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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Dec 09. 2024

SUNSET

출항

[THE SUMMER PALACE] Beijing, 2008. 01. PHOTOGRAPH by CHRIS


 "해는 지는 것이 가장 아름답듯이 와인도 시들기 시작하기 전에 가장 눈부신 빛을 발한다. 너의 출항은 언제일까? 내가 여기를 떠났듯이 너도 언젠가 항구를 뒤로하고 언제 끝날지 모를 긴 여행을 떠날 때가 올 테지."

신의 물방울(Les Gouttes de Dieu) 樹林 伸


 삶은 머나먼 여행의 과정과 같다고 누가 그랬던가. 멀리서 마음의 흐름을 바라보니 폐부를 짓누르던 조급한 문제들은 하나의 그림이 되어버린다. 바쁨을 강조하고 나를 갉아먹으며 슬픔을 부르는 우울한 풍경화를 바라본다. 거칠게 살아가도 내 안의 파동은 잊지 말자고 했건만 바보처럼 심장이 멈춰버렸다고 울고만 있었다. 죽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있었는데…

 

 항해 중에는 스스로 흘러감을 보지 못한다. 세상이 보일 땐 눈앞의 시간을 먹으며 달려야 한다. 멈추고 바라보고 음미하고, 그렇게 천천히 세월을 먹어가련다. 세상을 부드럽게 안을 때까지 걷고 싶다. 진한 커피 향기가 퍼진다. 와인빛 석양에 기대어 커피 한 잔에 추위를 녹인다.       


2008. 1. 28. 土. 北京颐和园



 여유가 사라져 있을 땐 나를 찾으러 다니던 여행 중의 기록을 살펴본다. 힘든 시간이 다가오면 힘들었던 순간을 지나고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글이나 그림들 속으로 눈길을 던진다.


 “이 또한 모두 지나가리라.”


 그 누구의 위로보다 자신의 이야기가 진실한 충고가 되는 것은 통감의 날들을 직접 겪으면서 지난 삶을 되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체력이 방전됐는지 눈을 감을 수 있는 시간엔 졸음을 참지 못했다. 겨울의 햇살이 사방에 가득했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빛에 반사된 머리칼이 눈부셨다. 금빛이 바래서 하얗게 나이가 들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해질 땐 멀찍이 떨어져서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본다. 삶은 굽이굽이마다 예측할 수 없는 선물을 숨겨두곤 한다. 가장 소중한 것은 보이지 않듯이, 그림으로 말로 글로 형상으로 표현하는 거대한 이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후회 없이 편안하게 떠나갈 수 있도록 와인빛으로 진하게 우러나오는 인생을 음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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