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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드라마 Feb 17. 2024

어쩌다 투병일기-8. 아빠가 생각난다

아프니까 알 수 있는 것, 사랑

 2024년이 시작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우리나라의 대명절인 구정, '설날'아침이다. 작년 이 맘 때까지는 우리 집에  엄마가 계셨기에 언니들이 음식을 해오고 나도 전을 부쳤었다. 아빠 성묘도 미리 다녀오고 그랬었는데, 올해는 나의 치료 때문에 모두들 정신이  없었다. 돌아가신 아빠까지 챙길 여건이 되지 않았다.

친정집에는 아빠가 심어 둔 주몽나무가 여전히 자라고 있다.

 아빠는 천주교 신자 셨기에 천주교 묘지에 계신다. 친정집에서 그곳까지는 1시간 정도인데 명절엔 차가  밀리는 편이다. 그래서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아빠의 순서는 또 뒤로 밀리고 말았다.  


늘 아빠의 묘 앞에서 기도를 드리면 그 생각이 먼저였다. '아빤 천국에 가셨을까?'가셨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병원에 입원하거나 수술하는 일이 있으면 가족 병력을 기록한다. 나의 경우는 암이다 보니 가족력에 대한 질문이 많았었고, 늘 초진차트에 돌아가신 아빠의 병력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아빠는 2009년 8월 10일 눈을 감으셨다. 내가 결혼식을 마치고 3개월 뒤였다. 아빠의 병명은 '백혈병'.

60대에 첫 진단을 받았을 때는

 '비정형성 만성 백혈병'이었다. 그러다가 2009년 갑작스레 급성으로 전환이 고, 72세의  아빠는 입원 후 40일 만에 돌아가셨다.

 

 아빠는 A병원에서 쭉 정기검진을 받았었다. 아빠의 병기가 만성에서 급성으로 변하며 입원을 하게 됐다. 모든 것이 급하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아빠가 아프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지만 등산이나 게이트볼 클럽에 매일 다니셨고, 몇 년 동안 경기에도 나갈 정도로 아빠는 아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모든 게 달라졌다. 백혈구수치가 요동을 치자 수혈을 받아야 했고, 입맛이 없다며 밥을 거의 먹지 못하셨다. 엄마는 이때 온통 아빠에게 정신을 쏟고 계셔서 하루에 한 움큼씩 머리카락이 빠졌던 기억이 있다. 아빠의 암은 생각보다 급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담당 교수님도 우리들도 당혹스러운 건 찬가지였다. 아빠의 상태를 보시고는 담당 교수님은  적극적인 항암치료를 권하지 않았었다. 아빠의 경우 항암이 의미 없었던 것인데 가족들이 상처받을까 봐

항암치료는 가족들이 선택하라고 했던 거 같다.  


 아빠를 그냥 병원에 입원만 시킨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마치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시 나는 그랬었다.


'아무 치료도 받지 않고 죽음을 기다리라는 것인가. 그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던 아빠를 치료도 받아보지 못하게 죽는 날만 기다리라는 것인가. '

언니들과 엄마와 고심 끝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며 살 것 같았고 엄마의 간절함으로 항암치료받는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나도 지금 항암치료를 받기 때문인지 요즘 들어 아빠가 병원에 계셨을 때 생각이 많이 난다. 아빠도 그 당시 내가 받았던 케모포트 시술로 항암주사를 맞았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암이란 녀석이 참 끈질기고 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빠는 자신에게 희망이 있었다. 항암을 하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는.

가족들도 내심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첫 번째 항암 후 아빠는 무너졌다. 희망은 사라졌고 더 큰 고통이 쓰나미처럼 들이닥쳤다. 밥도 먹지 못했고, 극심한 변비는 아빠를 괴롭게 만들었고 온몸에 힘이 빠져,

결국에 아빠는 말할 기운조차 없어했다. 배터리가 방전되어 충전을 해도 여전히 0%로 되어있는 상태, 아빠가 딱 그랬다.


 내가 항암을 두 번 받고 보니, 70대였던 아빠는 부작용을

 더 심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는 병명도 다르고, 그 당시는 지금보다 항암주사 부작용의 강도가 더 강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지금은 약이 좋아졌고 효과도 다르다고들 얘기하니까.


