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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의 걸작 Jun 27. 2023

우리의 도시는 아름답지 않다.

통일성과 연결의 건축

도시는 인간의 삶을 반영한다. 다른 말로, 도시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과 욕망을 담는 그릇이다. 이 간단한 명제는 도시와 건축을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유럽풍 건물을 흉내내거나, 한옥 단지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익숙하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체험을 하려는 목적 내지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우리 고유의 문화를 재생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러한 목적이 현실의 맥락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실현되는 것에는 우려를 표한다.


우리가 도시를 아름답다고 판단할 때 그 기준은 도시의 통일성이다. 파리나 로마, 프라하를 아름답다고 인식하는 것 또한 도시의 건축물이 공유하는 유사한 재료 덕분이다. 재료는 건축양식의 차이를 은폐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 유사한 재료가 높은 통일성을 만들어 낸다.

건축의 재료에서 알 수 있듯, 도시의 미관을 결정하는 통일성의 본질은 건물 간의 차이점을 흐리게 하고 유사점을 부각시키는 이른바 ‘은밀한 이질성’이다. 이러한 도시의 모범은 베를린이다. 분단으로 인하여 낙후된 도시 베를린은 독일 재통일 이후 대구모 투자를 통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지금도 파괴된 건물이 복원되는 등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베를린은 이전의 건물과 유사한 재료를 사용하는 한편 현대적인 건축 양식을 도입하였다. 이를 통해 도시는 시대의 간극을 해소하는 동시에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발자국을 내딛었다.

Berliner Schloss.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16세기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출처: Humboldt Forum)
James Simon Galerie. 베를린 박물관섬의 다른 박물관을 연결하는 로비격 건물.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지는 건축양식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시퀀스로서 기능함.


슬프게도 우리의 도시를 그릴 때 마구잡이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와 어지러운 오색 간판, 무의미하게 지어진 전통 건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도시의 미관보다 일상의 편리함이 우선시되어 지어지는 건물이 많다. 목적을 가진 몇 안 되는 디자인도 주변의 환경은 고려 대상이 아니니 두 건물이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주변의 맥락과 무관하게 설계된 건물은 도시 전체의 미관을 해친다. 그리고 시간의 맥락과 무관하게 설계된 건물은 건축 문화의 생명을 소진한다.* 특히 후자에 우려를 표하는 것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를 재현하려는 노력이 결국 과거를 현재로부터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 까닭에서다. 어떠한 문화가 오래도록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시대와 유의미한 상호작용을 이루어 나가야 할 터인데, 과거에만 얽매여 박제된 시간성을 좇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 다른 건물들이 불합하는 서울의 도시 미관. (출처: KBS 뉴스)
황룡사 9층 목탑을 본딴 중도타워. 목탑을 재현하려는 의도 외에는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다. (출처: 경주시청)


*전자의 경우 도시에 덩그러니 놓인 유럽풍 건물, 관광지 앞 상업지구가, 후자는 무분별하게 신축/복원된 전통양식의 건물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건축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할 때 비로소 광대한 시간성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시간의 아우라는 그것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체감하는 데서 온다. 한양도성과 프라우엔키르헤의 사례를 보자. 한양도성은 태조 대에 축조되어 세종, 숙종 등을 거치며 보수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서로 다른 시대의 축조기법이 조화를 이루며 그것을 보는 우리로 하여금 조선의 오랜 역사를 느끼게 한다. 드레스덴의 프라우엔키르헤도 마찬가지이다. 세계대전으로 인해 파괴된 성당은 남아있는 석재와 새로 조달한 석재를 혼합하는 방식으로 복원되었다. 탄흔이 새로운 석재와 대조를 이루며 프라우엔키르헤는 유일무이한 시간성을 더욱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서로 다른 축조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한양도성 (출처: 우리역사넷)
Frauenkirche Dresden. 전쟁의 탄흔으로 검게 변한 돌이 새로운 석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출처: Wikipedia)


반면 우리는 전통을 너무 소중히 여기는 나머지 현재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한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 보자. 우리에게 한옥은 일상적인 주거 공간과 관광지 중 어디에 가까운가? 실제로 살 수 있다면 커다란 한옥과 반듯한 아파트 중 어디에 살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거주하며 한옥은 시간 내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리라 믿는다. 현대인의 생활 문화로부터 전통 주거 양식이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에 그럴 것이다. 여기서 한옥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주거 형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지 않은 것은 덜어내고, 핵심적인 것은 보존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옥의 경사진 지붕은 배수를 위한 것으로 큰 면적을 차지한다. 그런 탓에 건물에 과도한 하중 부담을 준다. 불필요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처마와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여유 공간, 강렬한 조형요소이다. 유현준 교수가 설계한 고창군 복합문화도서관은 한옥의 특징을 보존하는 현대 건축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유현준 교수의 고창군 복합문화도서관. (출처: 서울신문)

개인적으로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을 현대 한옥 건축이 본받을 모범으로 삼고 싶다. 상당히 직선적인 이 건물에서 나는 한옥을 볼 수 있다. 커다란 지붕과 그 지붕을 떠받치는 얇은 기둥은 자연스레 수직적 무게감을 전달한다. 그리고 낮은 각도에서 건물을 올려다 볼 때면 지붕이 아래로 내려가며 한옥의 선자연을 발견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전통 건축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 당장 우리의 필요에 부합하는 건물을 짓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의 연결을 통해 도시 미관을 개선하는 것이다.

Neue Nationalgalerie.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대표작이다. (출처: Staatliche Museen zu Berlin)


건축은 예술의 일부이다. 동시에 건축은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기술이다. 건축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적합한 주거 양식을 모색한다. 건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편리성이다. 그 다음으로 걷고 싶은 거리,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드는 것은 건축의 통일성이다. 글에서는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의 통일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지만, 나에게는 지역 내 이질적 요소들의 통합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공간이야말로 감성을 배양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시선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아름다운 건물이 좋은 건물이다’라는 기본적인 관념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건물 하나하나로 보았을 때 아름다운 것은 많다. 좋은 전망을 가진 건물은 더더욱 많다. 하지만 아름다우면서도 특색있는 지역을 찾기는 쉽지 않다. 좋은 건물이라는 관념에 주변과의 조화는 배제되어 있는 탓이겠다. 이미 지어진 건물을 어찌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도시를 새로이 설계해 나가는 것은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할 일이다. 그때 우리는 주변의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건물 설계를 통해 새로운 조화와 전망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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