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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소나 Jul 14. 2020

엉덩이를 삼천 번쯤 두들겨야 너는 잠이 들겠지

잘 자라 우리 아가

4개월즈음에도 안아서재웠지

7개월을 가득 채워가는데 아직도 안아서 재운다.

잠투정이 나를 빼다 박았다니, 업보다 생각하고 목탁 대신 아들 엉덩이를 정박으로 두들긴다. 토닥토닥 토닥토닥.

컴컴한 방에서 기계적으로 자장자장을 뇌까리다 보면 오만가지 짧은 생각들이 스쳐간다.


이번 달 카드값이 얼마나 나올까.

육아지원금이 푹 깎여서 나왔던데 빵꾸 날 것 같아.

남편한테 빌려달랄까.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저축이 문제가 아니야 애시당초 월급이 쥐꼬리야.

그때 직장을 옮겼어야 했는데.


누가 그랬던가 인생이 우울한 이유는 우리가 우울만 곱씹기 때문이라고. 그러다 보면 안고 있는 애가 이유 없이 뽈딱깨서 애앵하고 운다. 그럼 좀 성의를 담아서 "오구오구 깨쪄~ 왜깨쪄?"라고 달래준다. 의 매일 반복되는 패턴인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품에 안겨있는 애들은 심박수나 숨소리로 엄마가 어떤 감정인 지를 본능적으로 안다는데. 혹시 내가 멍 때리며 떠올린 어 잔혹한 장면들이 아이의 꿈에 나타나면 어쩌지? 그래서 나쁜 꿈을 꾸고 갑자기 깨서 우는 걸까" 별 시답지 않은 의식의 흐름 속에서 떠오른 상념이었는데 재울 때마다 묘하게 신경 쓰였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좋은 생각 해주지 뭐 하고 행복했던 장면을 떠올리려는데 퍼뜩 생각나지 않았다. 머리가 하얘지고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없나? 그렇게도 없었나? 내가 살아온 날들이 이렇게 얄팍한가?엉덩이 토닥이는 것도 잠시 잊을 만큼 허무해졌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고 머리를 쥐어짜 내어 장면을  떠올렸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봤던 환상적인 석양과 반딧불이. 꿉꿉한 공기 속에 살짝 얼어있던 타이거맥주의  맛. 신혼여행이지만 이미 홀몸 아니었던 나 꼭 잡아준 남편과 그가 어린애처럼 좋아했던 비엔나의 골목 초콜릿. 해먹에 누워 흔들리는 내 몸뚱이를 스쳐갔던 새벽 캠핑장의 서늘한 공기.


잘자라 너E새끼 내새끼야

 머리가 하얘졌던 것이 무색할 만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행복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날부터 나는 아이를 재울 때마다 내 행복을 곱씹으려고 노력했다. 우연이겠지만 그즈음부터 아기가 자다가 번쩍 깨서 우는 일도 잦아들었다. 옆에 누워 잠든 내 아들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저 작은 머리 통속에 즐거운 일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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