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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헉죄송 Nov 11. 2019

도시 샌님이 강원도 철원에서 모종판을 만들며..

한국 우프, 우프, ,GW_111

양계농장에서의 일도 소나무 농원에서의 일도 농사라고 하면 농사였지만, ‘논밭에서 곡식이나 채소를 심어 가꾸는 행위’라는 좁은 의미에서의 농사는 이 곳에 와서야 처음으로 했다.


이 곳에 오기 직전, 이제 4월 중후반이 되니 두꺼운 겨울 옷들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 택배로 친구 집에 보냈다. 하지만 강원도는 4월 중후반에도 쌀쌀했다.. 호스트님이 깔깔이를 빌려주셔서 다행이었다.



봄이 되어가고 있지만 약간은 쌀쌀했던 이 시기에, 모종판 만드는 일을 했다.

(곡식이나 채소를 기를 때에 매 순간 매 순간이 중요하지만 싹이 트는 시기는 아주 취약한 시기로 특히나 중요하다. 예컨대 땅에 심었는데 갑자기 서리가 내리면 그 싹들은 끝이다. 그렇기에 이 시기를 잘 넘기기 위해 씨앗을 땅에 바로 심지 않고 인간이 온도나 습도를 조절해서 보호해 줄 수 있는 환경(주로 비닐하우스 내부)에서 어느 정도 기르고 나서 땅으로 옮겨 심는 방법이 사용된다. 이 방법에서 땅을 대신해 씨앗이 초기에 일정 정도 길러지는 곳이 모종판이다.)


작업은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이었다. 모종판 하나 꺼내서 흙 깔고  씨 넣고 다시 흙으로 덮고, 다시 모종판 꺼내서 흙 깔고 씨 넣고 흙으로 덮고, 다시 모종판 꺼내고...


단순한 일이다 보니 호스트님은 이 일을 내게 맡기시고 다른 일을 하셨다. 호스트님은 우퍼가 나 혼자임을 안타까워하시며 혼자서 괜찮겠느냐고, 쓸쓸하지(?) 않겠느냐고 신경 써주셨지만 나는 오히려 혼자서 하는 게 좋았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은 지루하기도 했지만 약간 서늘한 강원도 날씨 속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손으로 흙을 주물럭거리는 작업을 차근차근히 진행하는 데에는 나름의 쾌적함이 있었다.



아주 단순한 작업이지만 나름 섬세함을 요구하는 부분도 있었다. 각 구멍마다 적절한 씨앗의 개수를 넣는 일이었는데, 내 손 끝은 뭉뚱한 반면 씨앗은 너무 작아서 집기가 좀 어려웠다. 그런데 하다 보니 손으로 씨앗을 집는 게 아니라 손금 위에 씨앗을 걸쳐두고 하나씩 떨어트리는 요령을 발견했다.
작업이 편해진 것도 좋았지만 우리 몸에 이렇게 농업 적합적(?)인 부분이 있다는 게 재미있게 느껴졌다.


사냥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 동물의 몸에 강력한 손발톱이 있듯이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아야 하는 인간의 몸에 손금이 있는 느낌이었다. 손금이 마치 인간과 농사가 맺고 있는 강력한 연결고리의 증거물같이 느껴졌다. 진화론이라는 인류의 지적 재산이 무시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별 별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역시 인간의 몸은 그다지 농사일에 적합적이지 않았다. 땅을 향해 쭈그려 앉아 있는 자세로 오래 있다 보니 목과 허리와 허벅지와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다양한 자세를 시도해보았지만 어쨌든 땅을 향해 몸을 숙여야 한다는 큰 틀은 변하지 않았기에 아팠다.


인간이 목숨을 부지하려면 먹어야 한다, 먹기 위해서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 농사를 지으려면 허리를 숙여야 한다, 허리를 숙이면 아프다, 긴 기간 동안 숙이고 있으면 허리 건강이 안 좋아진다.


인간은 왜 목숨을 부지하려다가 몸이 안 좋아지는 걸까, 인간 몸은 왜 이리 비합리적 일까.


혹은, 꽃이 피고 지듯이, 세상 만물이 그러하듯이, 건강한 인간의 몸이 살아가면서 점점 닳아가는 것 또한 하나의 옳은 이치인 걸까.


혹은, 식물 공장 같은 것을 발전시켜 허리 굽히지 않고 먹을 것을 생산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인 걸까.


다 바보 같은 생각이다. 비합리적이니, 옳은 이치니, 숙명이니 뭐니, 이는 인간을 보살피는 고차원의 존재, 의도, 목적을 상정한 제멋대로의 해석과 의미부여다. 그런 고차원의 존재는 없다.


인간은 그냥 태어나져 버렸고 농사는 세계에 내던져진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 한 다양한 궁리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에게 농사는 중요하고 특별하지만 농사에게 인간은 그렇지 않다. 농사가 인간 몸에 잘 맞아떨어져야 할 까닭은 없다.


왜 이렇게 잡생각이 많이 떠오를까. 농사일을 하면서 허리가 아픈 일을 왜 이렇게까지 어찌어찌 해석하지 않고서는 무던히 받아들일 수 없는 걸까. 농경의 시작, 정착 생활의 시작, 문명의 시작, 이성의 발달은 꼭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쓸모없는 생각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사람에게는.. 문명 발달 이전에 동물과 같이 살아가는 인간보다 행복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적어도 그 시기의 인간들은 다른 동물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진 않았겠지..


잡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아주 실질적인 걱정이 들기도 했다. 내가 만든 모종판에서 작물들이 잘 자라날까? 맡길 만하니까 맡기셨을 테고 직접 해 보니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했지만 한 해 농사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시기를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다.


이 작물들이 한참 자라날 시기에 내가 이 농장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더욱 신경이 쓰였다.
이렇게 신경이 쓰이면 계속 이 농장에 있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책임감이 들었지만, 신경이 쓰였지만, 다른 농장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다른 농작물들은 어떻게 자라는지 궁금했고 다른 농부 분들은 어떤 분들인지 만나보고 싶었다.


지난 농장들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느꼈었다. 5주, 3주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고 여러 경험을 했지만 결국은 농장 전체의 일에서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었다. 양계농장에서는 결국 병아리를 들이는 일을 하지 못했고 소나무 농장에서는 집을 짓는 일을 하지 못 했다.


새삼 나는 이 농장 여행들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자 하는 건지 싶었다. 농사 기술을 배우고 싶은 것이라면 사실 귀농귀촌학교 이런 곳을 가는 것이 제일 나았을 것이다. 이때까지는 이 문제를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진 않고, 그냥 더 돌아다니며 많은 농장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다. 


그렇게 여러 생각을 하며 모종판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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