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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Jun 30. 2023

국경을 맞댄 두 유럽국가의 풍경


자연친화적인 삶을 선호하는 헝가리 사람들은 녹지가 풍부한 환경 속에서 평온한 삶을 살고 있었다. 풍경의 고적함이 이방인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긴 다뉴브 강을 끼고 형성된 마을엔 인적이 드물었다. 


머리를 양쪽으로 얌전히 묶고 걸어가는 초등학생 또래의 여학생과 천천히 자전거를 몰고 한적한 거리를 달리는 노인의 모습이 도시 입구로 들어가는 이방인의 눈에 띄는 풍경으로 남았다.


국토 면적은 93,030㎢에 인구는 약 천만 명.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도 이백만여 명이 사는 적당한 규모의 도시로 형성되어 있었다. 헝가리는 한국이 그 순위를 가져오기 전까지인 2000년대 이전 까지는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흔히 ‘자살자의 찬가’라고 불리며 실제로 전 세계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든 곡 ‘Gloomy Sunday’가 헝가리 노래라는 사실과, 같은 제목으로 2000년에 독일과 헝가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이 나라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작품 같다며 누군가가 말해주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한낮보다는 밤이 더 아름다웠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부다페스트의 중심가로 들어갔을 때는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으로 어둠이 얼마 남지 않은 볕을 구름 뒤편으로 밀어대는 시간이었다. 


오래전 어부들이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어부의 요새(Fisherman’s Bastion)’와 왕들의 대관식이 열렸던 마차시 성당(Matthias Church)’, 그리고 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 ‘국회의사당의 모습이 어둠이 짙게 깔리면서 다뉴브 강 양쪽 편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정면에 높은 조각상이 자리 잡고 있는 화려한 부다 왕궁(Buda Castle)’의 모습을 바라보며 과거 제국의 위용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산 중턱의 도로에서 좌우로 보이는 성당과 국회의사당의 모습은 진한 매력을 느낄 만큼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붉은색 불빛을 받아 그윽하면서도 고혹적이었다. 


부다페스트의 밤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비록 부침이 심했지만 오랜 세월을 면면히 이어온 헝가리의 역사를 은은하게 드러냈다.



아침 일찍 잔잔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다뉴브 강을 경계로 부다(buda)와 페스트(pest)를 연결하는 세체니 다리(Szecheny lanchid)를 건너 다뉴브 강 동편에 자리하고 있는 건국 천년을 기념하는 영웅광장과 번화가인 바치거리(Vaci Street)’를 찾아보았다.


 1849년에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먼저 건축된 다리를 건너 들어선 중심가는 밤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다리는 전쟁 기간인 1945년 독일군에 의해 폭파되었다가 건축 100주년이 되던 1949년에 다시 개통하였다).


비에 젖은 도심의 풍경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잿빛의 낡고 오래된 건축물들로 우울해 보였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관광객들을 제외하고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시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카페조차 사람이 듬성듬성 앉아있을 뿐이다. 


중심가를 조금 벗어나면 궁전과 성당을 제외하고는 낡은 건물 벽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오래된 건물은 물론, 건축한 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건물들도 보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밤에는 드러내지 않던 풍경이었다. 



중세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예술가의 도시 센텐드레는 좁은 골목마다 작고 예쁜 가게들이 즐비하였고 곳곳에 돌바닥이 깔려 있어서 오래된 옛 도시의 정취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의 둔치를 따라 소풍 나온 아이들과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어쩌면 헝가리는 산업발전보다는 자연친화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 하는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피소 느낌이 나는 오래된 건물의 지하에 생맥주와 식사를 제공하는 선술집 분위기가 풍기는 곳에서 굴라쉬(Goulash)’라는 헝가리 전통 음식을 맛보았다. 다양한 야채에 후추와 파프리카로 특유의 매운맛을 낸 헝가리 전통 수프 요리로 빵과 함께 먹는다. 


맵고 자극적인 우리나라의 김치찌개와 비교하면 조금은 심심한 맛이 나는 음식이다. 



음식을 앞에 놓고 오래전 청년시절에 읽었던 책이 생각이 났다. 저자는 일제 강점기에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의 수배를 피해 독일로 떠나 뮌헨 대학교에서 한국역사와 한국문학을 알리는 활동을 하다가 생을 마감한 이미륵이다. 


이미륵은 10년에 걸쳐 완성된 저서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나치의 출현과 전쟁 속 참혹한 역사적 현장에서 직접 겪었던 고통스러운 삶에도 불구하고 고국에서 유년시절에 겪었던 평화롭고 포근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인간의 감정과 영혼의 진실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글 어딘가에서 보았던 ‘굴라쉬를 먹을 때마다 고국이 생각난다.’ 던 고독한 망명객의 쓸쓸한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럽연합(EU)의 회원국들 사이에 국가 간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센겐조약에 따라 헝가리를 벗어나 인접 국가 오스트리아로 들어서는 길은 간단했다. 입국 시 검문이나 비자(Visa) 검사도 없었고 차량에 대한 까다로운 짐 검색의 절차도 없었다. 


비엔나로 들어가기 위해 길게 펼쳐진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풍경이 놀랄 만큼 다르게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헝가리 국경을 벗어나 오스트리아에 들어서자마자 수백, 수천 개의 풍력발전기가 넓은 평야 위에 끝없이 등장했다. 발전기는 이삼십 킬로 이상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에도 사라지지 않고 길게 이어져 있었다. 오스트리아 국경 초입에 위치한 작은 도시들은 청결했고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수도 비엔나로 들어가면서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곳에서는 오전에 떠나온 부다페스트에서 느낄 수 있는 음울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건물은 높고 밝았으며 사람들의 표정은 게르만 민족의 후손들답지 않게 밝고 역동적이었으며 발걸음은 분주했다. 


