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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마음 Mar 05. 2020

꾸안꾸 스타일로 유리병 재활용하기

나는 물건을 참 못 버린다.

나에게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고질병 같은 것인데, 그나마 저장 강박증까지 진행되진 않은 상태이므로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몇 년 전, 미니멀리즘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나도 좀 동참해볼 심산에 호기롭게 방 한가운데 방석 깔고 자리 잡고 앉아서 옷장이며, 책장, 서랍장 등등 온갖 수납장을 탈탈 털었으나 결과는 대실패.

방바닥에 널린 물건들은 거의다 고스란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오히려 제자리로 원상 복구하느라 집안이 초토화되는 대참사만 발생했다. 


나 자신을 어르고 달래서 겨우 겨우 설득한 끝에 버린 물건들은 어차피 간소화와는 좀 거리가 먼 품목들이었다. 

정말 현재의 나에게 효용가치가 없어진 물건들.

예를 들면 2000년도에 출간된 TOEIC 문제집들 (이것도 왜 때문인지 쓸데없이 한참 고민했다. '정말 필요 없는 거 맞아??' 스스로에게 수십 번 물어가며. 어휴...)이나 선물 받고 고이 뜯어낸 포장지 같은 것들. (접힌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예쁜 쓰레기를 과연 어떻게 재사용할 수 있을까...)

몇십 년째 고이 간직할 필요까진 없었던 것 같은데, 왜 애지중지 품목에 속해서 그 수많은 이사에서도 버려지지 않고 살아남아 함께 하고 있었던 건지... 으윽..!


특히, 재활용이 가능할 것만 같은 물건들은 더더욱 버리질 못하고 나날이 늘어나고 있으니...

나름대로 수납의 체계를 갖춰보자는 마음에 재활용할 물건들만 따로 보관하고 있는 50ℓ짜리 수납함이 하나 있는데 이미 포화 상태를 넘긴 지 진즉이다.

이 수납함 하나를 넘기진 말자고 스스로 굳게 다짐했으나, 집안 곳곳에 이미 테트리스 조각처럼 스리슬쩍 제자리인 양 자리 잡아 있는 물건들까지 다 모은다면 그 큰 수납함 2개로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그중에서도 재활용이 가능할까 싶어 고이 모시고 있는, 심지어 굉장한 부피감마저 자랑하는 대표적인 품목이 있으니 바로 유리병이다.

어떤 유리병은 모양이 예뻐서, 어떤 유리병은 붙어있는 라벨이 예뻐서, 어떤 유리병은 크기면에서 저장용기로 딱인 것 같아서.

온갖 이유들로 버리지 못한 맥주병, 올리브병, 잼병, 탄산수병 등등이 나의 방 한 켠에서 꽤 많은 지분율을 차지하며 쌓여있는 상태다.

심지어 이가 나간 유리컵도 버리지 못하고 한 자리씩 차지하는 중이다.

이제는 모으기만 할 게 아니라 본격적인 재활용의 때가 왔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굳은 뇌를 굴려본다.




몇 년 전부터 인생 너무 열심히 살지 말자가 모토가 되어서 나의 일상은 대체로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열심히 하려다 되려 지쳐서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됨을 자주 겪다 보니 인생 너무 힘쓰지 말자, 대충 살자가 인생 중반부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 나의 가치관이 되었다.

하여, 재활용할 유리병도 너무 열심히 제자리들을 찾아주려 노오오오력하지 않고 대충 꾸안꾸 (꾸민 듯 안 꾸민) 스타일로 만들어보았다. 너무 예쁘게, 딱 맞게 만들려다 만드는 과정 중에 나자빠지면 안 되니.

아주 딱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역시나 대충 마음에 드는 것도 있다.

무튼 대충 마음에 든다 한들 어떠랴. 사용에 문제만 없으면 오케이~~!!


ψ 포크 꽂이

본디 양배추 절임 용기였다.

용기 크기도 적당하고, 라벨도 귀여워서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는 수저와 함께 포크를 보관했는데 수저를 꺼낼 때마다 포크에 자꾸 찔리길래 너무 열 받아 탄생한 작품(?)이다.

포크만 따로 보관한 이후로는 포크에 찔리는 참사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아 개인적으로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

우리 집은 국자, 주걱 같은 주방도구들도 S고리에 걸어서 보관하는지라 유리병에 철사를 감고, 철사에 마끈을 묶어서 S자 고리에 걸어 사용 중이다. 

꾸안꾸다운 멋스러움이 있다.

더 이상 고통없이 포크를 꺼낼 수 있다. 얏호!


ψ 드라이플라워 꽂이

(좌측 위) 원래는 디퓨저 용기였는데 역시나 병이 예뻐서 버리지 못했다. 

(중간) 유리병은 아니지만 재활용 중인 화분이다. 원래는 다육이 화분이었으나...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뒤 결국 용도 변경하였다. 

