯤,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처음으로 내게 ‘엄마는 왜 엄마가 없냐’고 물었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살짝 당황했지만,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누구나 다 엄마가 있는 건 아니라고. 마치 예전부터 지금의 대화를 오래 준비해 온 사람처럼 천천히,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원상아, 형이나 동생이 없는 친구들도 있지? 세상엔 엄마랑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는 사람도 많아. 엄마처럼.”
아이는 내 말에 한참 눈을 굴리며 생각하다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손바닥을 짝! 마주쳤다.
“아하! 엄마가 알사탕에 동동이 같은 거구나.”
아이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한참을 웃었다. ‘동동이’는 그 당시 아이가 잠들기 전 매일 보던 동화책의 주인공이었다. 그 동화책 속엔 동동이의 아빠와, 돌아가신 할머니가 등장하지만, 엄마는 나오지 않았다. 동동이의 엄마는 어디에 갔을까. 언젠가 아이와 이런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났다. 하늘나라? 아니면 다른 먼 곳에? 아니면 회사에? 어떤 것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아이는 세상엔 엄마가 없는 아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아이 방식대로 엄마 없는 나를 이해했다.
어느 날 길을 걷다 비눗방울이 눈앞에 흩날렸다. 비눗방울을 분 사람은 한 아이의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입에서 바람이 불자 보석 같은 비눗방울이 공중에 두둥실 떠올랐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을 받는 듯 두 손을 들고 비눗방울을 따라 뒤뚱뒤뚱 걸었다. 아이가 얼마 못 가 풀썩 주저앉았자, 할머니의 숨을 받아 생겨난 비눗방울도 이내 톡-하고 터져버렸다. 아이는 앉은 채로 할머니께 ‘후-후-’ 하며 비눗방울을 불어 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웃으며 다시 비눗방울을 불었다. 할머니의 숨이 아이에게 기쁨이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엄마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외할머니가 되었을까. 비눗방울을 불어주는 할머니가 되었을까. 나 몰래 젤리나 초콜릿을 건네주는 할머니가 되었을까. 평소엔 쉽게 가질 수 없던 장난감을 아이들 품에 쥐여주는 할머니가 되었을까. 아니면 살가운 말 한마디 조차 해주지 않는 무서운 할머니가 되었을까. 어떤 할머니가 되었든 내 아이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사람 한 명이 사라졌다는 건 분명했다. 그것이 나의 탓이 아님에도 어쩐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비눗방울이 날아와 내 앞에서 톡 터졌다. 비눗방울을 따라오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의 사랑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까만 눈. 뒤에서 아이를 부르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할머니의 부름에 어설프게 뒤를 돌아 걸어갔다. 아이가 할머니에게 다다를 때까지 나는 가만히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느린 걸음의 아이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마치 지금은 없는 누군가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