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암주사 보다도 무서운 게 탈모였고 삭발이었다. 건강만 되찾는다면 그게 무슨 상관이냐,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그래도.... 삭발은 싫다. 삭발도 미인이나 어울리지...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인 내겐 '못생김 주의'
삭발에 앞서 나의 계획은 미용실 결정하기!
어느 미용실이 좋을까?
순위에 오른 미용실 몇 개를 이야기하면
첫 번째는 병원미용실이었다. 환자들이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나와 같은 경우의 고객을 많이 만나봤으니 편하게 머리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는 소꿉친구였던 j의 미용실. 친정집 근처에 위치해 있고 친정엄마도 친구의 미용실을 다니고 계시고, 그래도 어린 시절 친구니 나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세 번째는 내 단골미용실. 예약제로 운영하여 같은 시간대 다른 손님이 없다는 것과 실력이 좋은 선생님이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가 삭발하기가 망설여졌다.
고민하다가 j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 상황을 세 문장으로 요약했고 그리하여 '너에게 갈 건데 시간 언제가 괜찮니?'
라고 묻자 답장이 왔다.
'헐'
혈이란 반응은 처음이었다. 내가 암에 걸린 일이 어이없다란 표현으로 느껴졌나, 아님 믿을 수 없다는 탄식!
암환자 되었다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예의있는 반응을 기대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평소 '헐'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에 적대감이 앞서기도 했겠지만 그 답장은 반갑지 않았다. 그러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아니, 어쩌다가 그런 거야? 그래서 가슴은 잘랐니?"
친구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질문도 처음 들었고 살짝 기분이 언짢았다.
"뭐? 자르긴 뭘 잘라?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나도 그 수준에 맞는 감정으로 대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화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재빨리 마무리 인사를 나누고 머리 하는 날 보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주변 사람들이 궁금한 건 내게 무슨 안 좋은 일이 그렇게 많았기에 암이 걸린 건지, 또 유방암에 걸리면 모두 가슴을 절제하는 것인지 이 두 가지였을까?
J와 나는 친정엄마가 머리 할 때 만나고 평소 문자 정도만 나누는 사이였다. 열심히 사는 친구고 손님들과 쉬지 않고 대화하는 게 낙이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또 손기술도 좋고 열아홉 살 때부터 시작한 미용일은 그녀에게 딱 맞는 직업이자 재능이었다. 다만 나와는 성격도 성향도 너무 다르고. 무엇보다 말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려니 그냥 넘어가도 되었지만 '가슴 잘랐니?' 그 말은 날 몇 시간 동안 시험에 들게 했다.
가슴을 잘랐는지 여부가 궁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가 암이라서 삭발을 해야 하니 해 줄 수 있니?라고 톡이 왔으면 제일 먼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놀랄 수도 있지만 위로가 먼저 아니었을까? 어떻게 자신이 제일 궁금했던 걸 물어야 했을까. 차라리 '미안해, 그날 예약 손님이 있어서 다른 날 하자!'라는 영업멘트로 거절하는 게 내게는 더 편안했을 대답이었겠다.
그래서 친구의 미용실은 후보에서 탈락!
병원미용실은 어떨까? 분당S대학교병원 미용실을 검색하니 위치정보만 알아낼 수 있었다. 병원 지하 3층 구석진 곳이라고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보게 되었다.
항암주사를 맞는 날 간호사가 내 상태를 살피고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다.
"환자분, 머리는 언제 미셔요?"
간호사분이 내게 먼저 물어보았다. 이 약은 100% 탈모가 있으니, 그것도 모든 몸에 난 털이란 털은 눈썹, 속눈썹, 코털까지 빠지니깐 간편하게 2차 항암 전에는 미용실을 다녀오라고 당부했다.
"선생님, 병원미용실은 어때요?"
하고 묻자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결론은 단골미용실로 결정했다.
1월 25일 오전 10시에 예약을 하자 확정 문자가 왔다. 선생님은 아침이라 춥다며 전기담요까지 준비해 놓았다.
의자에 앉고 따뜻한 담요를 덮는 순간
'그래 여기 오길 잘했네.'
안심이 되었다. 선생님은 왜 갑자기 쇼트커트를 하는지 물었다.
"사실은 제가 항암 중이라 머리가 곧 빠질 거예요. 그래서 삭발을 해야 하는데, 그건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쇼트커트로 자르려고요."
선생님은 한참 생각하더니
"음, 고객님이 늘 긴 머리만 하셨지만 지금 보니 커트도 어울리실 거 같아요. 평소 머리를 풀었을 때, 아님 묶었을 때 중 주변에서 어떨 때 더 예쁘다고 하세요?"
사실 예쁘단 말을 자주 듣는 외모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머리 묶고 사진을 찍으면 얼굴이 작아 보였었다.
"묶었을 때요."
라고 대답하자 선생님은 그럼 커트도 어울릴 거라며 날 안심시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는 핸드폰을 꺼내 선생님께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나는 김태리가 아니지만 이런 스타일을 요구했다. 사진출처 네이버
"선생님, 이런 스타일 될까요?"
긴 머리였던 배우 김태리가 쇼트커트를 하고 대중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내가 김태리는 아니지만, 단 일주일이라도 김태리 머리스타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선생님은 흔쾌히 해주겠다며 바로 가위질을 시작했고, 1시간 동안 정성스러운 가위질로 김태리 비슷하게 완성은 되었다. 김태리는 아니지만 기분전환은 성공!
커트로 변신한 모습을 셀카에 담았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냈다. 다들 어울린다고 답이 왔다. 다행이다.
선생님이 한 시간동안 공을들였지만 역시 김태리는 될 수 없었다.
커트머리는 일주일용이었다. 일주일을 즐기기 위해 3만 3천 원의 비용을 지불했다니. 유방암 카페에서 듣던 그 '14일의 기적'이 내게도 찾아왔다.
항암주사 맞고 14일이 되면 머리털이 숭숭숭 빠지고 감당이 안돼 거의 그때쯤 삭발을 한다고 한다.
나는 항암 10일 후부터 두피에 염증이 시작됐고 아파왔다. 그리고 12일 차부터 머리털이 우수수 빠지기 시작하더니 딱 2주가 되던 1월 29일 손도 대지 않았는데 힘없이 스스로 빠졌다.
커트한 지 일주일 만에 또 예약을 했다. 오늘(1월 30일) 마주하기 싫었던 그날이 왔다. 이쁘지는 않겠지만 또 바라게 된다. 가발은 어울리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