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받은 잔이다.
중국에서 사 오신 잔.
아빠는 오랫동안 중국을 오가며 일하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였다. 언젠가는 아빠 회사에 와 있는 중국인 연수생들을 집에 초대한 적도 있다. 그들을 위해, 중국에서 오신 선교사님과 우리 엄마, 나랑 동생이 둘러앉아 중국식 만두를 빚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날의 기억 덕분에 이후로도 일하러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낯선 이가 아닌 이웃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여하튼, 이 잔은 수많은 출장길 중 어느 하루에 아빠가 가져온 것. 나는 티인스트럭터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하던 중이었고 교재에서 배운 자사호가 궁금하던 차였다. "아빠, 집에 남는 자사호 없어요?" 역시, 자사로 만든 다구는 얼마든지 있었다. 아빠는 그중에 이 잔을 꺼내 주었다.
사실 차를 좋아하는 취향도 아빠로부터 왔다.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와 차를 좋아하는 아빠. 두 가지 풍경을 보며 자랐는데 나는 둘 중 차 쪽에 더 끌렸다. 커피는 중독성을 가졌고 차는 여유를 가졌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보니 매일 커피를 마셔야만 하는 엄마의 모습을 더 많이 봐서인 것 같다. 반면 회사에 다니던 아빠는 여유 있는 휴일이나 저녁식사 후에 느긋하게 차판을 폈고 말이다.
함께 앉아 차를 마시면 아빠와 두런두런 대화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아무래도 퇴근이 늦던 아빠와 어느 정도 자란 딸이 갑자기 마주 앉으면 어색하기 마련인데 차가 모든 걸 유연하게 했다. 오늘 고른 차에 대해 묻고 듣다 보면 금방 대화가 채워졌다.
어릴 때는 한국차를 주로 마셨고 종종 일본차를 마셨는데, 아빠의 중국 출장이 잦아질수록 중국차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나는 특히 청차를 좋아한다. 철관음이나 무이암차류는 신비하기까지 하달까. 찻잎도 고작해야 나뭇잎일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달큰하고 향긋한 향이 나는 걸까. 찻잎에 대한 감탄보다는 딱 적당한만큼만 발효하고 덖어낸 장인의 솜씨에 매번 놀란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우롱차도 청차다. 우롱차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철관음의 향이 더 다채롭다 느낀다.
다시 자사호로 돌아가자면, 자사호가 궁금해진 건 다기의 재료에 따라 차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기는 숨을 쉰다. 공기가 얼마나 들어오고 나가느냐가 차맛에 영향을 미친다. 다기마다 자신만의 맛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가진 성분이 차와 반응한달까.. 그런 식으로 차맛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자사 역시 독특한 특징을 가졌다고 들었고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기공 덕분에 품질 낮은 차의 안 좋은 향을 잘 흡수한다고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좋아하는 차의 특징이 흡수되는 느낌이라서 몇 번 사용하다가 그냥 넣어두었었다. 그런데 가끔 자사잔만의 독특한 감촉이 생각난다. 그래서 오늘은 찬장 깊숙이에서 굳이 꺼내봤다. 이 잔을 꺼내주던 아빠가 떠오르기도 해서.
궁합이 그리 좋진 않지만, 붉은 흙으로 만든 중국산 잔과 아빠가 사다 주신 한국차 우전을 꺼내 우려 본다. 우전은 아빠가 여행 중 들른 다원에서 사 오셨다는데, 찻잎만 꺼내도 달큰한 향이 난다. 마음에 드는 아이. 차를 배우면서 알았는데 나는 특히 차의 달큰함을 예민하게 느끼는 편이다. 오늘은 우전 마지막 한입을 탈탈 털었는데 그래서인지 달큰함이 더 멀리 퍼진다.
어느 육아 전문가가 그랬다. 아이들은 책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좋아하는 거라고. 돌이켜 보면 나는, 차가 좋은 게 아니라 아빠와 차판에 마주 앉는 시간이 더 좋았던 건지도 모른다. 지금도 친정에 갈 때마다 아빠에게 차 마시자고 조르는 건, 어린 시절의 몽실거리는 추억이 떠올라서인지도. 아빠와 다 큰 딸 사이의 대화를 깊게 하는 마법, 그건 찻자리다.
덧. 만약 차 고유의 맛을 다기 영향 없이 그대로 즐기고 싶다면 그때는 무조건 유리다기를 꺼내면 된다. 향도 맛도 튕겨내는 유리다기가 사실 최고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