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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Nov 17. 2024

KHANEH-YE DOOST KOJAST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친구가 머무는 새벽

OÙ EST LA MAISON DE MON AMI?, Abbas Kiarostami 1987


 뿌연 황토색 먼지가 멀고 먼 길을 반기는 이란 영화는 거문고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대지(The Good Earth)의 펄럭임으로 이국 땅에 잠시 꿈을 놓았던 펄벅(Pearl S. Buck) 여사가 "거문고는 나는 소리보다 나지 않는 소리를 듣게 하는 악기"라 했듯이, 말없이 심금을 울리는 향수(鄕愁)의 가락과 조용하게 흐르는 영상을 마음에 담다 보면 살면서 떨쳐낼 수 없는 한숨과 고통이 별의 눈물이 되어 하늘을 수놓는다. 

 요즘엔 자주 접하지 못하는데, 한동안 발걸음이 편하게 덜컹거리는 이란 영화들에 시선을 두었다. 특히 이젠 너무 유명해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길>에 대한 민감한 의식을 조용히 달래며 생활의 열차에 기름을 좀 더 덜 부으라고, 목적지를 재촉하듯이 석탄으로 빨갛게 달구지만 말라고 충고해 주었다. 계속하여 그 조곤조곤한 당부를 지키지 못함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길게 뻗은 

 어느 외진 비포장 도로에는 
 사랑도 우정도 이별도 미움도 

 슬픔도 절망도 희망도 있다. 
 번잡한 도시처럼 
똑같은 

 삶의 샘터가 흐르고 있다. 


 현실의 철문을 파괴하고 그늘진 생활을 떨쳐 보려 했던 지나버린 젊은 날을 한탄하는 노인들, 꺼질 수 없는 사랑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청년과 인연의 끈질긴 줄다리기에 은근히 기뻐하는 처녀,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으름장을 놓는 선생님의 호통에 주눅 들어 목놓아 울어버린 아이, 그 친구를 위해 숙제장을 들고 집도 모르는 친구를 찾아 뚜벅거리며 배고픈 거리를 걷는 소년, 무너진 먼지의 나락에서 슬피 울기보단 조용한 얼굴로 내일을 살아 보겠다고 일어서는 사람들까지... 생(生)이라는 건, 하나의 단어로 압축할 수 없도록 다양한 심사가 얽혀있는 롱테이크의 현장이다. 단물을 씹고 난 뒤 입 끝에서 처연히 몸부림치는 체리 향기처럼, 황혼을 물들인 붉은 색조는 주름이 가득한 얼굴 위로 아름다운 연지를 남기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리고"의 연접으로 분절된 삶을 이어가는 너절한 역사는 이토록 고민을 지우지 못한다. 

 생활의 터전을 한순간에 폐허로 만들어버리는 자연의 악재는 첨단의 장비와 조직화된 체계로 폭풍이나 홍수, 가뭄에 대비하기 시작한 인간의 영리한 두뇌 안에서 권위를 상실한 듯 보인다. 그러나 두꺼운 방어벽을 쌓은 둠(Doom)은 사람들이 뿜어낸 각종 배설물로 자정의 능력을 상실하고 오히려 얕은 빗물로도 더없이 약해진 구멍에다 이성을 잃은 자연의 투지 어린 괴성마저 불러왔다. 마스크를 써도 모든 게 투과되는 미세한 원형질의 세계에서 정녕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모르겠다.

 친구가 머무는 곳을 찾아 긴 발걸음을 띄우는 것만이 무정한 세계에서 헛된 시도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마음의 터를 잃어버린 차가운 세상, 하지만 눈물 어린 새벽은 외로운 마음에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이 영화에 영감을 주었다던 소흐랍의 시도 새벽의 언덕을 지나갈 것이다. 구슬픈 그 전설을, 외로움의 이 꽃을, 저 새의 투명한 공포를 들으면서 닳아버린 가슴을 달랜다. 


 《친구가 머무는 곳 La Demeure de l’Ami, Sohrab Sepehri 


 “친구가 머무는 곳은 어디인가?” 

 기병의 목소리가 새벽에 울려 퍼진다. 
 하늘이 멈춰 서고, 
 사막의 어둠을 향해 행인은 손을 내민다. 
 빛나는 종려나무 가지를 입술 안에 머금고, 
 은 백양나무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 나무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숲이 우거진 오솔길이 있지. 
 신의 환영보다 더 푸른 곳 
 그곳의 사랑은 진실의 깃털만큼이나 푸르구나. 
 네 작은 길의 깊숙한 곳까지 가보렴, 
 길의 저편에서 청춘이 시작되리니 
 너는 고독의 향기를 향해 몸을 돌리겠지. 
 꽃을 향해 두 걸음 옮기곤, 너는 멈춰 설지도 몰라. 
 네가 선 곳은 땅의 신화가 용솟음치는 샘, 그 언저리. 
 그곳에서 너는 투명한 공포에 떨게 되겠지. 
 이 신성한 공간에서 친한 이와 너울대며 
 너는 듣게 되리라, 무언가 희미한 소리를 
 너는 보게 되리라, 흐드러지게 늘어진 소나무 위에 앉아 
 빛의 보금자리에 사는 새의 넋을 빼앗으려 하는 한 아이를. 
 그리고 너는 그에게 묻겠지 
 친구가 머무는 곳은 어디인가.” 


 “Where is the friend’s house?” 

 Horseman asked by twilight and, 
 The sky paused. 
 The passerby presented sands, the branch of light that he had in mouth 
 And pointed to a poplar tree and said: 
 “Before reaching the tree, 
 There is a garden alley that is greener than God’s sleep 
 And in it, love is as blue as the feathers of honesty. 
 Go to the end of the alley which stops at the back of adolescence. 
 Then turn to the flower of loneliness, 
 Two steps short of reaching the flower, 
 Stay by the fountain of eternal myth of earth 
 And you feel a transparent fear. 
 And in the fluid sincerity of the air, you will hear a scratch: 
 You will see a child 
 Who has gone up the pine tree, to grab a bird from the nest of light 
 And you ask him 
 Where the friend’s house is.”


2004. 12. 24. WEDNESDAY



 차를 몰면서 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오늘따라 유난히 노랗다 싶었다. 시커먼 먹구름 아래로 길 옆의 은행나무에서 우수수 떨어진 나뭇잎들이 스산하게 바닥에 누워있었다. 노랗게 물들인 거리에서 가을의 끝자락과 만난다. 습기를 머금은 먹바람이 가득한 주말 오후, 머리를 비워내는 작업은 오히려 해야 할 내일의 회로를 꽉 채우고 있다. 친구를 찾을 겨를도 없이 오직 미래에 대한 다짐으로 그 어떤 해결의 기미는 감지하지 못한 채 계속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언젠가 영원히 머무를 곳은 다가올 것이다. 푸르른 새벽의 정원 앞에서 청춘을 뒤로하고 고독한 꽃을 향해 투명한 미소를 지어본다. 조롱에 들어갈 수 없는 새는 창공에서 지친 팔을 휘저으며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친구의 집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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