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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민 ASM Apr 06. 2023

33. 키드 (1921)

버려진 아이와 사기꾼 아저씨의 휴먼 드라마

감독. 찰리 채플린

출연. 찰리 채플린, 재키 쿠건, 에드나 퍼비안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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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드>는 찰리 채플린이 처음으로 연출한 장편 영화이다. 약 100년 전 제작된 50분이 조금 넘는 이 흥미로운 작품 속에는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느끼고 싶어하는 모든 종류의 감정들이 어우러져 있다. 한 여인이 아이를 낳게 되어 자선병원에서 쫓겨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가난으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대저택 앞에 세워진 고급 자동차에 두고 자리를 떠나지만 하필 그 자동차를 도둑들이 훔쳐 달아나게 되고, 아이를 발견한 도둑들은 골목의 쓰레기 더미에 아이를 버리고는 도망친다. 우연히 길을 지나던 찰리 채플린은 아이를 발견하고, 얼떨결에 허름한 방에서 아이를 키우게 된다. 아이의 어머니는 뒤늦게 자책하며 대저택으로 돌아오지만 자동차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후 절망한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아이는 아빠와 함께 여전히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고, 어머니는 성공한 스타가 되어 있다.


영화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환경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사방에서 오물이 쏟아지는 더러운 골목과 쓰러져 가는 빈민가의 주택은 잘 정돈된 길에 지어진 으리으리한 대저택과 명확히 비교된다. 그 중 찰리의 집 안에서 일어나는 장면들이 모두 인상깊었다. 주전자로 만든 간이 공갈 젖꼭지를 아이에게 물리며 어설프지만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찰리의 표정은 분명 부족한 처지임을 알지만 아이를 책임지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성장한 아이와 함께 식사를 하는 여러 장면들, 특히 형체를 알기 어려운 어떤 음식을 아이에게 나누어 주는데 굉장한 현실감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팬케이크를 구워 찰리와 함께 먹는 장면에서 남은 한 조각을 반으로 잘라 아이에게 나눠주는 따뜻한 면모를 보여주는데, 부족한 상황에서도 서로를 아끼는 애틋한 감정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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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아이에게 사람들의 집 유리창을 깨도록 하고 자신이 그것을 수리하는 사기 행각을 벌인다. 이 발칙한 행동은 자칫 심각한 범죄로 느껴질 수 있지만 아이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채플린의 재치 넘치는 연기로 관객들로 하여금 인물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도록 잘 그려낸다. 아이 뒤에 숨어 있다가 그를 보고 놀라서 도망가는 아이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가 버리지만, 채플린에게는 양보 없이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경찰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또한 주택가에서 괜한 시비가 붙어 사람들과 쫓고 쫓기는 장면들도 그의 영화다운 창의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그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일관된 인간성을 보이지만, 아이와 관련해서는 물러서지 않는 비범한 모습을 보인다. 아픈 아이를 진찰한 의사가 다녀가고 얼마 후, 한 고아원에서 아이를 데리러 찰리의 집을 들이닥친다. 의사가 아이를 돌보기에는 찰리의 생활 환경이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찰리는 아이를 빼앗기게 된다. 트럭에 남겨진 아이가 울며불며 찰리를 애타게 부르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어린 아역배우가 상황을 온전히 다 이해하고 연기하는 듯,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표정을 통해 애절함이 잘 느껴졌다. 이 장면 이후 집 안에서 찰리가 아이의 부름에 응답하며 화면을 슬프게 응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마치 촉진제가 된 듯 이후 찰리는 사람들과 추격전을 벌이다가 결국에는 다시 아이를 되찾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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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성역처럼 느껴지던 인물은 바로 어머니이다. 5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성공을 맛본 그녀는 꼬마 시중에게 팁을 얹어주기도 하고 자선을 베풀며 빈민들을 도와주기도 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선한 인품을 보인다. 그런 그녀도 아이들을 보면 과거의 일이 생각나 슬픔에 잠기는데, 그 아이를 직접 마주하지만 알아채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사를 통해 아이를 버릴 때 그녀가 남긴 쪽지를 받게 되고, 찰리의 아이가 그녀의 아이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신문 광고를 통하여 다시 아이와 함께하게 된다. 집 밖에서 갑작스럽게 아이와 떨어진 찰리는 상심에 빠지며 마치 천국같은 곳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정겹고도 슬픈 꿈을 꾸지만 결국 어머니와 함께 있는 아이와 재회한다.


사실 조금 부자연스러운 전개라고 생각한다. 실수지만 자신이 버린 아이를 몇 년간 정성스레 키운 찰리에게 제대로 고지하지도 않은 채 일단 아이를 데려온 후에 찰리를 그녀의 집으로 불러들이는 과정이 조금은 의아했다. 다만 앞에 언급했듯이 영화에서 어머니는 절대적인 선함 그 자체로 그려졌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될 것이라고 여기진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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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넓게 보면 결핍과 사랑이라는 두개의 큰 키워드가 떠오른다. 세 등장인물은 각자 생활의 결핍이 있는 상태였지만, 성공과 사랑이라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따뜻한 존재를 맞이한다. 또한 아이의 입장에서는 유아기 시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부족하겠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그를 잊지 않고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원래는 없었던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로 부터의 사랑도 받았기 때문에 양쪽 모두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한 편의 잘 만든 휴먼 드라마였고, <황금광시대>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찰리 채플린의 ‘트램프’가 왜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중에게 깊게 각인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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