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시 수업에서 시리라이팅을 했다. 시를 쓰는 게 부담스러운 초심자들을 위해서 시인이 준비한 배려였다. 시인의 사비로 구입한 노트도 나눠주었다. 한두 번 해본다고 원래 시의 느낌이 내 것이 되진 않겠지만, 갓 구워낸 빵을 먹을 때처럼 시를 읽고 감상을 나누자마자 그 시의 한 구절로 무언가 끼적거리기 시작하면 원작자의 가루가 글에 약간은 뿌려지는 것 같다. 시를 써야지 마음먹었는데 시인이 짧은 글이든 시든 다 괜찮다기에 결국 내가 편안한 쪽으로 글을 썼다.
1. 이수명 시인의 <철물점>의 한 줄로 써본다.
'사무실 문에 외출 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외출은 근무지를 벗어나 잠시 밖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볼 일을 보지 못하고 집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사무실 주인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아까 못 본 볼일을 볼까 하다가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외출 중인 사무실 주인은 길고양이기 때문이다. 눈이 마주치는데 아는 체할 수 없고,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순식간에 도망가버리는데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2. 홍정순 시인의 <철물점 여자>의 한 줄로 써본다.
'시를 쓰겠다고 한 시간 일찍 나와' 새벽 6시 30분에 깨어있다. 나보다 훨씬 전에 깨어나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산보를 하거나 카페에 앉아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나는 지난 시를 꺼내놓고 무엇을 흔들어 작별한다 쓸까 고민한다. 그러다 진열해 놓은 꽃사진을 찍는다는 게 그것도 잊고 집에 왔다.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졸음이 밀려왔다. 쏟아지는 뜨거운 햇빛은 잠들지 못하게 모든 세포를 쪼아댔다. 땀에 흠뻑 젖은 머리칼이 이마에 붙었는데도 아기는 놀고 싶다고 공을 나에게 찬다. 낮잠 시간이 되자 아기 눈이 슬슬 감겼다. 아기를 안아 들고 집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왔다. 아기공처럼 가벼운 시가 내 뒤를 졸졸 따라 같이 왔다.
3. 박은영 시인의 <발코니의 시간>의 한 줄로 써본다.
'필리핀의 한 마을에선' 주민의 대다수가 관광에 기대어 먹고산다. 호탕한 가이드가 팬티를 가위로 잘라서 버려야 하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팬티가 동네 여기저기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을 테고, 그게 영 찝찝해서 싫다고 했다. 이곳 필리핀 사람들은 4, 50대쯤 대부분 죽는다고 했다. 병원 치료를 대부분 받지 않는다. 인생의 마감이 이르기에 모든 것의 시작도 일렀다. 어린이들도 생계를 꾸려나갔다. 결혼도 일찍 하고 아이도 일찍 낳는다.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은 100세 시대를 기준으로 보험료도 인상되고 퇴직자들의 나이도 늘어났다. 짧은 필리핀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황태로 국물을 우려 맛있다고 유명한 국숫집에 갔을 때였다. 다 먹고 계산대 앞에 섰는데 1000원짜리 가락엿이 진열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의 엿가락은 도대체 얼마나 늘여놓았는가 생각했다. 짧은 엿가락을 길게 줄줄 잡아당기고 꼬아 길게 만들어 늘여놓은 100세 시대 한국에 살고 있는 나는 기나긴 공교육을 받고 그것도 모자라 대학에 가서 또 공부했다. 취업준비를 하고 생계를 꾸리고 결혼하고 집을 사고 아기를 낳았다. 어쩌면 이쪽이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