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 Aug 25. 2023

그들의 생각은 옳았을까.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 모든 걸 새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회 곳곳에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강북의 중심인 종로나, 강남은 물론 신촌 등 대부분 교통이 혼잡한 사거리 곳곳마다 걸린 기업이나 가게의 플래카드는 ‘since 1990’, 혹은 ‘since 1993’ 등 이제 막 사업을 시작했다는 홍보문구가 업소의 이름과 함께 바람에 펄럭였다. 반만년 역사를 가진 민족이지만 늘 이전의 사실과 현상을 부정하는 습관이 반복되는, 새롭게 태어난 국가의 분위기였다.   

  

이번에는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민주화가 시작된 이래 과거 권위주의 정부의 흔적을 부정하려는 정당이나 정파들이 그런 여론몰이를 주도했고 관공서와 민간 기업들이 분위기에 편승했다. 기존의 관념, 관습과 의식을 뒤엎으려는 발상이 사회 전 분야에서 저변에 깔렸다. 구정권의 행태는 무엇이든 악폐가 되었다. 국가 발전의 성과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어느덧 한 세대쯤의 시간이 흘렀다.

요즘에는 오래된 것을 강조하려는 문구가 유행이다. 억지로 오래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문구가 들어간 인쇄물이나 홍보용 책자나 광고를 보면 쓴웃음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오래된 지역, 오래된 건물, 오래된 물건 등에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진다.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오래된 것에 흥미를 느끼거나 배울 점이 있다는 의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과거의 모양, 제도, 풍습, 사상 따위로 돌아가거나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좇아하려는 것을 일컫는 ‘레트로(Retro)’라는 단어는 어느새 보통명사가 되었다.   

  


이는 국민을 상대로 한 개혁 세력의 의도적인 의식정화 운동 노력이 수명을 다했다는 방증이다. 몸소 실천해서 성과를 거두는 것이 그들의 입에서 나온 구호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구호는 결국 허무맹랑한 것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옛것이나 나이 든 사람의 지혜에서 배울 것이 있다는 의식이 되살아나고 있으며 오래전 전쟁의 폐허 위에서 오늘의 발전을 이루어낸 과거 세대의 노력과 헌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스스로 생각하고, 직접 실천하고, 결국은 성과를 낸 사람들이라는 평가 앞에 그들이 당당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개혁 진보세력은 민주화 도래 이후 권위주의 정부가 과거의 영광을 넘긴 시점부터 한국인의 기질과 성향을 파악하고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면서 지지 세력을 긁어모았다. 이를 위해 과거에 국가가 보유하고 있던 권한과 기간 시설들을 시민단체와 지방자치단체가 공유하도록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홍보하는 한편 자신들이 집권할 때를 기다리며 노동, 언론, 교육, 사회단체 등에 지지기반을 구축하고 세력을 확대하도록 독려하고 지원했다. 우리 사회 진보세력의 이런 구상과 노력은 자생적으로 탄생했을까.



1884년 영국의 진보세력은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를 중심으로 페이비언 사회주의 동맹을 만들고 산업혁명 이래 영향력 있는 다수가 된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해 집단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집단으로 몸집을 키운 영국의 노동당은 페이비언 협회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여러 사회주의 단체를 기반으로 출범했다. 따라서 출범 배경과 역사성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진 반정부세력이 결집한 우리 사회의 진보세력과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1970~80년대에 반정부 시위에 앞장선 우리나라 학생들과 노동자들에겐 이러한 영국이나 유럽의 사회주의 운동을 제대로 공부할 시간도, 실험해 볼 겨를도, 게다가 지적 자산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킬 능력이 없었다. 단지 소수의 진보적 지식인과 학자들이 유럽의 진보사상 소개에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 결과가 오늘날 진보나 좌파 세력의 집권 기간 정치 행태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그런 지경이니 그들에게는 전략과 정책이 부재하고 단지 선거를 의식해 표를 긁어모을 인기 영합주의적인 얄팍한 슬로건만 춤을 춘다.   

  


영국 노동당은 오랜 연구와 노력 끝에 국민보험, 무료 진료, 연금제도, 소득세와 상속세 도입으로 영국을 오늘날 복지정책의 모범국가로 만들었다. 독일에서는 1880년대 독일의 ‘비스마르크(Otto E. L. von Bismarck)’가 노인 연금을 포함해 일련의 사회복지법안을 제정하였고, 20세기 초반에 영국의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내각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임금 관련 법안과 건강보험 등의 제도를 개정하며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 정책을 바탕으로 복지사회로 나아가는 기틀을 다진 것이다. 그들은 면밀한 연구 끝에 자활 능력을 갖추지 못한 노인과 병약자, 그리고 실업자를 지원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바 있다. 그들의 정책이 사회현상에 주목하면서 오랜 고민과 연구 끝에 등장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 내에서 개혁을 주장하는 진보세력은 재야에 머물던 시기는 물론 집권 기간에조차 정책을 발굴하고 성과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자질이 함량 미달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자신들의 견고한 지지 세력 구축만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사회의 흐름과는 배치되는 후진국형 포퓰리즘적 정책에만 과도할 정도로 집착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무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더해 자신들 특유의 ‘감성팔이’ 전략을 추가하여 국민의 사회적 의식을 하향평준화 시키며 분열을 조장하기까지 했다.      



끼리끼리 의식이 확산하여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인물이 자리에 앉게 되면 늘 문제가 생긴다. 지난 진보세력 정권에서 그 교훈의 폐해가 여실히 나타났다. 쉽게 당선될 자리를 꿰차고 여의도 한량의 경험밖에는 없는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과연 전문성이 있었나. 산더미처럼 물밀듯이 닥쳐온 코로나를 막을 전문지식을 보건복지부 장관은 과연 갖고 있었을까. 한반도를 둘러싼 신 냉전시대 ‘힘’을 바탕으로 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지략을 갖춘 외교 전문가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디 이뿐이랴. 

이런 교훈이 이번 정권에 주는 반면교사가 되기를 바란다.     


유럽의 큰 도시뿐만 아니라 소도시를 걷다 보면 업종이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이 전문성의 긍지를 드러내는 업소의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00년이 넘는 영국 선술집 ‘펍(pub)’이 있는가 하면, 150년이 넘은 양복점, 구둣가게, 식당, 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100년이 넘은 집들도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하며 굳건하게 그 자리에 서 있다. 작가나 시인의 생가는 말할 것도 없고 음악가와 화가가 잠시 머물렀던 집이나 방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민들이 수시로 방문하는 명소로 유명하다.     

 


100세가 넘은 원로 철학자 김형석 교수나 역사학자 김동길 교수의 강연에는 젊은 강연전문가가 흉내 내기 어려운 울림이 있었다. 얕은 지식으로 세간을 현혹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 평범한 일반인들은 그들의 깊이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세상은 그들의 식견을 판단할 전문가들로 넘쳐난다. 사회나 국가는 깊은 지식과 인격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적재적소에서 최선을 다해야 발전을 할 수 있으며 국민이 피곤하지 않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정치인들의 행태와 같이 새의 깃털처럼 가볍지 않고 밝고 건전한 가운데 풍성한 지식과 지혜를 논하는 시민들로 넘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역사의 물줄기가 건전한 방향으로 물꼬를 틀게 된 것도 모두 그런 국민 덕분이 아니겠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