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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소나 Oct 30. 2020

아기와 나와 커피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offee

  아기집을 초음파로 확인한 날, 나는 커피주권을 자진 반납했다. 연히 그래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초산인 티를 이렇게나 낸다.


커피 없는 비엔나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임신 사실을 알았고 오만가지 걱정 속에 비엔나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갈까 말까의 고민이 너무 심했어서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커피가 물보다 싸다는 비엔나에 가는데 내가 커피를 못 마시네! 그리고 코젤의 나라서 맥주도 못 먹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이 사실을 알면 자기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가늠할 수 있으려나.

비엔나 3대 카페에 루이보스 왜 있는데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나에게 바닐라라테는 골초의 담배 같은 존재였다. 몸의 연료가 밥이 아니라 라떼였다. 술은 어찌어찌 끊을 수 있어도 카페인 없는 삶은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만 마셔야 했다. 

  임산부에게 커피는 하루에 한 잔정도는 괜찮다는 사람도 있고, 절대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 그저 당사자의 선택 뿐이지만  경우는 양수가 조금 모자랐다. 그래서 커피를 비롯해 내 몸의 수분을 앗아가는 것들과는 단칼에 이별했다. 그 대신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루이보스 2리터였다.

 590ml 텀블러로 하루에 3 번마셨다. 출근해서 하는 일이 물 마시고 화장실 가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랬는지도 모른다. 월급루팡은 들어봤어도 워터 루팡이라니.

  사무실 한 켠에서 캡슐커피 내려지는 소리가 들리고 커피 향이 얼핏 흘러나오면 그 냄새가 너무나 고소해서 홀린 듯이 마실 뻔도 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맛은 아는 맛이니까. 


수컷 모기야 뭐야

  카페에 가도 마실 게 없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바라(아이스바닐라라떼)였던 내가 메뉴판을 정독하는 사람이 되었다. 과즙을 빨아먹고 사는 수컷 모기처럼  생과일주스 쫍쫍 마셨다(최대한 덜 단걸로). 골이 쨍하게 시원한 아아의 이 어찌나 그립던지

현실은 언제나 생과일
아니면 초코 (남편은 커피가 맛있지? 막 개운하고그러지?)

  유도분만을 실패했던 첫 번째 밤. 오늘은 안될 것 같다고 저녁 드시고 좀 쉬다가 다시 보자는 얘기를 듣 아 피곤한데 커피 나한 잔 개운하게 마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기 낳으면 제일 먼저 아바라를 때려야지. 출산 직후에는 찬 음식을 못 먹는다는 걸 그땐 몰랐지.


아이가 나왔다! 아바라 나와라!

 아이를 낳았다! 리원 침대에 벌러덩 누워서 생각했다. "나는 자유야." 이제 똑바로 누워서 잘 수도 있고, 커피도 먹을 수 있고, 빵도 먹을 수 있고, 떡볶이도 먹을 수 있어. 삐끗하면 임당이었기 때문에 조절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생각에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배민을 뒤지며 이것이 광복이고 광명이로구나!라고 한 치 앞을 못 보는 어리석은 나는 잠시 행복했다.

 집에 와서 알았다. 나는 두 시간 이상 잘 수 없고 떡볶이를 앉아서 먹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배민은 개뿔. 하지만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밀려오는 짜증과 답답함을 녹여낼 뭔가가 필요했고 답은 달디단 커피밖에 없었다. 그래서 캡슐커피를 시작했다. 내일 당장 내려마실 수 있게 로켓배송으로!

갬성을 녹여낸 홈 바닐라라떼

커피 그게 뭐라고

 너는 이렇게 예쁜 애가 있으면서. 얼굴만 봐도 피로가 싹 없어지지 않니? 커피 그게 뭐라고 좀 안 마시면 안 되니? 어미가 돼가지고 그것도 못 참니?

 삼일째 머리도 못 감았으면서 커피는 내려먹는 내 꼴을 보고 친정엄마가 한 소리다. 사실 커피 안 마신다고 내 사지육신이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단걸 덜 마시면 살도 덜 찌고 덜 늙고 좋겠지. 하지만 글쎄다.

 갓난쟁이 육아는 세상과의 단절이고 '나'를 지우는 일이었다. 먹는 것 자는 것 씻는 것을 비롯한 내 모든 욕구를 탈탈 털어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는 시간이었다. 그 특별하고 유별났던 시간이 정점은 지나갔음을 알리는 첫 신호가 커피였던것 같딘. 그래서 어쩌면 커피 그 자체보다 내 일상이 말단부터 회복되고 있다는 기분을 더 원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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