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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Apr 02. 2024

너에게 응원이 될까?

아들과의 대화

얼른 자라고 잔소리하며 애들을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러고는 마음이 짠해 "엄마, 잠시만 옆에 누워있다 금방 갈 거야." 하면서 옆에 누웠다. 언제나처럼 아이 얼굴이 다시 쌩쌩해진다. 초등학교 5학년, 무언가를 물어도 자세한 답을 듣기 어려운 아이와 대화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축복아, 5학년 되고 한 달이 지났는데 4학년 때랑 지금이랑 비교하면 어때?"


4학년이었던 작년 가을, 아이는 심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주요 원인이 학교는 아니었다. 하지만 5학년이 되고 눈에 띄게 다시 편안해진 아이를 보면서 어쩌면 학교생활이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슬그머니 꺼낸 질문이었다.


"4학년 때보다 좋은 것 같아. 친한 친구도 많이 생겼어. A랑 B랑 C랑. A랑 B는 나랑 성향이 비슷해서 같이 이야기하면 좋고, C는 나랑 성향은 많이 다른데 가까이에 계속 앉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친해졌어."


반짝거리는 눈으로 가볍고 경쾌하게 쏟아내는 친구 이야기. 행복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더 신나는 이야기가 갑자기 시작됐다.


"엄마, 우리 반 반장이 00할 때 (그게 뭐인지는 제대로 듣지 못함.) '수아' 하자고 하는 거야. (여기에서 '수아'가 뭔지도 못 알아들음.....) 근데 여자애들은 이렇게 그냥 ("안녕" 손 흔드는 포즈를 보여주며) 손만 흔들었거든. 그래서 나도 그냥 손만 흔들었어."

"아, 그래? 근데 '수아'가 뭐야?"

"그거 호날두가 하는 세리머니래. 이렇게 하는 거야."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패기 넘치게 한쪽 발을 앞으로 탁, 양팔을 밑으로 쫙.)

"아, 그렇구나."

이 타이밍에 나는 생각했다. 아, 그런 동작이라서 너는 하기가 힘들었겠구나. 부끄럼이 많은 아이, 민망한 건 하지 못 하는 아이. 그런 아들에게 그 동작은 너무 큰 것이었다. 온몸을 다 쓰는 데다가 절도까지 있어야 하는, 축복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동작. 민망하다며 손사래 칠 그런 동작. 당연히 그렇게 이야기가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근데 최근에 나도 같이 했어."

"응? '수아' 저걸 너도 했다고?"

"응." (왠지 수줍어하는 표정)

"정말? 그래. 막상 해보니까 괜찮지? 해보니까 또 할 수 있겠지?"

"응. 그렇더라고."


"그리고 엄마, 오늘 독서토론 시간에 내가 발표했어. 우리 모둠 세 명 중에 한 명이 하면 되는 건데 내가 먼저 하겠다고 했어. 어차피 학기 끝나기 전에 한 번은 해야 되는데 먼저 하면 마음이 편해지잖아."

"그렇지. 하고 나면 오히려 편해지지."

축복이는 남 앞에 서는 걸 아주 싫어한다. 남 앞에서 발표하는 건 더더욱 부담스러워한다. 전에도 독서토론 시간 발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발표해야 해서 싫다고 그날은 다른 친구가 발표해서 좋았다고 했었다. 그랬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다. 엄마는 이럴 때 무한히 기뻐진다.


"그래도 다른 모둠 D랑 의견이 같아서 좀 편했어. 둘이 같은 팀으로 발표해도 되니까. 근데 그런 경우 둘 중 한 명이 발표해야 되는데 그것도 내가 한다고 했어." (매우 뿌듯한 표정으로 엄마를 본다.)

"이야. 축복이가 용기를 냈구나."

"응. 5학년이 됐잖아. 4학년 때는 안 그러던 애가 갑자기 변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5학년 돼서 내가 어떤 앤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용기내기 더 쉬운 거 같아."


어쩜 이렇게 내 아들다울까. 나의 어린 날이 떠올랐다.


"축복아, 엄마도 사실 어릴 때 그랬거든. 엄마 초등학교 때 목소리가 작아서 발표도 잘 못했어. 그러다가 3학년 때 부산으로 이사 가면서 전학을 갔어. 새 학교에 엄마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까 좀 변하고 싶은 거야. 왜 목소리가 모기소리 같냐고 좀 크게 하라고 하는 얘길 그만 듣고 싶었거든. 그래서 막 소리 지르듯이 책 읽고 발표하고 그랬어. 근데 한 번 하고 나니까 발표하는 게 훨씬 쉽고 편해지더라."


그때 이후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못 믿을지도 모른다. 내가 남 앞에 서서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날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나도 자라서 두 시간쯤 대본 없이도 남 앞에서 강연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우리에겐 자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축복이도 과정을 걷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이 내 기대대로 일 수는 없지만, 어째됐든 나아가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그걸로 되었다.


오늘 아침, 등교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아이 볼을 부비며 말했다.


"용기 내는 거 너무 멋있어.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용기 내는 거야. 엄마는 용기 내는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워."


엄마의 이 말이 너에게 응원이 될까? 한 번 더 용기 내볼 수 있도록 돕는 주문이 되기를, 사심 가득 담아 건넨 엄마의 응원이 마음에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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