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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헉죄송 Nov 06. 2019

소나무를 옮겨 심고 연못과 정원을 만들며..

우프, 한국 우프, GW_109

강원도의 소나무 농원에서는 호스트님의 집 안에서 함께 지내며 세 끼 식사도 같이 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차를 마시며 TV를 보거나 했는데 집이 아닌 곳에서 이러고 있다는 게 퍽 묘하게 느껴졌었다. 계속 같은 공간에서 지낸 덕에, 또 마음이 잘 맞은 덕에 호스트님 부부와는 금방 가까워졌었다.

이전 양계농장에서 꽤 긴 시간을 보내고 호스트님과 좀 가까워졌을 때 호스트님께서 농담으로 내게 처음 왔을 때는 무슨 군대 이등병인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그 말 그대로 때는 여러 긴장과 걱정으로 확실히 굳어있었다. 이 곳에 와서는 이전 농장에서의 좋은 기억과 호스트님 부부의 친절함 덕분에 금방 마음을 열어젖히고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가끔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샌가 아내 분께서는 소소하게 남편 분 자랑을 하시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부럽고 귀여워서 질투 난다고 좋으시겠다고 괜히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우프를 시작하기 전에 했던 걱정들이 무색할 정도로 경험한 두 곳이 다 좋은 곳이니 기분이 되게 좋았다. 이때의 나는 스스로가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유들유들해져 있었다. 내가 지냈던 방 바로 바깥에는 빗물이 흐르는 빗물 관이 있었다. 평소에는 모르고 있다가 비가 오는 날 밤이 되어서야 그 존재를 알았다. 밤중에 비가 온 다음 날 호스트님 부부께서는 시끄러워서 불편하지 않았느냐고 걱정해주셨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불편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ASMR인가 해서 일부러 빗소리를 찾아서 듣는데 나는 이렇게 편하게 듣는구나 하면서 잤었다. 평소에 불평불만이 엄청 많은 나로서는 스스로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을 한다는 게 참 별스러운 일이었다.

이렇듯 정말 좋은 곳이었지만, 사실 이 곳에서 했던 일은 내게 잘 맞지 않았다. 포클레인을 이용해 엄청나게 큰 소나무들을 이곳저곳에 옮겨 심는 일이었는데, 이 작업을 하는 동안 자꾸 딴생각이 들었었다.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 자란 소나무를 사는 걸까? 소나무 묘목을 사서 기르는 게 훨씬 더 충만한 일이지 않을까..?’


사실 이런 불만 아닌 불만이 드는 데에는 포클레인의 영향이 컸다. 석유 농업이라는 개념이 있다. 현대 농업의 높은 석유, 기계 의존도를 꼬집는 개념이다. 이를 인상 깊게 본 나는 우프를 통해 석유와 기계에 덜 의존적인 농사를 경험하고 싶었다. 그런 내게 포클레인은 그렇게 반가운 기계는 아니었다.


포클레인은 이제까지 직접 본 것 중 가장 기계다운 기계였다. 엄청나게 크고 힘이 세고, 큰 소리를 내었다. 한 번은 포클레인에 끈을 걸고 실수로 손을 바로 빼지 않아 아주 짧은 시간 포클레인에 이끌린 적이 있었다. 1초도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고 특별히 위험할 것도 없이 잠깐 끌려갔을 뿐이지만 그렇게나 센 힘을 체감하는 것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일이었다. 이 일을 겪으며 포클레인이 소나무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걸 볼 때마다 좀 더 위축됐었다.

기계나 석유와 같은 문제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포클레인과 함께 일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다. 생각하기 나름의 문제일 테지만,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나로서는 일의 주도권이 완전히 포클레인에 있고 인간은 포클레인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잔심부름을 하기만 하는 느낌이 들었고, 재미가 없었다.

