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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드라마 Mar 12. 2024

어쩌다 투병일기 9-기다림에도  끝은 있다

'벌써'와 '아직'은 한 끗 차이지만 마음의 공간은 다르다

 3주에 한번 분당 서울대학 병원에 간다. 그래도 같은 경기도이고, 광역버스도 있지만 오전 7시에 채혈을 하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남편과 나는 첫 항암주사를 맞을 때는 007 작전의 주인공들처럼 움직였다. 남편이 번호표 담당. 그는 주차를 한 후 서둘러 1 병동 1층 채혈실로 빠른 걸음으로 간다.  남편이 뽑아 놓은 번호표 순서가 되면 채혈을 한다. 내가 채혈을 하는 동안 남편은 2동 암센터로  뛰듯 걸어간다. 종양내과 진료를 빠르게 보기 위한 방법으로  도착접수대의 표를 끊기 위해  줄을 선다. 그렇지만 사실 의미가 없다. 이미 진료순서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미 3주 전에 환자들은 예약을 했다. 나 또한 3주 전에 예약을 했고 오전 9시에 예약이 되어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며 '먼저'의 자세를 취하고 있을까. 아무리 먼저 줄을 서도 자기 순서가 있다. 진료순서지를 일찍 뽑아도 내가 예약해 놓은 시간에 진료를 받는다.

 몇 번의 항암주사를 맞고, 여러 가지 부작용에 시달리며 '마음먹기'에 따라 내 시간과 아픔이 달라짐을 느꼈다.

그리하여 나는 '벌써'와 '아직' 중  벌써라는 부사를 선택하기로 했다. 주문한 음식이 늦게 나오면

 "아직도 안 나왔어 "

라고 말하고, 직원을 호출하여 채근했던 나. 말만 친절하게 전할 뿐 분명 진상손님이었을 것이다.

  평소'벌써'라는 부사어를 자주 쓰는  사람들은 긍정적 에너지가 높다. 일하면서 알게 된 교육청 주무관님이

계신데 그분의 긍정어는 상대방의 감정을 제어해주기까지 한다.

1. 벌써  
예상보다 빠르게.
2. 아직
어떤 일이나 상태 또는 어떻게 되기까지 시간이 더 지나야 함을 나타내거나, 어떤 일이나 상태가 끝나지 아니하고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  (네이버 국어사전 )


 아프기 전부터  5년 동안  꾸준히 해오던 일이 있다. 1년에 한 번씩 네 곳의 학교를 방문하여 독서수업을 진행했었다. 올 해도 그 일로 교육청 주무관님과 전화를 했다.

 "선생님~벌써 일 년이 지나 저와 통화를 하시게 되었네요. 올해도 해 주실 거죠?"


목소리 톤부터 밝고, 보이지 않아도  활짝 웃고 있을 입이 떠오른다. 이분에게는 웃으면서 답할 수밖에 없다.


 "주무관님, 하하 당연히 해야죠. 그런데 제가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2학기때나 가능해요.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일을 하겠습니다."


사실 2월이 되면 전화를 항시 했었기에, 이번에는 '쉬어야겠다 말씀드릴까' 고민하던 중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나도 모르게 수업을 하겠다고 대답을 해버렸다. 당연히 할 수 있겠지...


 꼭 하고 싶었던 일이고 기대되는 수업들이었다. 내가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목표에 맞게 수업을 진행하면  아이들의 피드백을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다. 또 내 수업이 초등학교 선생님들에게 공개가 되고 객관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자리기도 해서 욕심을 내고 싶었다. 주무관님은 한참 생각하시더니


"그럼 선생님 세 학교 프로그램만 짜 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감사하다. 그 사정이 무엇인지 묻지 않으셔서. 나는 그것도 배려일 거라 생각한다. 일 적 관계로 전화와 이메일로 만나고 그 외엔 딱히 대면할 일이 없는 심플한 관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의 긍정화법은 늘 내게 자극을 준다.  수화기 넘어서까지 느껴질 미소!


또 한 사람은 20년 전 첫 직장에서 만난 P선생님. 요새는 잘 나가는 동화작가로 이곳저곳의 서점에 가면 선생님의 책이 진열되어 있다. 배는 살짝 아프지만 진심으로 축하하고  온 맘으로 존경한다.

 P선생님은 식당에 가면

"와~맛있겠다."

음식이 나오면

"음.... 벌써 나왔어!"

하면서 소리 없는 박수를 치며 수저를 드신다.

지난번에는 다소 누추한 점심식사를 대접했는데 그곳에서 기뻐하며 식사를 하시는 모습에 그저 감사했다.

2.27.3차 항암주사 전 2시간 전에 채혈을 꼭 해야한다

그래서 나도  기다림의 시간이 길다고 느껴질 때 역설적이라도 "벌써 81번째네"라고 말한다. "벌써 내 앞에 대기인원수 77명으로 줄었어"


 불쑥  '아직도의 마음'이 들어오려고 하면 마음의 눈을 다른 곳에 두려고 노력한다. 지난 2월 27일 3차 항암 때는 채혈실 근처 빈 의자를 찾아 대기실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전시공간. 두 작가의 그림이 전시돼 있었다. 아크릴물감으로 그렸는데 멀리서 볼수록 사진처럼 느껴졌다. 그 모습이 밝고 일상의 평화를 주는 느낌이 들었다. 

  '일상, 나도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분당서울대학 병원 1동 채혈실 근처 통로 전시관에서 본 그림.


 만약 내가 여전히 "아직도"의 의식으로 살아간다면

 이 큰 병원에 대기의자도 부족하다고 누구처럼 투덜 됐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내 내면에도 여전히 작은 부정어들이  꿈틀대고 있다. 다만 조심조심 없애는 연습 중이다.

항암을 두려워했던 마음을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벌써 항암 세 번했으니 이제 반밖에 안 남았어." 

라고 입 밖으로 던진다. 그러면 진짜 희망이 생긴다. 항암 낮병동  대기실에서 만났던 유방암 환우분의 심란했던 말들도 사라지게 만드는 '마술적 언어'.


 3월에 4차,  4월에 5차,  5월 초에 마지막 항암을 맞는 날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반가이 맞이하리다. 아픔도 고통도 후다닥 보낼 테다. 벌써, 세 번째 항암도 무사히 지나가고 있고, 벌써 다음 주가 네 번째다.


나의 민머리도 언젠가는 자라겠지. 내 머리카락도 희망을 먹고 잘 자라주길 바란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편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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