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수진 Sep 04. 2023

수필을 시로 바꾼다

  동네에 새로운 꽃집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트와 커피숍 밖에 없었다. 예쁜 카페 못지않은 근사한 인테리어에 외국어 이름이 적힌 간판을 내걸었다. 감각적인 꽃집을 지나치다 보면 눈이 즐겁다. 가게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창 너머 상품성이 있는 싱싱한 꽃들이 보인다. 꽃도라지라는 한국말 이름도 있지만 외국이름으로 리시안셔스인 꽃, 방울꽃이라 부르면 김이 빠지는 캄파눌라, 웨딩부케로 자주 쓰이는 고급 꽃 스위트피는 콩꽃으로 고쳐 부르면 이 꽃을 잘 모르고 ‘그 꽃은 빼주세요’라고 고객이 요청할지도 모른다. 반대쪽에는 줄리엣로즈가 있다. 화려한 얼굴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겹겹이 쌓인 꽃잎은 우리가 자주 보는 빨간 장미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이건 줄기도 굵직해 그 안에 든 수관도 튼튼하겠다. 물관리만 잘해주면 일주일은 넉넉히 볼 수 있을 것 같다. 꽃집을 지나쳐 산책을 계속한다. 풀꽃이 여기저기 소담하게 피었다. 아무래도 꽃집에서 파는 꽃들은 사람으로 따지자면 누군가의 보호아래 성장한 남자가 아닐까 싶다. 절화가 된 이후에는 원하든 원치 않든 물통에 꽂히고 언제나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공간에서 상품성을 유지한다. 흡사 병원에 누워 여러 기계장치로 목숨을 이어가는 재벌집 회장 같기도 하다. 기업 경영 승계가 마무리될 때까지 호흡기를 하고 계속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처지에 놓인 남자. 그 처럼 꽃집 남자도 자신의 얼굴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다. 그리고 이에 익숙하다. 그리고 얼마 살지 못한다. 시한부 인생이다. 어떤 치료책도 소용없다. 풍성한 꽃잎이 힘을 잃고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하면  종량제봉투에 버려진다.

 그에 반해 풀꽃은 햇볕에 그을리고 빼빼 마른 몸이지만 강단 있는 남성이다. 이 남자는 뿌리가 있어 살아갈 수 있다. 꽃집의 남자는 나이 들어가는 것을 모르고 풀꽃 남자는 양육되는 것을 모른다.  이 남자는 누군가의 계획안에 있지 않다. 풀밭에 눈 개똥을 치우려고 허리를 숙인 여자가 흘끗 이 풀꽃을 본다.  꽃이 여기 있었네... 여자가  남자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때 벌새가 날아와 남자의 얼굴에서 필요한 것을 뽑아가고, 여자는 다시 가던 길을 간다.

  나는  줄리엣로즈와 풀꽃에 대해 생각에 빠지다 보니 다음 꽃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다. 그래서 줄리엣 로즈를 얼마 주고 두 송이 샀다. 아무렇게나 둘둘 말아 달라고 하고서 꽃집 남자를 가지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풀꽃을 봤다. 나는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방금 전에 산 꽃집 남자를 풀꽃 앞에 들이밀었다. 그냥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남자와 저 남자가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두 남자 / 우수진

창문 너머 진한 남자

영어이름을 쓰고

아무리 들이마셔도

머리가 아프지 않은 향기를

풍기기에 만원 주고 샀다


창문을 걷다가 마주한 이름 없는 남자 

그늘도 없이 햇볕을 그대로 받고 사는 남자는 

이름을 물었을 때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달라고 했다 

남자의 작은 얼굴을 박각시

쪼아대는 통에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만원 주고 산 남자를 흘끗 보더니

'화려하고 잘생긴 남자네요.' 

'네, 맞아요.'

치료책이 없어서 얼른 물에 꽂아야 해요

우린 내년에도 만나겠지만 이 남잔

길어야 일주일이에요

꼬리를 흔들어 작별하고 젊은 남자를 정성스레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글을 쓰다 보면 걸어가는 날도 있고, 굴러가는 날도 있고, 기어가는 날도 있는데, 시를 쓸 때는 항상 기어다니는 것 같다. 시도 아니고 수필도 아닌 중간지대에 갇혔다. 그래도 언제나 시쓰기는 즐겁다. 쓴다는 행위 자체로 힐링이다.

작가의 이전글 길고양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