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에드바르트 뭉크>
외국 통화를 정리하던 중, 한 화가의 초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노르웨이의 돈, 1,000 크로네의 앞면에 그려진 화가 뭉크. 지폐를 뒤로 돌리자, 뭉크의 작품 '태양(1909)'이 뜨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북쪽은 겨울에 태양이 뜨지 않습니다. 극단적으로 짧은 낮과 오직 밤만이 지속되는 극야가 반복됩니다.
'절규(1893)', '불안(1894)', '죽음의 향(1895)', '이별(1896)'. 뭉크의 작품에도 뿌연 우울함만이 짙게 깔려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화가이자 그처럼 정신병을 앓았던 고흐의 작품에서 뭉크는 고통 속의 희망을, 절망 속의 빛을 발견합니다.
이윽고 뭉크의 나이 50세, 그는 긴 겨울 끝에 찾아온 봄의 첫 태양을 그립니다. 눈이 멀 듯한 강렬한 빛, 뭉크의 외침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가장 깊은 밤에도 내일은 오고, 가장 어두운 터널에도 아침은 온다.'
3월, 봄이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마침내 찾아온 봄의 태양입니다. 고객님들의 하루에도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일전에 접촉했던 사람을 찾아 업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문자를 보내려다가 의도치 않게 문자정리를 하게 됐다. 그 와중에 읽어보지도 않고 넘겨버린 글에 눈길이 머물렀다. 금요일 오후마다 보내왔던 거래처 은행 과장의 메시지였다.
화면에 꽉 차게 들어있는 내용은 전달력이 있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림과 내용들로 즉흥적인 감상을 취하는 사람들과 달리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생각을 전하는 글은 연결된 관계에 대해 상상을 불어넣는다.
미래로 가면 현실의 지폐나 동전으로 인식되는 돈은 시스템 속에 편입되는 가상의 코인이 될 것이다. 뭉칫돈을 가지고 순환의 개념을 실행하려면 현재에 단단한 기반을 가진 사람들을 움직여야만 한다.
자신의 내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하는 법이다. 다양한 인간군상들과 부딪혀 매일이 변해가는 삶에서 실패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상상을 현실에 꺼내놓지 않으면 형상의 실재는 존재할 수 없다. 실패는 새로움을 만드는 필요악이며 현실에 안주하여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장벽이다.
계속적인 시도를 하면서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체크해가고 있다. 작년엔 상상하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춥기만 하던 시절을 견디며 작업의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기다림은 길겠지만 언젠가는 태양을 피해 다니던 음울한 얼굴에도 내일의 아침은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