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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Nov 08. 2020

제네바_가을에 걷기 좋은 길

제네바에도 가을이 왔다. 다행히 올해는 10월 말인데도 날씨가 그렇게 춥지는 않고, 지난 2주간 주말의 날씨는 괜찮은 편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기차를 타고 멀리 나가는 게 망설여져서 주말 내내 조금씩 제네바 칸톤을 걸으면서 가을을 느껴보았다. 스위스라는 이미지에 부응하는 입이 떡 벌어질만한 풍경은 제네바에 없지만,  으리으리한 유명한 길보다는 조용한 길을 선호하는, 지역주민인 나에게는 충분히 좋았다. 몇 번씩 다녀서 다 아는 길이지만, 계절의 변화를 보는 기쁨도 있다.  


걷기를 좋아한다면 스위스에서 제일 유용한 앱은 Switzerland Mobility이다. 단, 여기서 제안하는 루트들은 반드시 등산은 아니어서, 종종 마을 한 복판을 지나거나 지루한 도로를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GPS 기능이 있어서 길을 맞게 가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어서 길치인 나에게는 참 고마운 앱이다. 

스위스에서는 모든 걷기 루트가 노란색 화살표로 표시가 되어 있고, 교차점에는 방향도 표시해 둬서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길을 종종 헤맨다. 

https://www.schweizmobil.ch/en/hiking-in-switzerland/hiking-in.html?phrase=geneva&sname=&sid= 


1. River Droite - Meyrin에서 Russin까지.


8시간이 걸리는 이 루트의 일부만 걸었다. 소요시간은 쉬는 시간 포함에서 2시간 30분 정도. 장점은 Meyrin까지 트램 18번을 타고 이동해서 Meyrin village에 내리면 바로 코스 시작이다. 주요 볼거리는 제네바 칸톤의 포도밭들이다. 낮은 산에 와인을 재배하는 포도나무가 아주 가지런히 심어져 있고, 가을에는 노랗게 물들어서 보 칸톤의 라바보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만큼은 아니어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또 동네 사람들 외에는 거의 인적이 드물어서 론 강이 내려다 보이는 포도밭을 혼자 유유자적 거닐 수 있다. 약간의 오르막이 있긴 하지만 동네 산책 가듯이 갈 수 있는 쉬운 길이다. Russin에서는 기차를 타고 제네바 역으로 돌아오면 된다. 


작년에만 해도 가을에 와이너리들이 주말에도 문을 열고 시음회를 하거나 와인을 살 수 있기도 했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인지 문을 연 와이너리를 보지 못했다. 프랑스에서는 와인 재고를 알코올 소독제 만드는데 덤핑으로 넘기는 슬픈 일이 발생했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제네바의 와이너리들은 가족들이 경영하는 소규모가 대부분이고 내수가 전부인데, 괜찮은지 모르겠다. 


2. Nations에서 Genthod까지.

사실 집에서 버스나 기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는 코스를 찾다 보니 걷게 된 루트이다. 유엔 기관들이 있는 Nations 쪽에서 WHO가 있는 방향으로 오르막을 오르면 Pregny Chambesy라는 동네가 나온다. 이 동네는 풍경이 고즈넉하고 조용해서 종종 산책 삼아 가서 공원에서 한참 누워있다 오기도 하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제네바에 오래 살게 된다면 살고 싶은 동네이기도 하다. 하지만 외교관들이 많이 살고, 국제학교가 많아서 집값이 특히나 비싸다고 한다.) 거기서 동네 산책길을 따라서 걷다 보면 레만호가 보이고,  호수 건너 설산도 보인다. 철길을 걷다 보면 역시나 작은 포도밭도 구경할 수 있고, 레만호를 따라서 더 멀리까지 갈 수도 있다. 가볍게 걸으면 역시나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아주 쉬운 길이다. 돌아올 때는 Genthod에서 기차를 타면 15분 만에 제네바로 돌아온다.

 


3.  Sentier du Rhone : Jonction에서 Lignon까지.

이 길은 Sentier du Rhone이란 코스의 일부인데, 제네바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루트이자 가장 자주 가는 루트이다. 사실 Sentier du Rhone을 끝까지 순방향, 역방향으로도 다 걸어 봤는데, 나에게는 이 부분이 제일 좋았다. 이유는 역시나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고, 론 강의 환상적인 사파이어 색 물빛을 실컷 볼 수 있고, 도시 한복판이지만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조용한 숲을 걷는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길도 어렵지 않지만, 그래도 오르막 내리막도 있고 도로 한복판이나 마을 한가운데를 걷는 일이 거의 없어서 고즈넉하다. 친구와 함께 걸었을 때도 가장 만족도가 높은 길이기도 하고 말이다. 빨리 걸으면 1시간 반 정도, 놀면서 쉬면서 걸으면 2시간 정도가 걸린다. 다만 Lignon이란 동네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내가 제네바에서 봤던 가장 못생기고 풍경을 해치는 사악한 건물- 모두 아파트이다-이 있는 동네인데, 여기서 길을 멈추는 이유는 계속 길을 걸어가면 우리 집 반대편으로 가게 돼서 돌아오는 게 번거롭다는 이유밖에 없다. 



이런 길들을 걸을 관광객도 별로 없겠고, 이 글을 보는 제네바에 사는 분들도 없겠지만, 혹여나 제네바에서 시내가 아닌 다른 곳을 걷고 싶다면 소개하고 싶은 곳이다. 제네바에 살면서 이 곳에 마음을 붙이게 된 건, 이 도시 구석구석을 걸으면서부터였다. 걷기가 힐링이 된다는 진부한 말도 역시나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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