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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의 걸작 Feb 14. 2024

Z세대, 오래된 미래 속으로

EBS 다큐프라임 <Z세대, 오래된 미래 속으로>를 보고

우리가 지새는 수많은 밤들은 철책 너머에서는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 우리가 그리워하는 평범한 하루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가치를 가질까? 어둑한 하늘 너머에는 우리가 벗어나고자 하는 지금의 삶을 동경하는 누군가가 있을까?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이 그리는 세상은 언제나 아름답고, 희망을 갈구하는 인간은 그간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애써 부정한다. 판단은 개인의 몫, 우리는 자신에 비추어 남의 삶을 재단하곤 한다.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고, 가진 것을 당연한 양 여긴다.


한편으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20대 초반은 짧고 한탄하며 주어진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나름의 노력과 고민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꾸준히 책을 읽었다. 글도 썼다. 시험과 과제의 부담이 사라지자 그간 하고 싶었던 일들을 원없이 할 수 있었다.


그러다 한순간 의지를 잃어 버렸다.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억지로 펼친 책의 페이지는 퇴근 시간까지 단 한 장도 넘어가지 못했다. 미진했다. 공회전을 하는 것 같았다. 쏟아지는 업무와 부족한 수면시간에, 주기적으로 엄습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이겨내기에 나는 강하지 않았다. 이곳을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는 나름대로 노력하고 좌절하며 별다른 이룬 것 없이 이곳을 떠나리라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하게 드는 하루하루다.


오늘도 나는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낸다. 내게 주어진 밤은 불 켜진 건물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지나가기를 기원하는 시간에 불과하다. 별은 보이지 않고, 강한 불빛에, 창문에 반사되는 나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리모컨을 잡은 채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을 찾을 때까지 채널을 훑는다.


오늘 EBS에서는 다큐프라임 <Z세대, 오래된 미래 속으로>가 방영되고 있다. TV 속 중앙아시아의 중년 여성은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부모님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내게 어른이 된 후에 상기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어떠할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여성의 마음이 어떠할지 나로서는 헤아릴 방법이 없었다.


방송은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는 그를 조명한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 그녀는 열일곱으로 돌아간다", 나레이터는 말한다. 카메라 너머, 그곳에서 어른은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아이는 미래를 알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간다. 아이는 이내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고, 결국 그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는 매를 키우고, 가축과 함께 세상을 돌아다닐 것이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살이 찌고, 몸은 예전만 못할 것이다.


청년은 젊음에 도취되어 무엇이든 이루고자 하고, 때로는 기성세대와 충돌하며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 앞에서 어렸을 적 물려받은 성격과 애착은 우리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그렇게 우리는 삐뚤빼뚤한 저마다의 개성과 함께 어른이 된다. 어릴 때 보았던 어른을 닮은 모습으로. 그것이 EBS 다큐프라임의 <Z세대, 오래된 미래 속으로>라는 아름다운 제목이 의미하는 바겠거니 한다.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우리에게는 무엇이 남게 될까? 이마에 주름이 늘어날 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될까? 지금 우리의 고민과 노력이 먼 훗날에는 누구나 한 번씩 경험하는 해프닝에 그치게 되지는 않을까? 그때 회상하는 과거는 우리에게 어떠한 깨달음은 줄까?


프로그램은 광활한 대지를 날아가는 독수리를 비추며 끝이 난다. 독수리는 대를 이어 자신의 부모를 따라 몽골 고원을 배회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물려받은 유산을 따라 공허한 세상을 떠돌고, 자신의 삶을 특별한 것인 양 생각하고, 이내 정해진 삶의 궤도에 안착할 것이다. '오래된 미래'라는 표현 아래, 다큐프라임 제작진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주어진 섭리 아래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언젠가 젊음을 잃고 어린 시절 그리던 어른의 모습을 하게 될 때,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가슴팍에 묻어둔 젊음의 유산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내딛는 한 발 한 발의 두려움이 어쩌면 눈밭을 가로지르는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밟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 오래된 미래는 언제서야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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