저녁 무렵 어둠이 찾아왔지만 거리의 빌딩은 환한 등불로 더 화려해졌고, 거리를 오가는 전차인 트램은 분주함 속에 사람들을 부지런히 싣고 도심을 달렸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연회장으로 건축한 올해 개관 300주년을 맞는 벨베데레 궁전(Schloss Belveder)’에는 수많은 미술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들어서는 입구에는 궁전 내부를 관람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로 붐볐다. 



그중에 특히 반 고흐(Vincent van Gogh),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작품들과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적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가 1907~08년에 완성한 키스라는 작품 앞에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의 앞만큼 사람들로 전시실 방이 꽉 차 있었다. 


비엔나 시내의 풍경도 아름다웠다. 런던이 런던답고, 파리가 파리스러움이 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특징이 있듯이 비엔나도 비엔나스러운 고유의 색깔과 공기와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에서는 여기저기에서 모차르트를 만날 수 있었다. 생가가 아직도 있는가 하면 어린 시절 뛰어놀던 거리가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친구와 만나 담소하거나 술 한 잔을 나누던 카페에서는 모차르트가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과거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동질성을 유지했지만 제국의 붕괴 이후 각자의 삶을 살게 된 두 나라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무엇이 국경을 맞댄 제국의 후손들 삶을 이토록 상반되게 만들었을까.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국에서 분리된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운명은 오랜 기간 스스로 발전을 거듭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비로소 달라졌다. 양국의 운명은 미국과 소련 간에 이념대립이 본격화되는 냉전이 시작되면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앞에 놓고 어떤 체제를 선택했는지에 따라 판이한 결과를 낳았다. 


헝가리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나치 독일의 압박에 의해 주축국으로 독일 편에 서서 전쟁에 참가했지만 패전국이 되었고, 그 결과 1945년 5월 8일, 소비에트연방에 점령되면서 공산화가 추진되었다. 


소비에트연방 점령하의 헝가리에는 1949년에 사회주의공화국을 표방한 헝가리 공화국이 등장했는데 냉전 종식 이후 1989년에 공산당 일당지배체제를 청산하고 1991년 소련제국이 해체되면서 비로소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선회할 수 있었다. 



과거의 영광을 망각한 채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다리 부근 나무의자에 앉아 다뉴브 강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강 건너 멀리 겔레르트 언덕 위에 러시아가 헝가리를 속국으로 만들고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둔 40m 높이의 소녀상을 초점 없이 올려다보던 사람들의 우울하고 무표정한 얼굴은 오랜 시간을 고통스러운 전쟁과 압제를 견뎌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의 생각뿐만 아니라 국경 사이의 풍경마저 바꾸어 놓았다. 이념이라는 추상적이고도 모호한 사상적 개념이 가져온 국가운영 방식이 이처럼 국가나 국민들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제국이었다가 국경이 나뉜 두 국가의 풍경은 사람들의 표정과 일상의 삶, 그리고 나라가 운영되는 모습과 방식 등을 극과 극으로 표현해주고 있었다. 



헝가리는 그 차이를 극복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차이는 냉전의 시작에서 종식에 이르는 시간만 큼이 흘러야 극복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혹은 영영 극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과거에 공유했던 영광을 추억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이웃 국가 오스트리아는 자신들 발전과 성취의 경험을 헝가리와 나눌 생각이 아예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우리의 딱한 이웃이 떠올랐다. 그들은 1960년대 말까지 풍부한 자원과 일제가 설비해 놓은 산업기반 시설들을 앞세워 우리보다 더 잘살고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유지했다. 


이후 자신들이 선택한 공산주의 이념으로 인해 체제경쟁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우리에게 한참 뒤처지게 된 그들은 의식주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강성대국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들은 6·25 전쟁 이후 세계 최빈국의 처지에서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우리의 발전 경험을 공유하겠다는 제안도 거부하고 낡은 이념에 집착하며 고집을 부린다.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둘러보며 그동안 우리가 휴전선 넘어 이웃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관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될 불행한 이웃인 것이다. 



1990년대 초 무렵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하던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헝가리에서 왔다는 젊은 여성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부다페스트에서 알게 된 모 종교단체의 주선으로 생판 얼굴도 본 적이 없는 한국남성과 국제결혼을 하기 위해 방문하는 길이라고 했다. 터무니 없는 얘기에 의아해 하는 나에게 그녀는 서울 변두리에 있는 단체의 주소를 보여주며 공항에 단체의 책임자와 예비신랑이 나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비록 가족과 이별은 하지만 고국 헝가리를 떠나게 된 것에 안심을 하는 표정이었다. 실패한 사회주의 체제는 그처럼 국민들을 나라밖으로 떠나게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든 가족과 고향을 떠나 중국이나 동남아를 떠돌다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민들의 처지가 오래전 만났던 헝가리 젊은 여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헝가리, 체코 등 과거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 살았던 국민들은 국가를 몰락으로 이끈 지도자의 동상이나 흔적들을 여전히 남겨두고 바라보면서 교훈을 얻는다고 한다.

 


동유럽 국가의 딱한 지도자들처럼 훗날 김씨 일가도 북한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곳곳에 세워놓은 자신들의 동상을 보며 저주와 비난을 받을 운명을 대를 이어 고집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인륜마저 저버리는 패악질도 서슴지 않는 포악한 품성인 데다 심혈관 질환, 비만에, 고혈압과 당뇨를 3대가 빼박은 처지에 그 잘난 '백두혈통' 찬양은 웬 궤변인지 모르겠다. 얼마 전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동유럽 국가들을 둘러보며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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