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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chelistic Apr 20. 2023

사내괴롭힘, 기다림 끝에 찾아온 악인의 종말.

직장 내 괴롭힘을 일삼던 악당 팀장 퇴치기. 퇴사 전에 날린 사이다.

나는 퇴사 직전까지 사내괴롭힘에 시달렸다. 한 사람의 주도 아래 거짓 루머가 만들어졌고 모두가 그 사람의 말을 믿었다. 너무 터무니없는 내용이라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묵묵히 맡은 일만 했다. 그러나 사내괴롭힘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해졌고 나는 완전히 외톨이가 되었다. 당장 퇴사해도 아깝지 않을 회사였지만 나에겐 계속 일해야하는 이유가 있었다. 코로나 규제가 풀리면 바로 외국으로 떠날 계획이었고 아직 비자를 준비할 자금이 부족했다. 목표를 이룰 때까지 견뎌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주도하던 빌런은 나를 망가트릴 심보로 어리숙한 함정을 팠으니, 그 앞에서 결국 꾹꾹 눌러오고 있던 있던 나의 마음의 소리들이 사이다 처럼, 아니 샴페인 처럼 터져나온 사건이 있었다. 그렇게 사내 악당을 퇴치하며, 전설이 된 나의 퇴사기를 적어본다.


Black Sheep,

검은 양이란 조직 내에서 다르게 행동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나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검은 양이었다. 남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마음 졸이고 애쓰는 것보다는 혼자 지내는 것을 선택했다. 20대 초반부터는 해외 생활을 시작하면서 검은 양들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있으며 조직 내에서도 얼마든지 존중받고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행복한 검은 양으로 잘 살아가던 나에게 위기가 닥쳤다.


디지털 노마드로 자유롭게 유랑하며 살던 나는 코로나로 강제 귀국을 해야 했다. 급한 대로 일을 구하는 바람에 제대로 알아볼 시간도 없이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한국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해 워낙 안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다 사람 하기 나름 아니겠어?'라는 무한 긍정 마인드로 근무를 시작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면접 때 들었던 '우리는 야근이 없어'라던 이사의 말은 일주일 만에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더니 강제 야근으로 이어져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요즘 신입들은 회식도 MT도 안 가. 눈치 없이 연차 반차 써대고, 칼퇴하고. 아주 제 잘나서 뽑힌 줄 알지, 회사 귀한 줄 몰라." 2년간 회사 생활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듣던 소리다. 아재들은 회식만 하면 자리에 없는 직원들 욕하기 바빴고, 근무 중 여사원들에게 성적인 농담도 서슴지 않았는데 거기에 맞장구치는 직원들은 예쁨 받고 고속 승진을 했다. 내게 회사는 내게 귀하게 여길만한 구석 하나 없는 장소였다.


그러나 이 정도는 별 거 아닌 일로 간단히 묻어버리는 강력한 빌런은 따로 있었으니, 그가 바로 김팀장이었다. 묵직한 걸음마다 지독한 향수 냄새를 심고 다니며 입만 열었다 하면 금방 밑천이 드러날게 뻔한 얕은 지식 자랑과 (그 마저도 대부분 유튜브 쇼츠나 나무위키 정보) 자기를 떠받들어 주지 않는 직원들은 찍어서 악랄한 헛소문을 퍼뜨리고 따돌려서 끝내는 퇴사까지 하게 만들고, 자기 라인 중에서도 착하고 만만하다 싶은 직원들에겐 인신공격과 막말을 일삼고 그 반응을 즐기는 맛에 회사를 다니던 인간이었다. 듣기로 입사 전에는 경력도, 기술도 하나 없으면서 오로지 학연, 지연, 빽으로 기어 들어와 영원히 눌러앉은, 연차만큼 썩은 고인 물이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겠다 라고 생각했던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고 매일 최악의 인간성을 갱신해나가는 그를 보면서 저렇게 엉망진창인 사람도 받아주는 사회(여기 이 회사)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신이 이 자를 만들 때 심술과 욕심과 허세를 모두 몰빵 하는 바람에 지식과 인성을 넣을 공간이 부족했나 보다라고 종종 생각했다.


