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러나 당신께서도 아시는), 어머니는 요리의 맛보다는 건강을 우선시하셔서 음식이 맛이 없다. (맛나다/맛없다의 개념이 아니다. 어머니는 재료 본연의 맛을 좋아하신다.)
가족들 건강을 위해 음식에 조미를 거의 하지 않으셔서 맵다, 짜다, 달다는 맛의 개념 없이 슴슴하다.
집에서는 찌개를 먹어본 적이 없고, 국은 기본 육수처럼 재료를 우려낸 맛 정도의 간이랄까?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국물 맛을 보면 소금이든 국간장이든 간이 전혀 안된 맛이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소금도 넣고 국간장도 넣는다고 하셨다. 미스터리다.) 게다가 푹 끓여야 깊은 맛이 우러나오고 소화도 잘 된다고 생각하셔서 우리 집 국이나 반찬에서 채소의 아삭한 식감은 만나기 힘들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부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김밥인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김밥의 핵심은 단짠의 대명사 단무지일 테니까. 나의 혀와 뇌는 무의식 중에 단짠을 찾고 있었던 걸까?
살면서 얼큰하다는 개념을 배운건 대학생이 되고 술집에 드나들며 술안주로 나오는 알탕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왜 얼큰한 걸 먹으면 시원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지, 왜 얼큰한 맛이 술을 부르는지 깨닫게 되는 마법 같은 시간을 보냈더랬다. 맵다는 개념은 직장 생활하면서 무교동 낙지라는 음식을 처음 접하면서 알게 되었다. 청양고추란 걸 먹어본 적이 없으니 그전까지 나는 제대로 된 매운맛을 먹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 무교동 낙지는 혀가 에이는 고통을 준다. 으윽...)
나는 평생을 그렇게 먹어와서 어머니 음식이 그리 슴슴한지도 모르고 살다가 스무 살에 바깥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음식의 맛을 새로 배우는 듯했다. (참고로 나는 코끼리 보온도시락 세대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에는 바깥 음식이 적응이 안돼서 모든 맛이 너무 자극적이었다.
너무 달고, 너무 짜고, 너무 맵고.
그런데 술을 배우고, 바깥 음식에 적응이 되자, 집밥에서 맛이 느껴지질 않았다.
맛이 너무 어중간하다 생각했다.
어렸을 때야 먹는 게 집밥밖에 없었으니 느끼지 못했는데 비교대상이 생기자 식사 때마다 아버지가 음식이 너무 심심하다, 간이 안 되어있다 하셨던 게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는 너무 자극적인 음식만 좋아하신다, 집밥만이라도 좀 싱겁게 드셔라, 그리 슴슴하면 아버지만 소금 쳐서 드시라며 밥투정 그만하시라고 했었는데... 딸내미가 참 모질게 말했구나 싶다. (아버지는 가끔 어머니의 음식에 저항코자 고추장찌개를 끓이셨으나 길들여진 입맛이 어디가랴.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의 입맛엔 지나치게 자극적이라 맛있다는 찬사를 듣지 못한 채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어머니의 음식이 슴슴하긴 해도 나는 굳이 소금을 더 쳐가며 먹고 싶진 않아서 독립하기 전까지 큰 불만(?) 없이 잘 먹었다. 음식 어디에도 자극적인 맛이 없으니 딱히 먹는 양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사회 초년생이 되면서 독립하여 집을 나오게 되자 문제가 생겼다.
나의 입맛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서울로 취직을 하자 삼시세끼 모두 밖에서 해결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침은 간단히 과일이나 시리얼로 먹기도 했지만, 점심과 저녁 식사가 문제였다. 회사 근처 식당들이 으레 그렇듯 단짠이 강조된 음식들이 나에게는 극단적으로 짜거나, 극단적으로 달았다.
그렇다고 1분, 1초가 아쉬운 아침 시간에 도시락을 챙길 수도, 1분, 1초라도 더 쉬고 싶은 저녁 시간에 도시락을 만들고 있을 순 없었기에 바깥 음식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여럿이 먹는 식사 자리에서 혼자 깨작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매운 거 먹으면 스트레스 풀린다는 말에 매운 거 먹었다가 더 스트레스 쌓이는 눈물겨운 반복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게 됐을 때쯤 어머니께서 나의 서울살이를 체크하러 서울 집에 오셨다.
어머니는 집에 오시자마자 집밥이 그리웠을 딸을 위해 이것저것 음식을 하시기 시작하셨고,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던 나는 그냥 편히 쉬시다 가시라고 말씀드렸으나 전혀 통하질 않았다.
몇 발자국 되지도 않는 좁은 주방 안을 종종걸음으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옮겨 다니시며 음식을 차리셨다.
가뜩이나 환기도 제대로 안 되는 좁은 원룸은 이내 음식 냄새로 가득 찼다.
음식이 모두 차려지고 국을 맛있게 끓였으니 얼른 맛보라고 재촉하시는 어머니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한 채 한입 뜨는데, 아뿔싸.
내 입맛은 나도 모르는 새에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되어있었다.
"어머니, 너무 싱거워요."
결국 내 입에서도 이런 말이 나왔다. 잠깐의 정적. 어머니는 약간의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
"싱겁다고? 간 했는데."
"채소가 너무 많아요. 국물도 거의 없어서 국인지 나물인지 모르겠어요."
"썰은 거 남기기 아까워서 다 넣었지."
"그러니 간이 안 맞죠... 호박이랑 양파밖에 안 보이는데..."
"엄마는 맛있는데..."
어색해진 밥상을 그냥 무시하고 오랜만의 어머니표 집밥 식사는 시식 수준으로 짧게 끝나버렸다.
무심한 딸내미는 그 와중에 인사치레는 꼬박꼬박 하느라 '잘 먹었습니다'란 말을 뒤로 한채 컴퓨터 책상 자리로 휙 가버렸다.
내가 한 말에 살짝 후회도 됐지만 요리의 변화를 위한 나름의 충격요법이라며 혼자 합리화시켰다.
그렇게 어머니의 첫 서울 나들이는 끝이 났다.
내가 먹다 남긴 국은 위생백 몇 봉지로 소분되어 냉동실에 얼려졌다.
예상 가능한 대로 어머니의 다음 서울 방문이 있기 전까지 나는 그 봉지에 손 한번 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