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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Jan 24. 2024

영어를 잘 못하는 엄마라서 해 줄 수 있는 말

영어 잘할 것 같다는 말, 많이 들었다. '잘'이라는 표현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저마다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 그러니 이건 그저 내 기준일 뿐이겠지만,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글로벌 마케팅팀에서 일하면서 "네가 영어만 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자주'가 아닌 건, 굳이 말하지 않고 넘긴 사람들이 더 많아서였을거다. 어릴 때부터 영어가 싫었다. 수능 영어는 어찌어찌해냈지만, 진짜 영어는 해낼 수 없었다. 싫어도 열심을 낼 수 있는 일이 있고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일이 있는데, 나에게 영어는 애석하게도 후자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제일 좋았던 게, 이제 영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을 정도다. 영어로 회의할 일도, 영어로 메일 쓸 일도 이제는 없다. 해방감이 엄청났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었다. 영어로 스트레스받던 사람은 대부분 영어교육을 강조하는 엄마가 된다고 한다. 나는 그 '대부분' 중 하나가 되지 못했지만 말이다. 영어 공부를 너무 싫어했던지라 아이가 영어를 싫어하는 게 더 두려웠다. 못 하는 건 개선이 가능하지만, 싫어하는 건 답이 없다. (정말 놀랍게도) 영어가 재밌다며 학원에 보내달라고 하는 아들을 학원에 보내면서도 늘 노심초사했다. 학원에서 영어를 얼마나 제대로 가르치는지보다, 아이가 영어에 질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지는 않은지를 더 열심히 살폈다.


5살 때 영어가 재밌다던 아이는 어느새 12살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영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5살 때 아파서 유치원은 못 가도 영어 수업은 가야 한다던 아이가 지금은 영어학원을 싫어한다. 이 아이를 보면서 알게 됐다. 내가 영어를 싫어했던 이유가 완벽주의였다는 걸 말이다. 나와 남편의 기질 이것저것을 섞어 닮은 아이가 내 완벽주의를 가져갔다.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그것. 영어 시간에 먼저 말하는 법이 없다는 아이는, 본인이 배운 문장을 완벽히 구사하지 못한다면 입을 떼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을 게다. 그 마음을 내가 안다.



12살, 8살. 두 아이를 데리고 괌으로 가족여행을 갔다. 영어를 좀 배웠지만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첫째와, 영어라고는 유치원 기본 수업 밖에 들은 게 없지만 이미 영어가 싫다고 말하는 둘째. 영어로 소통하는 곳에서 두 아이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궁금했다. 어차피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은 엄마와 아빠가 할 테니 아이들이 할 영어는 반갑게 건네는 인사가 전부겠지. 과연 "Hello!"는 자신 있게 할 수 있을까. 내 기대치는 딱 그 정도였다. 거침없이 입 밖으로 헬로를 내놓는 것만 보아도 좋겠다 생각했다.


여행 둘째 날이던가. 식당에서 식사를 마쳤는데 서빙을 하던 직원이 물었다. "Finish?" 그러자 둘째가 묻는다. "Finish?" 내가 얼른 대답했다. "응. 피니쉬. 식사를 다 끝냈냐고 묻는 거야." 그랬더니 둘째가 외친다. "Yes. Finish." 단어 하나가 전부였지만 말이 통했다는 게 좋았는지, 혼잣말처럼 자꾸 반복했다. "finish. finish. finish." 그 순간, 둘째는 영어를 좋아하는 아이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영어구사보다 중요한 건, 상대방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니까. 영어의 낯섬보다 외국인과 대화하는 즐거움이 크다면, 영어가 짐이 아닌 필요한 도구로 느껴질 테니까. 한국에서도 누구나와 대화하고 싶어 하는 둘째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입 닫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거다.


여행 마지막 침대에 누워, 둘째에게 말했다. "꿈이야, 다음에 여행올 영어를 잘하면 좋을 같지 않아?" "응." "그러면 한국 돌아가서 영어 공부를 해야 해. 조금씩만 해도 다음 여행엔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정도는 직접 물을 있을 거야." "그래? 뭐. 그럼 영어 공부도 해야지. 뭐." 영어공부는 절대 하지 않겠다던 아이에게 들은 첫 번째 긍정사인이다.


첫째에게는 좀 더 긴 이야기를 했다. "축복아. 영어를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영어로 대화할 수 있어. 사실 엄마도 영어 잘 못 해." "아니야. 그래도 엄마는 영어로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잖아." "그렇지. 엄마가 필요한 말은 다 하지. 근데 있잖아, 사실 엄마가 하는 영어들 문법에 안 맞는 거 엄청 많아. 틀리지만 그냥 말하는 거야. 예를 들어서, 아까 축복이가 궁금해해서 엄마가 물어봐 줬잖아. 그 새가 날고 싶어 하지 않냐고. 그때 엄마가 한 말은 (그대도 직역하자면) 이랬어. '우리 아들이 궁금해해. 이 새가 날고 싶어 한다???' 의문형 문장으로 얼른 만드는 게 잘 안 돼서 그냥 평서형을 뒤만 이렇게 높여서 말한 거야. 이렇게 말해도 상대방이 알아듣거든. 물론 완벽하게 말하면 더 좋겠지. 하지만 완벽하게 말할 수 없다고 묻지 못하는 것보다 이게 더 낫다고 생각해. 너도 외국인이 서툰 한국말로 말해도 대부분 알아듣잖아. 그건 네가 한국어 네이티브이기 때문이지. 네가 한국어를 잘하니까 상대방이 이상하게 말해도 알아들을 수 있어. 그러니까 여기 사람들도 우리가 좀 서툴게 말해도 알아듣거든. 우리가 외국인의 한국어 문법이 이상해도 이해하는 것처럼 여기 사람들도 이해할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말해도 돼. 완벽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면 돼. 자꾸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늘기도 하거든."


"아~~" 아이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내가 영어를 유창하게 했다면 절대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없었을 거다. 완벽주의자인 내가 영어를 완벽하게 했다면, 아이의 완벽하지 못한 영어를 참지 못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영어를 못 하는 엄마여서, 얼기설기 끼워 맞춘 단어로 대화하는 사람이어서,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래. 이게 정답은 아닐 거다. 이런 식으로 학교 영어 성적을 잘 받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어차피 그건 교실 영어로 해결할 문제다. 거기서 해결될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조금 다른 문제. 그거와 별개로, 나는 내 아이가 한국어는 통하지 않고 영어는 통하는 곳에서도 원하는 걸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완벽한 영어보다 입을 뗄 용기가 더 필요하다고 여기는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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