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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러 Oct 25. 2020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일본에 와서 이 고생을

브런치를 시작한 건 올해 6월의 일. 일본에 와서 회사 생활을 시작한 건 5년 전의 일.

브런치에는 비교적 최근의 있었던 일들, 생각하게 하는 일들을 쓰고 있고 글은 거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번지르르하다.


하지만..

일본에서 직장인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2년 정도는 정말 힘들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일본에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하며 늦은 저녁 회사 불 꺼진 사무실에서 흐느껴 운 적도 있다.


한국에 있는 부모님한테 전화해서 그냥 다 관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엉엉 운 적도 있다.


창피한 일이지만, 진짜로 출근 안 하고 한국행 비행기 티켓 사서 한국 간 적도 있다.

신기하게도 몇 년이 지나니 힘들었던 일들은 다 잊어버렸다. 글로 쓰려해도 쓸 만큼 그때의 감정이 잘 떠오르지도 않는다.


분명한 건, 당시 내가 힘들었던 건 일본에서의 생활환경, 외국인으로서 받는 차별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였다는 것.

내 상사, H상이 나를 힘들게 했었다.

H상과 있었던 -지금 생각해낼 수 있는-간단한 에피소드를 써보고자 하는데 이 글이 예전 상사에 대한 비방이 되지는 않을지 아주 조심스럽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발행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H상은 교육관이 철저한, 다소 엄격한 상사였다.

'경험 학습'이론에 기초해 교육을 했다. 사람이 무언가를 배울 때 교과서/책, OJT 등의 툴보다 가장 효과적인 것이 '직접 경험하는 것'이라는 이론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가르쳐줄 때도 처음 딱 한 번은 H상이 몸소 시범을 보이고, 그다음부터는 내가 직접 해야 했다.

예를 들면 학교 경력개발센터 방문.

회사 구인표를 들고 진로담당 선생님을 만나 인사를 드리고, 올해 회사 채용에 대해 설명을 하며 학생 추천을 부탁하는 일종의 영업이다.


H상은 딱 한 번, 동행을 해주었고 그다음부터는 학교에 전화해 약속 잡기, 운전해서 학교 가기, 선생님께 인사드리기 등 모두 혼자 해야 했다. (다른 현県까지 가기도 했다)


이 정도는 약과였다.


입사하고 딱 일 년 채운 때에, ‘내년 한 달간 신입사원 연수 혼자서 다 할 수 있겠지?’라고 H상이 자연스레 물어왔다.


도전과 성장에 목말라 있던 나는 흔쾌히 해보겠다고 했다. 대신 (당연하지만) 혼자서 모든 걸 다 정하고 진행할 순 없으니 중요한 사항들을 상담하는 건 괜찮냐고 물었다.


H상은 물론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준비가 시작되니, H상은 내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항상 바쁘다며 신경질적이었고, 그 정도도 혼자 결재할 수 없냐며 화내기도 했다.

(예를 들면 비즈니스 매너 연수 외부업체 선정. 이걸 상사 허락 없이 어떻게 혼자 결정하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그러면서 ‘이제 몇 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진행은 잘 되고 있는 거 맞냐’며 사무실에서, 같은 부서 사람들 앞에서 나를 다그쳤다. 이런 부분들이 하나하나 수치스러웠다. 윽박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행위는 일절 없었지만, 생각해보니 이게 바로 일본에서 말하는 '파워 하라'(직장 내 괴롭힘) 일지도 모른다. (실제 다른 부서 사람들은 H상과 나의 관계를 '상사의 일방적인 직권 남용'이라 하기도 했다)


어찌 됐든 연말, 1월, 2월.. 시간은 흘러갔고 혼자서 모든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불안함은 남았다. 다 내 교육을 위해 이렇게 몰아붙이는 거려니 하며 어떻게든 마음을 잡았다.


한편으론 이건 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같은 부서 사람들도 H상의 태도를 보며 나를 걱정했었다.


어느 날 아침, 드물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날이었기에 이때다 싶어 신입사원 연수 콘텐츠로 상담을 하러 H상 자리로 갔다.


콘텐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갑자기 말을 끊으며 레이아웃, 이 책상들이 회의실에 다 들어가겠냐며 지적을 했다. 직접 그 회의실에 가서 책상 배열 다 해본 거 맞냐고 묻는다.


늘 가던 회의실이기에 감각적으로 정한 사항이었다. 대답은 ‘아니오’.


그러면 나랑 대화가 안된다며 당장 해보고 오라는 지시만 던진 채 H상은 다시 본인 일로 돌아갔다.


그 회의실은 본사는 아니고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다른 건물에 위치한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대화가 진행이 안되기에 얼른 회의실에 다녀오기로 하고 부서 후배 K상과 둘이서 걸어서 다녀왔다.


K상과 직접 책상들을 다 배열해보니, 역시나 레이아웃에 문제는 없었다.


다시 15분 걸어 본사로 돌아가 H상에게 보고 했다.

"방금 다녀왔습니다. 보고 드린 레이아웃대로 문제없었습니다."


하지만 내 말에 반응하지 않고 같이 다녀온 후배, K상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K상, 보고해줄래요?"


후배는 당연히 나와 같은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그렇냐며 무미건조한 대답과 함께 "그럼 그렇게 해요"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이런 식의 커뮤니케이션은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신입사원연수까지 이제 시간은 얼마 안 남았고 H상이 계속 이대로 나온다면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맡은 일이었고 책임감 있게 진행하고 싶었다.

그래도 매번 매사 이런 식으로, 부서 다른 직원들 도움 없이 홀로 H상과 소통하는 게 버거웠다.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결국, 한 달간 연수를 진행할 모든 준비를 '일단은' 끝마친 채, 연수 시작 일주일 전, 나는 H상에게 보고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웃기는 점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제안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H상 보다 직급이 훨씬 높은 다른 부서 부장이 보다보다 못해 나에게 면담 요청을 해 제안한 것이었다. (그리고 H상 이외의 부서 사람들은 한국에 가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 쓰다 보니 결국 H상이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만, H상과 나 둘 다 개선점이 존재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갑작스레 한국에 돌아간다는 건, 다시 생각해도 무책임하고 창피하고 잘못한 일이다.


그런데 시간이 돌아간다 해도, 나는 그때를 버텨냈을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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