정치병에 걸린 팀장은 누가 누가 내편인가를 시도 때도 없이 시전했는데, 그 시답잖은 허세와 농담에 리액션하는 직원은 통과, 직원들을 우르르 몰고나가서 천원 커피 한잔씩 사주면서 그 자리에 없는 직원을 욕하는데 거기에 한마디 거들면 통과였다. 나는 그 자리에 끼고 싶지 않아서 내 자리를 지켰는데, 어느새 내가 그의 타깃이 되어 있었다. 중학생도 혀를 내두를만한 저급한 루머를 퍼뜨려서 따돌림을 주도하고, 식사를 하러 나가면서 어디로 가는지는 내가 알아선 안되기에 자기들 끼리 귓속말로 쉬쉬거리며 장소를 논했는데 그 귓속말들이 어찌나 큰지 다들렸다. 내겐 잔업을 전담시켰으며, 팀 작업에서 고립시켜 결국엔 혼자서 새로운 모듈 개발을 해야 했다.


어느 날은 대기업 고객 사에서 일을 하는데 본사에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퇴사한 직원들이 리뷰를 남겨 회사를 평가하는 사이트에 글이 올라왔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김팀장 저격글. 대표 이사는 회사 이미지 다 떨어진다며 당장 글 내리게 하고 범인 잡으라며 길길이 날뛰었고 직원들은 '필력 너무 좋다.' 며 감탄하고 읽고 있는데 팀장이 직접 나서서 직원들에게 협박 메시지를 날렸다. 


팀장 : "다들 제가 소싯적 법을 공부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사이버 수사대에 의뢰해서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소할 예정이니 일 커지기 전에 당장 자수하세요." 


물론 아무도 답장하지 않았다. 사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채팅방엔 긴 정적이 이어졌고, 업무를 시작하려는데 기막힌 개인 메시지가 날아왔다.


팀장 : "회사에서 다 너라고 의심하고 있는 거 알지? 조심해."


가만보니 저 성질머리에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나본대 왜 하필 나일까. 아무리 괴롭혀도 별다른 반응이 없으니까 밑도 끝도 없이 갈궈도 문제가 없을거라 생각한걸까? 가뜩이나 지쳐있던 나였기에,


나 : "팀장님 가뜩이나 팀장님이 저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을 퍼뜨려 주신 바람에 매일 회사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제발 이런 말도 안 되는 누명 좀 그만 좀 씌우세요. 그리고 저는 계속 해외생활해서 이런 커뮤니티가 있는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제 개인시간에 회사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고 이런 장문의 글 쓸 시간도 없어요."


바로 버럭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팀장은 아무 말도 없었다. 적어도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는.


팀장: "잠깐 내 자리로 와라"


자리로 갔더니 같은 팀의 직원들이 팀장 옆에 앉아있었다.


팀장 : "너는 내가 니 욕을 하고 다닌 것에 대해 걱정할 것이 아니라 왜 남들이 너를 싫어하는 지를 걱정해야 한다. 다들 불평 한 마디씩 해 봐."


동료직원들 : "..."


너무 어이가 없었다. 팀장이란 자가 고객사도 다른 외주업체들도 다 공유하는 뻥뚤린 오픈된 공간에 직원을 불러놓고 한다는 얘기가 동료직원들을 부추겨 공개적으로 집단 괴롭힘을 선사하는 것. 나를 완전 망가뜨리려고 이 순간을 준비했을 그 얕은 생각과 유치한 심보가 뻔히 들여다보여 웃음이 났다.


나: "팀장님, 지금 편들어 달라고 다른 직원들 다 모아놓으신 거예요? 직원들은 팀장님이 욕하라고 바람 잡으니까 다들 맞장구 쳐주는 거지 이렇게 본인 앞에서 욕하라고 하면 세상 어느 누가 선뜻 나서서 할 수 있겠어요? 하실 말씀 있으시면 제게 직접 하시죠."


팀장은 다른 직원들에게 왜 아무 말도 없냐며 평소 하던 대로 불평하라며 윽박을 질렀다. 다른 직원들은 그만하라며 말리려했지만, 이미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진 팀장은


팀장 : "내가 미친놈이야? 나만 또라이네? 내가 지금 너한테 개인적인 감정 있어서 이러는 줄 알아?"


참다 못한 나의 마음의 소리가 침묵의 벽을 뚫고 나왔다.