(우측 위) 원래는 꽃을 선물 받으면서 같이 딸려 온 화병이었는데 요즘은 생화를 잘 사지를 않아서 드라이플라워 꽂이로 용도 변경되었다. 

(좌측 아래) 파스타 소스병이었는데 화병으로 크기가 적당하길래 유리병 목 부분만 마끈으로 돌돌 말아서 보기 싫은 부분을 살짝 가리고 때론 화병으로, 때론 저장 용기로 여기저기 사용 중이다. (저 소스병이 한 두 개가 아니란 점이 함정이다. 크흑.)

한데 모아놓고 보니 좀 조잡스러운가 싶기도 하지만 뭐 어떠랴. 질리면 또 다르게 재활용하면 되니까. 한동안은 이대로 유지해야지.


(좌측 위) 원래는 잼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유리병이다. 아마 다들 이 육각 디자인의 유리병에 혹해서 구매했거나, 다 먹은 유리병을 차마 버리지 못한 경험들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나 또한 다 먹고 남은 이 예쁜 유리병을 어떻게 재활용할까 고민하다 결국 드라이플라워 꽂이로 재활용 중이다. 사실 다른 소스 용기로 사용해도 되고, 잎차 보관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어서 쓰임새가 많다.

(우측 위) 원래는 유리컵인데 입술 닿는 부분에 살짝 이가 나가는 바람에 버릴까 말까 꽤 고민했었다.

무언가를 담는 본연의 용도에는 아무 하자가 없는지라 고민 끝에 양초 홀더로 쓰임새를 만들어 주었다. 양초 아랫부분이 보이는 게 어색해서 처음에는 레이스로 가려줬다가 지금은 말린 꽃가지를 둘러서 가려줬다. 

Pinterest에서 얻은 아이디어였는데 나뭇가지가 아니라서 그런지 Pinterest 감성은 살지를 않아서 조만간 손을 좀 봐야 할 것 같다.

(우측 아래) 유리병은 원래 물병이었지만 화병으로 사용 중이다. 그리고 내가 두 번째로 잘 버리지 못하는 와인 코르크 마개를 병 안에 넣어서 꾸안꾸 스타일로 꾸며보았다.  

고장난 와인셀러 위에 아무것도 없는게 휑해보여서 이것저것 올려놓고 꾸미는 공간인데 기분따라 수시로 바뀐다. 재활용할 수 있는 유리병이 워낙 많으니 지겨울 틈이 없단게 장점이랄까.


ψ 코르크 마개 보관 용기

원래는 올리브 용기였다. 디자인이 예뻐서 버리지를 못하고 고이 모셔두었다. (사실 이쯤 되면 뭔들 버릴 수 있을까 싶다. ㅠㅠ)

용기가 꽤 큰 편이라 코르크 마개 채우기에 딱이다 싶었는데 어느새 다 채웠다. (몇 년에 걸쳐 모은 코르크 마개이므로 오해 없길. 아하하.)

유리병 용기가 다 그렇듯 목 부분이 안 예쁘다 보니 적당한 끈으로 둘러서 가려버렸다. 목부분만 깔끔하게 잘라내는 게 쉽진 않은 듯해서 주로 끈 같은 걸로 가려주는 편이다.

사실 아직 병에 담지 못한 코르크 마개들도 있는데... 올리브를 하나 더 사다 먹어야 할지, 와인을 이제 끊어야 할지. 푸흡.


ψ 미싱 도구 보관 용기

역시나 그 유명한 브랜드의 잼 병을 버리지 못하다 드디어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크기가 작은 미싱 관련 도구들을 보관하기에 딱이다. 유리병이 없을 때는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찾느라 고생이었는데 유리병에 보관한 이후론 잃어버릴 일이 없다. 

다른 쓰임을 부여해주기 위해 특별히 손 쓴 일 없으면서도 쓰임에 있어선 가장 만족스러운 재활용 유리병이다.

꾸안꾸 조차 필요 없는 딱 좋은 재활용이다.




금손이라면 보다 멋지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줄 수도 있겠지만, 나의 한계치를 굳이 뛰어넘으려 노력하고 싶지는 않기에 스스로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다양하게 재활용 중인 유리병들이다.

사실 글 속에 더 소개하진 않았지만 재활용 유리병은 지금도 내 책상 위에서 생산(?) 중이다.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공예 작품 수준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환경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에 짓눌려 의무감에 하기보다는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그저 유리병을 버리기 전에 한 번쯤은 '새롭게 재탄생시켜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이렇게 무언가를 스스로 생각해서 만드는 창조적인 활동은 스트레스를 풀거나 마음을 달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유리병에 처음 손 닿는 느낌은 차가울지 몰라도 나를 통하여 새 생명을 얻은 유리병은 따스함 그 자체일 것이다.


모두들 그 충만한 행복감을 느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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