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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드라마 Feb 08. 2024

어쩌다 투병일기 7-나의 적은 나!

나는 여전히 행복했었다.

 

 난 꽂히면 바로 지르는 편이다.

특히 마음에 드는 물건을 선택할 때 그 실력을 발휘한다. 이번에 항암을 앞두고 난 많은 물건들을 주문했다. 울렁거릴 때 먹으면 좋다던 레몬맛사탕, 구강 프로폴리스 스프레이, 칫솔, 구내염에 좋다고 하는 치약, 두건에 가발까지. 가발은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대도 인모와 수제가발 등 그에 따른 차이가 컸다.  단발머리 통가발과 레이어드 컷의 긴 머리 가발, 모자 쓸 때 간단하게 머리둘레만 머리카락이 있는 띠가발까지, 난 3종류의 가발을 구비해 두었다. 전투준비를 완벽하게 끝낸 군인 같았다. 막상 항암을 하고 보니 준비된 물건들이 그 쓰임을 발휘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 바로 레몬맛 사탕과 구강 프로폴리스다. 레몬향은 역했고 프로폴리스는 향을 맡아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가장 쓸모 있는 것은 가발이었다.

 머리카락이 80% 이상 빠지고 나니 민머리를 가려줄 가발과 모자들이 동아줄과 같았다. 되도록 가발티가 안 나도록 다듬고 연구하여 지금은 가발에 익숙해지고 있다. 가발을 쓰고 다닌 지 일주일이 넘었다. 뿔테안경에 단발머리 가발, 그 모습이 중학생처럼 보였다. 얼굴은 사십 대인데 어딘지 언밸런스한 어색한 모습이었다. 단발머리 가발에 정성을 쏟았다. 가발전용 에센스와 빗으로 빗질을 하니 그런대로 모양을 잡아갔다. 100% 인모가발은 100만 원이 훌쩍 넘어 감히 주문을 할 수 없었고, 수제가발을 선택했는데 살짝 후회가 다가오는 마음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왼쪽은 18만원짜리 수제 단발머리, 오른쪽은 띠기발착용 후 모자로 가렸다
  가발티 좀 나면 어때! 어차피 6개월짜리! 이젠
 남 눈치 보지 말자! 내 인생의 주인은 나야 나!


 나는  어떤 면에서 충동적인 편이다.

내 마음이 시키는 일, 위에 적었듯 쇼핑에 관해 특히 그렇다. 나에게 혹은 우리 가족에게 필요하다 싶음 바로 주문하는 결단력이 빠른 편이다.(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다)


 가발에 이어 빠른 결제 능력을 발휘한 것은 풀빌라 펜션이었다. 겨울방학인지라 아이들에게 미안했었다. 엄마가 아프니까 아빠는 더 바빠졌고, 전처럼 방학을 즐기지 못해 신경 쓰였다. 그래서 항암 들어가기 전에 여수로 여행을 갔다. 밖에 많이 돌아다닐 수 없어 풀빌라가 있는 펜션을 빌려 아이들을 실컷 놀게 했다. 두 형제는 세상 행복한 웃음소리로 엄마를 안심시켰다. 남편은 평소 맛짓탐방을 좋아했었기에 여행에서만큼은 누리도록 도와주었다. 난 행복했다. 사진도 많이 찍어두었다. 긴 머리였을 때의 마지막 여행인 만큼 기억해 두자며 사진관에서 가족사진도 찍었다.


 "엄마 이가 보이게 활짝 웃어봐. 입만 웃으니까 너무 억지 같아."

작은 아이가 자신처럼 이가 드러나 보이게 웃으라며 시범을 보인다. 나는 돌출형 앞니가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늘 사진 찍을 때 살짝 미소만 지었었는데, 아들의 말을 듣고 활짝 웃었다.

세 명의 남자가 한 목소리로 말한다.

 "더 낫잖아!"

나는 자신감이 생겨 활짝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고 계속 찍었다. 그리고 사진을 보는데 내가 너무 행복해 보였다.

왼쪽은 항암 전 여수포차에서 남편과 오른쪽은 j언니와 차마시며


 '그래, 난 아프지만 여전히 행복해!'

난 행복하다. 여전히 리바이스 청바지를 사면 기쁘고, 아들이 용돈 모아 사준 운동화를 신어보며 아들 볼에 뽀뽀도 남발하고, 남편이 끓여준 시원한 황태콩나물국에 엄지 척을 하며 기쁨을 표시한다. 여전히 난 기쁜 일이 많다.


여행사진 중 가장 예쁘게 나온 사진을 골라 카카오톡 프로필에 저장했다. 얼마 후 친구에게 톡이 왔다.

"카톡 프사사진 바꿨네? 너무 행복해 보인다."

친구는 내가 항암주사 맞고 힘들고 지쳐서 누워만 있을 줄 알았고 우울의 날이 많으리라 생각했나 보다.  나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외식도 하고, 아이들 픽업도 다니기도 한다. 컨디션이 아주 안 좋을 때만 누워있지 괜찮은 날이 더 많기에 감사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프로필 사진에 이번에 처음으로 내 사진을 올려 본 것이다.  항암이 끝나면 예전처럼 많이 웃자는 의미였다.  그런데 생각하니 여전히 나는 웃을 때가 많았다. 나 또한 많은 이들처럼 암=불행 일거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난 행복한데. 다만 암환자일 뿐. 난 매일매일 중 기쁜 일이 많은 것에, 참 감사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쁨을 느끼게 해 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아프면서 온라인으로 새벽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기도하며 계속 생각나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욥"이다. 욥은 믿음 좋은 사람이고 사랑하는 가족과 부유하게 살았다.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요즘 세상과 비교하자면   s그룹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어디까지나 이건 내 생각이지만.

 그런데 어느 날 욥의 믿음을 시험하고 싶은  사탄이 하나님께 나타났다. 그리고 욥의 재산과 자녀를 빼앗고 건강까지 위태롭게 만들었다.  

  욥의 온몸에 악성종기가 퍼지고, 사랑하는 자식들도 잃게 되고 재산도 모두 잃었다. 사랑하던 아내마저 모든 걸 잃고 고통에서 몸부림치는 욥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고 하나님을 비난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욥은 원망하지 않았다. 그의 절친 세 사람이 찾아와 충고의 말로 따끔하게 일침을 가할 때 그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결국 그는 승리했다.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왔을 때 회개했기 때문이었다.


주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시므로 주의 계획은 그 어느 것도 좌절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무식한 말로 주의 뜻을 흐르게 하는 자가 누구겠습니까? 바로 나입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였고 너무 신기하여 내가 알 수도 없는 말을 하였습니다.(현대인의 성경 욥기 42:2~3)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어떻게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사랑하는 자식들까지 사고로 잃고 재산까지 모두 잃었는데. 만약 나였다면?

 난 그에 비해 유방암 0기에서 1기로 병기가 바뀌어 수술도 잘 되었고, 현재는 항암 2차까지 마친 상태. 부작용들이 스멀스멀 찾아오긴 하지만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약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그런데 욥은 약 대신 통증이 찾아올 때면  상처난 종기에 기왓장 조각으로 긁어 피를 흘릴 뿐이었다. 모래바람 부는 쓰러져가는 담벼락에 몸을 기댄 채 사단들의 꾐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에겐 단 한 분뿐이었던 것이다. 그 분만 계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던 삶! 나 또한 가발이고 옷이고 여행이고... 나를 위한 쇼핑리스트가 아닌 하나님 한 분이어도 충분한 삶이어야 하는데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다.'   

나의 적은 나이며, 내가 온전해지길 또 기도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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