나 : "네. 팀장님 맞는 말씀입니다. 팀장님이 평소 직원들 괴롭히는 거, 그것 때문에 퇴사한 직원만 2명이고 고용노동부에 회사 신고까지 들어간 걸로 아는데요. 아직도 모임 할 때마다 그 직원 욕 하시잖아요."


팀장 : "네가 외국생활 좀 오래 했다고 혼자 개인 행동하고, 다른 직원들 야근할 때 집에 가고, 점심시간에도 혼자 밥 먹고 들어오고 해서 미움받는 거 알고는 있냐?"


나: "저는 면접 볼 때부터 야근이 없다고 해서 입사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고 판달 될 때는 야근했습니다. 그리고 업무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 코딩 공부를 하라며 단체 야근하라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 일정이 우선이라고 생각되어 사정있을 때마다 이사님께 직접 말씀드리고 퇴근했고요. 개인 업무가 남으면 전체 야근 없는 날도 따로 필요한 만큼 더 일 하고 퇴근했습니다. 팀장님은 4시만 되면 병원가신다고 짐 두고 사라졌다가 그대로 퇴근하셔서 모르셨겠지만요. 커피나 담배 하러 나가실 때마다 우르르 데려나간 직원들이랑 1시간씩 산책하다가 들어오시는데 저는 그 시간에도 일 했습니다."


나에게 공개적인 망신을 주면 본인의 민망한 상황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지금 돌아봐도 이 인간, 정말 멍청하고 사악하다. 동료 직원들 뿐만 아니라 고객사 직원들, 외주 직원들의 시선이 파티션을 넘어와 내 뒷통수에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두려웠지만 그것보다도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해.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라는 마음이 더 컸다. 그동안 당했던 서러움과 억울함이 몰려와 금방이라도 눈물이 툭 떨어질것 같았지만 다행히 끝까지 울지 않았다. 터져나오려는 감정을 겨우 다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 한마디 이어가면서 사실만을 전달했다.


다소 불편한 기류 가운데 팀장 라인의 어벤저스 직원들은 입을  닫고 있었다. 팀장은 내내 누군가 그의 편을 들어주길 내심 바랬을테지만, 아무도 그를 구해주지 않았다. 숨막히는 공기 사이로 그의 몸집을 감당하기엔 너무 자그마한 회전 의자가 끽끽대는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김팀장은 터질듯 붉은 얼굴과 충혈된 눈으로 나와 직원들을 번갈아 노려봤다. 그렇게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다. 고맙게도 평소 넉살 좋기로 유명한 동료 직원이 나서서


동료직원 : "팀장님 이제 그만하시죠. (돌아서 내 어깨를 잡으며) 우리는 잠깐 바람 쐬고 와요." 


100미터 달리기를 마친것 마냥 심장이 마구 뛰었다. 최고 속력으로 달리면서 그간 마음 속에 쌓여있던 무거운 모래주머니들을 다 떨쳐버린 듯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이제 어떤 보복이 돌아올까. 또 얼마나 유치한 정치 놀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 이렇게 된 바에 걱정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숨을 크게 들이쉬고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침묵을 깼다. 


나 : "팀장님, 저보다 연장자이시고 상사이시니까 팀장님 의견을 존중하겠습니다. 앞으로는 말씀하신 부분에 오해 없도록 신경쓰겠습니다. 앞으로도 같이 일을 해나가야 하니까 악수하고 좋게 마무리하죠."


꼿꼿하게 편 내 오른손이 허공을 가로질러 나를 향한 팀장의 날 선 시선 한가운데 머물렀다. (후에, 이런 상황에 악수를 청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더 약올리는 역효과라는 피드백을 들었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는 한동안 나를 죽일듯이 째려보았다.


팀장 : "내가 지금 악수할 기분이 아니거든."


나 : "그럼 나중에 기분 풀리시면 그때 해요."


악수를 청했던 손을 거두고 사태를 말려준 동료 직원 2명과 함께 로비로 내려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로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간 쌓였던 억울함에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렸었는데 같이 나온 직원들 앞에서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처음으로 울었다. 아니 사실 울다가 웃다가했다. 아, 속 시원할 때도 눈물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돌아와보니 팀장은 일찍 조퇴하고 없었다. 다음날엔 몸이 안좋다며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이틀 째 되던 날 그가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쪽팔려서 회사 나올 용기가 없었던 건지 이사에게 나를 자르라며 협박하려는 개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팀장이 없던 그 이틀은 이전에 없던 평화로운 봄 같았다.