 아빠는 첫 항암 후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보였다. 희망이 없는 눈빛. 자신이 곧 죽게 되겠다는 감정이 아빠를 그렇게 만들었다. 특히 백혈병 병동에 입원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이게 되셨다.  다인실에 있을 때, 하루에도 몇 번씩 환자분들이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아야 했다. 내가 아빠를 케어하는 날에 마주 보고 계셨던 어른이 안 보이면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몰라서 입원실 어른들이 안 보이면 옆 침대 보호자께 물었었다.

 "저기 어르신은 퇴원하셨어요?"

내 질문은 암묵적으로 금지어와 같은 거였다. 나는 우리 아빠는 나을 수 있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병실의 분위기 또한 그런 줄 알았다. 모두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있는 줄 알았었다. 그런데 보호자도 환자도 자신들이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섯 대의 침대 중 한 사람씩 빠져나가는 것은 마치 죽는 순서가 정해진 듯 느껴졌고, 그 상황을 지켜보며 아빠는 더 고통스러워했다.


 "나 그냥 집에 가고 싶다."

만약 내가 지금이었다면, 아빠의 뜻을 따르자고 했을 것이다. 그때 우리들은 퇴원을 하면 아빠가 바로 돌아가실 것 같아 두려웠고 병원을 의지했다.


 "얘들아, 아빠 병실 옮겨야겠다."

엄마는 죽어나가는 환자들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고통스럽다 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가 충격을 받은 것 같다며 1인실로 옮기자 했고, 병실을 옮기게 되었다. 아빠 생애 처음 값비싼 숙박료를 병원에 지불하게 될 줄이야. 아빠는 1인실로 옮기자 마음은 편해지셨지만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식은땀, 입마름, 식욕저하.... 그러다 그날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음을 실감했던 일이 발생했다.


 본인 스스로 소변통을 잡을 힘이 빠졌을 때 힘없이 막내딸인 내게 도와달라고 하셨던 그때의 분위기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 나 힘이 없다..."

나는 얼른 소변통을 잡아드렸고 어색했지만 아빠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시원하게 볼일 보셔!"라고 말했었다.

난 그때 느꼈었다. 아빠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단단했던 아빠의 육체와 정신이 암이란 고통 앞에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에 눈물이 났었다.


 아빠의 무뚝뚝함, 퉁명스러운 말투 때문에 십 대에는 아빠를 원망하고 미워도 했었다. 그런데 아빠의 약한 모습에 그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었고, 아빠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아빠는 사랑 표현이 서툰 사람이었을 뿐  우리를 사랑했다. 그 사랑에 책임지기 위해 한시도 편안할 날이 없었다. 농번기가 아닌 겨울철에는 공사장 인부로 일을 해 꽤 많은 돈을 벌어오셨고, 농사만 지어서는 현금유통이 안되니 젖소를 키워 우유회사에 우유를 팔아 소득을 냈었다. 사과, 토마토, 표고버섯까지 재배를 하기도 했었다. 요즈음 시대로 말하면 미래에 투자를 하시는 앞서가는 농부셨다. 아빠가 이렇게까지 악착스럽게 일을 한 건 모두 자식들 잘 키우고 싶었던 부성애 때문이었다. 사랑이 아니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번 돈은 우리의 학비와 생활비로 사용되었고 부모님을 위해 쓴 적은 없었던 거 같다.


내가 아프고 보니 곳곳에 숨어 있던 사랑이 보인다. 평생 잊지 못할 내 아버지의 삶. 내 어머니의 헌신. 나에게 늘 한결같은 마음인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나의 언니들. 또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내주는 모든 사람들. 그 모두의 마음에는 사랑이 있었다.


아빠를 떠나보낸 지 14년이 지나니 아빠의 마음이 보인다. 전에는 몰랐던 아빠의 사랑. 아빠가 마지막 호흡을 멈추던 순간 울부짖었던 그날. 아빠가 문득문득 의식이 돌아왔을 때 안아드리고 사랑한다고 말할걸... 후회가 밀려온다. 그 후회란 감정은 자책과도 비슷하다.


너도 참 모자라다. 그 흔한 사랑 한다 말을 못 해서 평생 후회하며 살다니.

어리석은 나는 아빠께 고작

노트북으로 "사랑해요"라고 적어  보여준 게 다였다. 용기 없는 딸의 고백에 아빠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하셨었다.


아빠의 마음은 하나님과 같다

말하지 않아도 늘 곁에 계셨고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주셨다.


너희는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린도전서 16:14)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한일서4:16)


스누피 중에서, 내가 모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스누피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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