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헉죄송 Nov 21. 2019

우프를 하다가 읽은 어린 왕자는 너무 아름다웠지만..2

우프코리아, 우프, GW_111

이 글에는 GW_111에서의 우프 중에 겪은 갈등 아닌 갈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사실 이렇게 글을 쓰기까지는 좀 조심스러웠다.


이 글은 개인적인 기록이지만, 다른 사람이 거의 읽지 않지만, 어쨌든 공개된 장소에서 누군가 읽을 수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호스트님이 해주셨던 많은 존중과 배려에 비해 일순간에 지나지 않는 좋지 않은 순간을 글로 쓰는 것이 옳은 일인가 싶었다.


특히나 이때의 일에 대해 서로 툭 터놓고 얘기를 한 것도 아니었기에 온전히 내 관점에서 글을 쓰게 되다 보니 더욱 그랬다.

만약 내 마음에 어떤 응어리가 남아 있었다면 오히려 글을 적지 못 했을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이 곳에서의 호스트님들이 참 좋고 감사드린다.


좋은 순간 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담아, 이 곳에서 호스트님과 좋은 관계를 맺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순간 중 하나를 적을 뿐이라는 믿음을 담아 이렇게 써 보게 되었다.
 



모종판이 완성된 이후에는 땅을 갈아엎거나, 돌을 골라내거나, 비닐을 덮는 등 농사를 시작하기 전 땅을 준비시키는 작업을 했다. 이 작업은 호스트님 부부 중 남편 분과 함께 하였는데 참 힘들었다. 내게 말씀하시는 어투, 방식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말씀을 왜 저렇게까지 무섭게 하시지..’ 싶었다. 무섭기도 하고 화나기도 했다. 같이 있기에 힘든데, 우프의 특성상 계속해서 마주하고 있어야 하니까 더욱 힘들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자면 내가 좀 어리바리했다. 작업 중 내게 요구하시는 바를 빠릿빠릿하게 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원래도 어투에 좀 예민하다. 부산 출신이지만 너무 거칠어서 부산 사투리도 싫어한다. 이전까지 농장에서 상냥하게, 나긋하게 말씀하시는 분들만 보아 왔다 보니 그렇지 않은 화법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도 무섭게 한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 여지없이 기분이 나빠졌다.

상황을 또 달리 보자면 이렇게 스트레스받아가며 굳이 여기 있을 필요가 없기도 했다. 이전에 있었던 농장들에서 언제든지 다시 와도 된다고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간단한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혼날 때에는 좀 힘들었지만 이외에는 참 좋은 곳이었다.


호스트님 부부 중 아내 분과는 굉장히 잘 지냈다. 스스로는 매우 열심히 일하시면서도 우퍼에게 중요한 휴식시간과 식사를 잘 챙겨주시는 분이셨다. 마음 힘들게 일을 했더라도, 일을 한 뒤에는 개인 자유시간이 확실하게 확보되었기에 아주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직접 가공하시는 떡과 식혜 등이 정말 맛있었는데, 이 농장은 가공, 판매, 체험 등 여러 가지 일(소위 말하는 6차 산업)을 하고 있는 곳으로 내 입장에서는 다양한 일을 하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고 배울 점이 많았다.

그리고 이제까지 와본 곳 중 시설이 제일 좋았다. 혼자 쓰는 넓은 방 안에 화장실 샤워실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다른 곳에서도 큰 불편함 없이 지내긴 했지만 역시 이런 형태가 제일 편하긴 했다. 이후로도 이만큼 시설이 편한 우프 농장은 거의 없었다.



마지막으로 늦봄 강원도의 이제 갓 깨어난 듯한 초록색은 참 예뻤다. 강아지들도 엄청 귀여웠다.

좀 애매하기도 했다. 엄격한 계약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언제까지 이 농장에 있겠다는 약속이 되어 있기는 했다. 그렇기에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나가야겠어요……” 말하는 순간의 죄송함과 어색함을 이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후에 정말로 나쁜 호스트를 만나고 나서야 정말 안 좋으면 죄송함이고 어색함이고 당당하게 요구하게 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책의 내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격적, 실존적 관계 맺음으로부터 개개인의 고유한 의미가 생겨난다는 책의 내용은 내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

인격적, 실존적 관계 맺음은 단순히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였다. 책에서 또 달리 중요하게 다루어진 내용은 ‘궁극적 가르침’으로서의 종교들이 품고 있는 보편적인 가르침이었다. 그 가르침 또한 결국은 사랑이었다. 이 전에 떠듬떠듬 알고만 있었던 여러 구절들을 책을 통해서야 조금 더 깊이 곱씹게 되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가 먼저 남에게 그렇게 해주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그것이 무슨 칭찬거리가 되랴? 그런 일은 죄인들도 다들 그렇게 할 줄 안다.”
“어찌하여 너희는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 하느냐?”

좀 힘들다고 그냥 관계를 끊고 나가버리면 이 책을 읽고 감동할 자격이 없다고 느껴졌다. 책 보면서 감동했다가, 막상 혼나면 화나고 싫었다가, 다시 책 읽으면 감동하고 반성했다가, 내 모습이 바보 같아서 쓴웃음을 지었다가, 나갈까 말까를 고민했다가를 반복하면서 지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열심히 일했다. 내 문제인 어리바리함을 메우려면 그냥 더 열심히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마주하고 있는 건 좀 힘든 일이었지만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는 휴식시간을 통해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지내다가 어느 순간 무언가 달라졌다. 관계가 편해졌다.
이 부분은 좀 애매하다. 호스트님(부부 중 남편 분)이 나를 대하시는 게 정말로 변한 건지 아니면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변한 건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로 툭 터놓고 얘기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별로 상관이 없었다.

이 일은 나로서는 굉장히 새로운 일이었다. 비단 우프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인생 통틀어서 새로웠다. 나는 이제까지 좀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마주하고 있기가 힘들어서 그냥 관계에서 도망쳤다. 1:1 관계에서는 물론 모임에서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모임을 안 나갔다. 나름대로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어쨌든 도망쳤다. 덕분에 친구의 수가 굉장히 적다.

갈등이 있었던(나 혼자만의 갈등일 수도 있지만;) 관계에서 이렇게 계속해서 마주하다가 결국은 털털하게 화해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전에도 다른 관계에서 표면 상의 화해는 몇 번 해보았으나 상대방으로 인해 기분이 나빠졌던 기억이 도저히 지워지지가 않아서 결국 관계는 끊어졌다. 하지만 이때에는, 그 전의 안 좋은 일이 정말 눈 녹듯 사라졌다. 그냥 ‘편해지니 좋구먼~’ 싶었다.

약속한 일정보다 빨리 나갈까 말까 하던 고민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오히려 원래 약속한 기간보다 더 오래 있기로 했다. 어린이날 농부장터가 대목이기에 그때까지 함께 하기로 했다. 약속한 기간을 마치고 나갈 때에 호스트님 부부께서는 차비와 떡과 식혜를 챙겨주신 데다가 더해 부산 본가에 여러 가지 음식들을 보내주시기 까지 했다. 참 감사한 인연이었다.

갈등과 마주함과 화해, 평범하다면 평범한 일이었지만 내게는 아주 새롭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스스로가 좀 성장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떤 특별한 계기 없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이루어졌다는 게 더 좋았다. 같이 지낸다는 건 참 중요한 걸까?

분명 농사를 배우려고 시작한 우프 생활이었는데, 뭔가 의도하지 않게 전인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우프를 하다가 읽은 어린 왕자는 너무 아름다웠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