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돼지들에게 조금 더 무감해지기만 하면 조금 덜 힘들어질 수 있다 - 라는 생각은 확실히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이런 위험한 생각은 괜찮은 사람은 아니지만 특별히 나쁜 놈 또한 아닌 내게 문득 떠올라 버렸다.
CB_108에서존중받고 있는 돼지들을 보고선,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시선으로 돼지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돼지들을 돌보고 있는 사람 또한 볼 수 있었다.
농장에 머무르는 동안 본 돼지의 여러 모습 중 가장 마음에 새겨진 장면은 돼지들이 농장을 떠나가는 장면이었다. 얼마나 존중받으며 자랐든 간에, 내가 얼마나 귀엽게 바라보았든 간에, 돼지들은 결국 고기가 되기 위해 길러진 것이었기에 충분히 자란 후에는 도축장으로 갔다.
새끼들이 나들이를 하고 있다. 좋은 기분이려나?
이는 돼지들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도 이들의 행복을 함부로 논할 수 없었던 이유,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불편함이기도 했다.
CB_108은 돼지들이 떠나가는 과정도 남다르긴 했다. 돼지들이 농장에서 도축장으로 갈 때 업자들이 와서 데려가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CB_108에서는 훈 목부님이 직접 데리고 갈 수 있도록 이동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돼지들이 도축장으로 들어갈 때에 함부로 다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돼지들을 차에 실을 때에, 보통의 경우 돼지들을 말 그대로 채찍질하면서 이동시키지만 CB_108에서는 트럭까지 가는 길에 돼지들이 좋아하는 풀을 두고 돼지들이 직접 이동하도록 하고 있었다.
트럭을 갖추는 데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들었을 것이다. 또한 돼지들은 강압이 아닌 그저 풀만으로는 트럭으로 쉽사리 이동해주지 않았다.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시 한번 차갑게 표현하자면 굉장히 비효율적이었다.
훈 목부님, 연 목부님은 이 과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진행하고 있었다. 무난하게 말하자면 그냥 슬퍼 보였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돼지들을 아끼던 사람들이, 보내는 과정까지도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이는 사람들이, 돼지를 보내는 마음이란 어떤 걸까? 슬프긴 슬플 터이지만, 어떤 슬픔일까? 분명 내가 모르는 슬픔이었다.
나도 도축장까지 가는 길을 함께 가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더 돼지에게 책임감을 갖고 싶었고, 돼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싶었다. 훈 목부님은 나에게 돼지에 관해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셨고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셨지만 이번 경우에는 달랐다.
만약 가게 되면, 안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물론 들어갈 수도 없다) 그저 근처까지만 가는 것뿐이더라도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을 거라고, 도축장까지 함께 하는 일은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포기했다.
다만, 아쉬움보다도 궁금증이 남았다. 나보다 훨씬 더 돼지를 아끼고, 깊은 관계를 맺었던 훈 목부님은 그곳에서 도대체 어떤 감정을 느낄까..?
훈 목부님은 농장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돼지를 보내고 난 뒤, '농장을 시작하지 말걸' 하며 큰 후회를 했다고 했다. 돼지를 보내는 일은 본인이 짐작한 것보다도 훨씬 더 어려웠다. 그리고 사실 지금까지도 보낼 때가 되면 너무 힘들고, 농장을 그만두고 싶어 진다고 했다.
사실 이런 슬픔은 비단 보낼 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일상생활에서도 곧잘 접할 수 있었다. 같이 일을 하다가 훈 목부님께서 문득문득 돼지들을 바라보았다.
'바라보다'와 '보다'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로서는 사전적 정의의 차이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바라보다'라고 하는 단어는 나로 하여금 돼지들을 바라보는 훈 목부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 모습은 분명 '본다'라는 표현은 충분하지 않았다.
훈 목부님은 그렇게 바라보다가 몇몇 돼지들을 짚으며 각 돼지들의 상태에 따라 어떤 조치를 취해줘야 하는 지를 말했다. 사실 나로서는 돼지의 상태가 어떤지 이전에 돼지들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았다. 훈 목부님은 그렇게 돼지들을 알아볼 수 있기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보았으리라.
그러다가 또 '돼지를 기르기 싫다..'라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나 애를 쓰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가 돼지에게 잘해주고 있는지 확신이 안 든다고, 너무 모자란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너무도 힘들지만, 그럼에도 훈 목부님과 연 목부님은 계속해서 농장을 운영해 나가고 있었다. 훈 목부님은 귀농귀촌을 준비하면서 여러 공부를 하는 동안 공장식 농장에도 물론 가보았는데, 상상 이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나 역시도 그런 곳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싶었다. 그런 내게 그나마 와 닿았던 설명이, 냄새였다. 그날 공장식 농장을 갈 때에 입었던 옷은 심하게 배인 냄새가 끝끝내 빠지지 않아 버리게 되었다고 했다. CB_108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런 곳에서 동물들이 길러진다니..
훈 목부님은 그런 농장을 떠올리면 너무 마음이 아프고, 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지만 돼지들이 조금이나마 나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서 계속 농장을 운영해가고 있다고 했다.
채식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관심을 가졌을 때에, 채식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을 접했었다. 그러던 중에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동물복지를 비롯한 동물을 위하느니 뭐니 하는 소리들은 결국 위선,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지나친 냉소주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반박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훈 목부님의 서러움을 보는 동안에는, 돼지를 위해 자기가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자조를 볼 때에는, 그런 지적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설움이었다.
인간으로 인해서, 인간을 위해, 인간 때문에 동물이 죽는다는 것은 아주 무거운 일이다. 가볍게 다루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다만 사람 또한 가볍게 다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훈 목부님은 돼지에게 잘해주고 싶어서 애를 쓰고 있었다.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돼지들에게 조금만 더 무감해지면 조금 덜 힘들어질 수 있을 텐데...라는생각이 떠올랐다.
지내는 동안 많이 가까워져서 훈 목부님이라기보다는 형이라고 부르게 됐었다. 서로 좀 더 편하게 하게 됐다. 어느 날 훈이 형이 돼지들을 보며 또 한숨을 쉬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말이 튀어나왔다.
"동물의 행복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해야 동물한테 잘해주는 건지 모르겠지만, 형의 마음은 돼지들에ㄱ..."
덧.
최근에 '나를 보내지 마'라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읽었다. 머리가 아팠다. 생명이 다른 생명에게 의존한다는 것, 관계를 맺는다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내게 있어 다른 생명의 희생을 받아들이는 일은 뒤죽박죽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