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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15. 2024

반년 간의 여행으로 얻은 뜻밖의 자산

여름의 절정을 대전에서

1년쯤 살고 싶다고 느낀 동해에서 한달살기를 하고 싶었지만, 여름 성수기에 강원도에서 한 달짜리 방을 급하게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간혹 숙소가 남아있어도 대부분이 성수기 요금을 별도로 책정해 평상시의 2배가량을 요구했다.


‘여름엔 강원도’로 콘셉트를 잡고 떠나온 여행이지만 속초 한달살기가 꼬이면서 상황은 어쩔 수 없이 흘러갔다. 경기도로 가려했으나 당시 경기도 쪽이 장마 물난리 피해가 심할 때라 그쪽으로 갈 순 없었다. 8월 중순엔 서울에 가야 할 일이 있어 남쪽 멀리 내려가는 건 부담스러웠다. 동해에서의 계약 종료일이 다가오자 우리 부부는 갈 곳을 잃고 방황했다.


"다시 대전으로 갈까? 지난번 머물렀던 집, 거기 비어있네."

남편의 제안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속초에서 숙소에 크게 실망하여 여행을 포기했던 경험이 있어 입증된 곳이 오히려 마음 편할 것 같았다.

     

짧은 여행에서 중요한 게 날씨, 숙소, 동행자라면, 한달살기 여행의 만족도는 숙소에 의해 80% 이상이 좌우된다. 나는 숙소에서 특히 청결, 통풍 그리고 뷰를 보는 편인데 대전 집은 적어도 이 세 가지를 만족시켰던 곳이다.     

창밖은 초록초록


지난 6월 보름간 머물렀던 대전 집주인에게 SNS 메시지를 보냈다. 일전에 체크아웃하던 날, 그(녀)는 우리에게 깨끗하게 써주어 감사하다며 커피 쿠폰을 보내준 적이 있었다. 재방문을 원한다고 했더니 흔쾌히 저렴하게 집을 빌려주시겠다고 하셨다. 주인 입장에서는 여름 성수기, 휴가지가 아니라 찾는 이가 없는 집을 비워두느니 사람을 채우는 게 이익이고, 휴가가 아닌 삶을 사는 여행자에게는 아는 집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지낼 수 있으니 매우 잘된 일이었다.      


40일 만에 다시 찾은 대전 외곽의 오래된 아파트가 한번 와 봤던 데라고 친숙하고, 이곳이 마치 우리의 베이스캠프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비록 외관은 낡고, 주차난은 심각하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밝고 깨끗한 집에 마음이 편해진다. 1km쯤 걸어 나가면 병원, 식당, 마트 등 필요한 것들이 다 있다. 1일 1외식을 위해 하루에 한 번씩 왕복 30분 걷기 운동을 하게되니 이 또한 감사하게 감당한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집도 없다. 그나마 가장 완벽한 집은 내 손때 묻어 정들고 익숙한, 각자가 살고 있는 집일 것이다. 당연한 진리를 반년 간 7곳의 숙소를 경험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복도에서 봤던 일몰


여행으로 얻은 것이 추억만은 아니다. 반년의 한달살기로 낯선 지역 속 매우 익숙한 장소가 생기고, 개인 연락처를 아는 숙소주인이 생기는 것 역시 우리에게 쌓이는 자산처럼 느껴진다. 여행을 떠나기 전 장점보다 단점이 많이 보였던 우리 동네, 우리 집이 얼마나 살만한 곳이었는지도 새삼 깨달으며 나를 둘러싼 환경 모든 것에 관대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6월 초 제주살이 막판에 손님치레로 지쳤던 몸과 마음을 재정비한 곳이 대전이었고, 7월 말 갈 곳 없어 방황하던 우리 부부를 다시 반겨준 준 곳도 대전이다. 이 도시는 내게 “여기선 푹 쉬어.” 라며 도닥여 주는 것 같다.

갔노라, 기다렸노라, 먹었노라 성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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