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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마음 Mar 15. 2020

자발적 무급 노동자, 브런치 작가

브런치 작가가 된 지 이제 3주 차.

참으로 길고도 짧게 느껴진 3주다.


내가 올린 글이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는 기간은 너무나 길게 느껴졌고, 다음 메인에 내 글이 올라간 요 며칠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간 듯하다.

조회수가 1000 단위로 돌파할 때마다 알림이 계속 떠서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 휴우...

3주 동안 롤러코스터를 제대로 탄 듯하다.

다음 메인에서 글이 내려가고 조회수도 진정국면에 들어서면서 지금 나의 브런치 생활에 대해 곱씹어볼 정신머리가 이제 좀 생긴다.


포털에 나의 글이 올라가는 걸 처음 경험한 나로서는 모든 게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우선, 어디에 나의 글이 노출되었는지 당최 알 길이 없었다. 사실 다음 앱을 휴대폰에 깔지 않았기에 '다음에서 어떻게 노출된다는 거지'라는 의문을 품고 우선 앱부터 깔았다.

그런데 이런, 더 모르겠다. 

브런치 글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길래 들어갔더니 그건 브런치 북을 소개하는 코너였다. 나랑은 상관이 없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른 카테고리들을 슥슥 넘겨보았으나 딱히 특이점은 없었다.

'에잇!' 하며 앱을 지워버리고 그렇게 이틀이 지났나 보다.

그런데 3일째가 되어도 조회수가 여전히 폭주하니 좀 더 집요하게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음 앱을 다시 깔고 설마 아니겠지란 마음으로 '홈&쿠킹'을 몇 번 새로고침 했더니, 진짜 '웬열~~!'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내 글이 '홈&쿠킹' 코너에 떡하니 떠있다. 


얼떨떨한 마음을 추스르고, 일단, 메인에 소개된 화면을 캡처하고 정말 가까운 지인들과 가족들에게만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요'라고 보고하고 축하(?)를 받았다.

나나 내 주변 사람들이나 다들 포털 메인에 글이 뜨는 경우는 처음 보니 축하할 일이라고 여긴 듯하다.

그러나 마음속 한구석 남는 이 찜찜함은 무얼까...


폭주하는 조회수를 보며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이렇게 메인에 걸릴만한 양질의 글인가...

읽은 사람들이 공감했을까...

내 브런치의 방향성은 살림살이가 아닌데 '홈&쿠킹'에 글이 소개되었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건가...


갑작스러운 조회수 폭주와 다시금 조용해진 나의 브런치. 

문득 궁금해졌다.

이런 상황을 경험한 다른 브런치 작가들은 어땠을까?


브런치를 뒤적뒤적하다 보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동질감에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브런치 메인이나 다음 메인에 소개되는 글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글들도 눈에 뜨인다.

내 얘긴가 보다...란 생각에 마음 한구석 뜨끔거리며 글들을 읽었다.


브런치의 시스템을 비판하는 글, 양질의 글을 올리지 않는 작가들을 비판하는 글, 브런치의 작가 승인 기준이 명확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글, 브런치 메인에 소개되는 글의 수준 또는 기준에 대해 비판하는 글 등등.


어떤 부분에서는 동감하며 읽었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좀 감정적인 비난이란 생각도 하며 여러 글들을 읽었다.




브런치에는 정말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작가들이 넘쳐난다.


가장 보편적인 주제인, 자신의 일상을 독자와 함께 공감하며 소통하려는 작가.

어떤 주제의 글이든 매일 1편씩 올리는 걸 목표로 자신의 브런치를 채워나가는 작가.

오늘의 일기처럼 그날 있었던 일, 그날의 기분에 대해 쓰는 작가.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로 글에 퍼붓는 작가.

정말 이런 글은 돈 주고 읽어도 아깝지 않다 싶은 전문적인 글로 정보를 공유해주는 작가. 


근본적인 질문일 수 있으나, 브런치 작가란 무엇일까?

이곳에 글을 올리는 이 수많은 작가들은 대체 왜 이리도 열심히 글을 쓸까?


정답은 없다.

추측컨대, 모두가 각자의 답을 안고 자신들이 만족해하는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남들 보기에 중2병 일기를 쓴다한들 그게 뭐 어떠랴? 브런치가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어준다한들 뭐 어떠랴? 

내 공간에서 내 마음대로 쓰는 건 자유잖아요!라고 항변해도 되지만, 본디 글쓰기란 쓰는 이의 마음을 치유하는 치료제다. 글을 쓰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고 감정이 정리된다. 내 안의 무의식까지 찬찬히 들여다보며 나 자신을 돌보아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화가 난 상태로 글을 쓴다면, 화난 나의 감정을 글로 분출하며 나 자신을 토닥이는 것이다. '화내도 돼. 화내도 괜찮아. 실컷 화내.'라며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부인하고 외면하거나 애써 덮으려 하지 않고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는 긍정적인 마음치료작업이다. 

심지어 나를 위한 치료제에 공감해주는 이들도 생기고 구독자도 생긴다면? 그건 내 마음의 또 다른 빨간약이 되어 나를 보듬어준다.  


'그래도 여기서 이렇게 화내는 건 좀 심하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은가?

'심하다'의 기준은 각자 다르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든다면 마음에 드는 글을 찾아 읽으면 될 터이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브런치에서 글 읽는 건 무료다.




그렇다면 각양각색의 글들로 브런치를 채워주고 있는 작가들은 유급 노동자일까?

브런치에 아무리 열심히 글을 쓴다 한들 급여를 주는 사람은 없다.

중2병 일기로 치부되는 글을 쓰려고 해도 1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8,590원 못 받는다.

그러나 다들 열심히 쓴다!

나 같은 경우엔 한 편의 글을 올리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루에 몇 시간씩, 며칠을 끙끙 앓으니 (썼다 지웠다의 무한반복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털썩...) 하루 일당 대충 4만 원이라고 쳐도 10만 원이 훌쩍 넘을 임금은 전혀 받지 못하지만 열심히 키보드를 쳐댄다. 


그래서 무급여의 이 일이 짜증이 나냐고?

전혀!

말 그대로 자발적 무급 노동자로써 나는 브런치에 열과 성의를 다하는 중이다. (브런치 팀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못 믿을 수 있겠지만...) 

지금 나의 수준에선 이 정도의 글 수준이 최선인 듯싶다. (그래도 계속 노력 중이니 발전해나가지 않을까란 기대를 스스로 걸어보는 바이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던 사람도 아니니 당연히 날 것의 글을 쓰고, 맥락도 안 맞고, 주제에서 벗어났다가 힘겹게 되돌아오기 일쑤다. 


그러나 재미있다. 

뭔지 모를 시원함과 해방감이 있다. 

내 안에 깊숙이 숨어있던 어딘가에 따뜻한 손길이 가닿는 것 같다.

이 모든 서투른 과정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건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자발적 무급 노동자인 모든 브런치 작가들이 존중받길 바란다. 

타인에게 해가 되는 글이 아니라면 어떠한 글이든 저급, 저질의 글로 폄훼당하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도록 상처 주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기왕 기꺼운 마음으로 자발적 무급 노동자, 브런치 작가의 길로 들어선 작가 분들도 글을 읽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을 위해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의 글이 될 수 있도록 힘써주길 바라고 응원하는 바이다.


그래, 일단 나부터 좀 잘 쓰자. 

오늘도 자발적 무급 노동자는 유려한 글쓰기에 한발 더 다가가기 위해 열심히 정진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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