동료 직원들이 속이 다 시원하다며 감사의 표시로 음료수며 간식거리를 사서 내 자리에 가져다 주었다. 한 직원은 치킨과 맥주를 사주면서 총대를 매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평소에는 왜 자꾸 부딪히냐, 사서 고생이다. 그냥 하라는 대로 기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텐데 라고 내 투쟁을 외면하던 그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셋째 날엔 이사가 나를 찾아왔다.


이사 :  "걔 원래 감정적이고 멍청한 거 알잖냐. 이번만 네가 참아"


 : "그동안 억울한 소문이 돌고 누명을 쓰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근거없는 악의적 소문들에 감정을 낭비하고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제가 따돌림당하고 사내괴롭힘을 당하는 동안 아무도 신경쓰지않고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  보면서 회사에 실망했습니다. 이사님 저와 처음 면접자리에서 선진 IT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죠?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더이상 사내괴롭힘으로 신고하고 나갔던 퇴사자들이나  같은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회사차원에서 보호조치를 마련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본사로 돌아갔다. 면접때 안색 하나 안변하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던 사람이기에 별로 기대되진 않았다. 자리에 돌아오자 전엔 따로 얘기 나눠본  없던 부장이 커피를 마시자며 나를 불렀다.


부장 : "그동안 떠도는 안 좋은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너를 오해했다. 이번에 알고 보니 다 사실이 아니더라. 미안했다. 내가 다른 직원들을 모아서 사실을 바로잡겠다."


부장님은 약속을 지켰고 덕분에 하루아침에 태도가 돌변한 동료직원들의 따듯한 관심과 시선이 쏟아졌지만 나는 그 상황이 부담스럽고 어색하기만 했다. 차라리 아무도 관심가져주지 않던 시절이 마음 편했다. 그동안 팀장 눈치 보느라 같이 모여서  욕을 했을 거고, 나만 빼고  먹고 커피 마시러 다니던 직원들이 하루아침에 친절하게 구는 것을 보자니 기쁜 마음보다는 씁쓸한 마음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선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일부 직원들마저 내가 점심시간에 친구에게 부탁받은 문서 번역 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 퇴사준비하려고 이력서 쓴다'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회사 안에서 관계 회복이 굳이 필요할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프로젝트 막바지에 책임이 컸던 팀장은 결국 이틀 공백 뒤에 복귀했고, 개인 메시지가 날아왔다.


팀장 : "내가 워딩이 좀 강했던 것 같다. 원래 이 자리에 있으면 이런 일을 도맡아서 해야 한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 나는 너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나와 너를 이간질해 놓고 쏙 빠진 다른 직원들에게 화가 나 있는 상태다. 아직은 너에게 직접 말하긴 어려우니 메시지로 남긴다."


나: "아 네, 알겠습니다."


팀장 : "그건 그렇고 지금 이사랑 부장이 나한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는 거 아니?"


나: "그건 딱히 제가 알바가 아닌 것 같네요."


팀장 : "그래 뭐, 아무쪼록 미안했고 다음에 막걸리 한잔 하면서 풀자."


나중에 막걸리 한잔 하면서 사과할 것처럼 굴던 팀장은 그날 이후 피해자 코스프레하며 나를 극도로 피해 다녔고, 평소 자신을 잘 따르던 직원들에게도 삐진 티를 팍팍 티 내며 혼자 밥 먹으러 다녔다. 그렇게 폭풍같던 사건들이 지나고 본사로 복귀했다. 이 사건 이후로는 잔뜩 삐진 팀장이 직원들 챙겨줘봐야 소용없다며 더이상 상종하지 않겠다며 선언했기에 그의 짓궂은 장난과 괴롭힘으로부터 모두가 자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미 회사에 질릴 대로 질렸던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이제 코로나도 끝났고, 비자를 지원할 만큼의 자금도 모았다. 이 지긋지긋한 개미지옥에서 나를 구출해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그간 주말근무로 모아놓았던 대체휴가와 연차를 몰아서 2주간의 휴가를 내고 자취방을 정리했다. 그리고 유럽행 항공권을 질렀다.


