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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진 Sep 04. 2023

감자를 갈다가 시를 썼다


장례식장에서 / 우수진
감자를 갈았다
체 아래로 축축하게 주룩주룩 떨어지는 물기
받친 그릇에 흥건하게 물이 생겼다
지금이다
얼굴을 그릇물에 처 박고

전분을 본다

그릇 속에서 눈알이 잠영한다
받아주지 않는 웃음은 왜 재빨리 거두어들일까
이런 옷을 자주 입네요
그래서 어떻다는 건지 다음 말은 왜 안 하는 걸까
끝나고 이야기해하고선 곧장 집으로 가버릴까
버스에 두고 내린 전단지 같은 전분이다

그릇에 물을 대충 비우고 싱크대에 집어넣었다

거기서 감자전분은 물기를 잃고 천천히 가루가 된다

뒤로 조금 물러서세요 가루가 날립니다

기차표를 끊는 창구처럼 생긴 구멍 사이로 뼈 부수는 기계가 요란하다

아들이 선 뒤로 한 발짝 물러섰고 아내도 한 발짝 물러섰다

한 시간 전의 뼛가루도 함께 날렸다

전분가루를 털어 버리면서

날리는

전분가루에 일부러 코를 가져다 대고 들이마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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