이렇게 포클레인에 대해 불만이 있다 보니 작업에 포클레인이 필요하지 않도록 ‘소나무 묘목을 사다가 직접 기르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나로서는 다행이게도, 지내는 동안 소나무 관련된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호스트님은 반 농담으로 시기를 잘못 골라서 왔다고, 갑자기 주문이 많이 들어와서 이례적으로 소나무 일이 많았던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소나무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이후로는 공터에 연못 및 정원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이게 참 재미있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포클레인은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다. 하지만 소나무를 옮길 때보다는 인간의 손길이 훨씬 중요했다. 기계에 이끌려간다기보다 기계와 협력해서 일을 해 간다는 느낌이 좋았다. 심미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업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해 이전에는 소나무가 예쁘다는 생각을 잘 못했었는데 정원을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는 적절한 곳에 놓여있는 적절한 모양의 소나무가 참 예쁘다고 생각이 들었다. 정원을 잘 꾸미기 위해서는 어떻게 자랄지 불확실한 소나무 묘목보다 자라 있는 소나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작업에서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어떻게 하면 더 튼튼할지, 어떻게 하면 물이 물길 따라 잘 흐를지 등의 호스트님의 공학적인 구상들, 고민들이었다. 전문적인 직업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직접 이런 설계와 시공을 한다는 게 인상 깊었다. 호스트님의 구상을 따라 차근차근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어느샌가 연못과 정원이 완성되어 있었다.

소나무에 별로 관심이 없었음에도 이 농장에 오게 된 것은”‘18세기 문물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다"는 소개 문구 때문이었다. 주로 책으로 환경문제를 접하며 기계문명에 막연히 반감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이 말이 참 멋지게 느껴졌고 내 멋대로 탈(脫) 석유, 탈 기계, 탈 전기 등의 일상생활을 상상하며 우프 신청을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와서 경험한 일상생활은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달랐다.

그러다가 호스트님의 여러 일을 거들면서 호스트님이 18세기 문명을 적으실 때 고려하셨던 바를 약간 짐작하게 되었다. 호스트님은 참 손재주가 좋은 분이셨다. 자신의 머리와 두 손 두 발로 할 수 있는 게 많은 분이셨다. 함께 연못과 정원을 만들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미 흙벽돌로 집을 4채나 지어 놓으시기도 했다. 만약 나와 호스트님이 같이 18세기에 떨어진다면 나는 짧은 시간 안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테지만 호스트님은 어떻게든 잘 지내실 수 있을 것 같았다. 분업과 전문화가 대두되기 이전의, 효율은 떨어지지만 많은 것을 스스로 할 수 있었던 인간의 자주성 또한 18세기 문물의 특징이지 않을까!


호스트님이 직접 지으신 집은 참 좋아 보였다. 직접 지은 거라서 그런지 내부 구조가 개성적이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벽의 높이만큼이나 세로로 길쭉한 직사각형의 창을 좋아했다. 창으로 훤히 보이는 풍경이 이쁘기도 했지만 가로로 짧고 세로로 긴 그 독특한 창의 모양새가 주는 느낌이 좋았다. 가로길이 상으로는 풍경을 훔쳐보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세로 길이 상으로는 풍경을 온전히 마주하기도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창이었다. 흙벽돌로 지은 집에다가 멋진 스토브도 있어서 그런지 건강한 느낌도 났는데 호스트님의 친구분이 건강 요양 차 와 있기도 했다.

호스트님은 앞으로 집 1채를 더 지을 예정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혹시 집을 짓는 과정에 관심이 있으면 얼마든지 더 있어도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고민이 되었다. 직접 집을 만들어가는 자주성은 정말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혹시나 내가 농촌으로 살게 된다면 농업 기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과정을 배워두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은 다른 농장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프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사실 아직 땅 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여기서 계속 있어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테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농사일을 배우고 싶었다. 포클레인에 대한 반감은 많이 덜어졌긴 했지만 포클레인과 좀 거리를 두고 싶기도 했다.

농장을 떠나게 될 무렵, 호스트님이 조심스럽게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셨다. 사람에 따라 경험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다른 농장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머무른 후에 다른 농장에 갔다가 그 농장 호스트와 잘 맞지 않아 이 곳으로 돌아온 우퍼가 종종 있다고 하셨다.


나는 이제까지 좋은 분들만 만나왔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구나 싶어서 신기하기도 했고 그냥 그 상황이 좀 웃기기도 했다. 그리고서는 내게도 혹시 돌아다니다가 안 좋은 일을 겪게 되거나 하면 언제든지 이 곳으로 돌아오라고 덧붙여 주셨다. 참 따뜻하고 감사했다. 떠나갈 때에는 내가 좋아라 했던 달맞이 꽃 차도 챙겨주셨다. 우프 하길 잘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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