출국 직전 퇴사 후 다시 만난 동기 직원과 술 한잔 하며 듣게 된 얘기로는 내가 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팀장이 잘렸다고 한다. 이사가 불러서 이제 프로젝트 마무리 되었으니 나가라고 했다고. 떠나던 날 오래 같이 일했던 직원 몇 명을 불러서 작별 커피타임하면서 팀장이 엄청 억울한 얼굴로


팀장 : "아니, 제가 일을 그렇게 못합니까?"


라고 물었다고 한다. 아무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김팀장은 떠났다고 한다. 새로  팀장이 회사 운영 방안 조율도 하고 인사처리도 철저히해서 지금은 회사가  돌아간다고. 자율출퇴근에 야근도  필요할 때만 하고 심지어 야근 수당도 준다고 한다.(라때는 없던 축복이다.) 내겐 고된 시련이었지만 결론적으로 초식동물 같던 직원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있는 초원이 마련되어서 기쁘다고 해야하나.


후에 입금된 퇴직금은 마치 그간 겪었던 고통에 대한 보상 같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 날씨 좋은 스페인에서 오렌지와 빠에야를 먹고 스페인어를 배우며 탱고를 추면서 아무런 걱정 없는 스트레스 프리의 삶을 한껏 누리고 있다. 


혹시 지금 회사나 모임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 이 글로 작은 위로를 전한다. 언젠가 기회는 온다. 


그날까지 건강과 감정을 잘 챙겨서 어떤 시련에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잘 지키자. 스트레스를 해소와 건강한 멘탈 유지에 퇴근 후 취미 활동과 커뮤니티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퇴사를 결심할때쯤 락클라이밍과 탱고 커뮤니티를 시작했는데, 덕분에 퇴근 후엔 항상 바빴고 집에 오면 바로 씻고 꿀잠각이라 혼자 있는 시간에 우울할 겨를이 없었다.


괴롭힘의 정도가 지나치다면 때를 기다리면서, 찾아올 그날을 위해 증거 자료를 하나하나 모으자. 홀로 이겨내야하는 순간들이 힘들테지만 포기하지 말고 방법을 모색하자. 고용노동부에 익명으로 상담이 가능하며 증거자료를 토대로 신고 절차도 도움받을수 있다. 나는 틈틈히 증거자료를 모았지만 결국 신고하지 않았다. 회사 자체에 대한 악감정이라기 보다는 어리석은 한 사람으로 부터 비롯된 문제였고 거기에 내 감정과 시간을 소모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겨서였다. 그저 마음속  구석 어딘가에 늘상 퇴사의지를 퇴사계획을 세우면서 행복한 상상  탈출구를 마련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혹시 지금 당신의 조직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동료를 보면서, 조용하니 별일 없나 보다 하고 지나쳐 왔다면, 다시 돌아보자. 그들의 입장에서 회사에 앉아 있는 하루를 상상해 보라. 지친 얼굴과 쳐진 어깨, 영혼까지 털린 멘탈을 겨우 붙들고 마지못해 출근을 하는 그의 모습을. 회사 문턱 앞에서 차마 저지를  없는 퇴사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고 있는 당신의 동료가 보일 것이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그 위태로운 불빛을 겨우 지탱해나가고 있는 그들의 하루에 오늘 당신이 전한 따듯한 한마디 당신의 작은 도움 하나가 팍팍한 회사생활을 버텨낼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혼자 생존해야하는 세상, 잔혹한 사회이지만 당신의 용기와 선한 의지가 현장을 바꿔나가는 시작이 될 것이다.


혹시    읽는 당신이 조직내 빌런이라면,  유치하고 어리석은 짓들을 당장 그만두길 바란다. 인생 나락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건 TMI이지만, 내가 괴로움에    때마다 외웠던 성경 구절이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이다. 지금은 폭풍 같이 몰아치는 악인의 횡포도 영원할  없다. 악인은 언젠가 쫄딱 망한다.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의 맑은 눈을 잃지 말자. 세상 모든 빌런들은 쫄딱 망하기를 바란다 :)


에두아르 마네, <투우사의 죽음, 1864 > 근거 없는 누명과 유치한 사내괴롭힘에 고요히 죽어지내던 내 모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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