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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Dec 06. 2023

아니, 왜 거기서 눈물이 나냐고

영화 <싱글인서울>

로맨틱 코미디. 누가 봐도 눈물 흘리기에 적당하지 않은 장르. 심각하고 싶지 않아서 고른 영화였다. 주연인 임수정 배우를 좋아하기에 머리를 식히고 싶은 지금 딱 적당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첫째 하교시간과 영화 끝나는 시간이 거꾸로 어긋나 잠시 고민했지만, 영화관의 공기가 그리워 가기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가벼운 스토리에 몰입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니, 왜 여기서 눈물이 나는 건데!!!!!


영화 중반이 넘어갈 즈음 갑자기 눈물이 났다.


영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기에 몰랐다. 이 영화가 책 만드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싱글 인 서울>은 동네북 출판사가 만드는 책 이름이고, 여자 주인공은 출판사 편집장, 남자 주인공은 첫 책 출간을 앞둔 작가다. 의도한 건지 모르겠는데 카메라가 처음 출판사 간판을 비추어 줄 때 이미 나는 슬퍼졌다. 동네북이라니.. 동네 북이 신문고가 되어 의미 있는 이야기가 둥둥둥둥 울려 퍼진다면 좋겠지만, 하찮음의 대명사 동네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너무 큰 네이밍이라서 그랬다.


"첫 책을 내는 작가들은 자기 책이 나오면 세상이 깜짝 놀랄 거라고 해요. 그런데 막상 책이 나오면 자기가 제일 놀라. 너무 안 팔려서." 극 중 주현진이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박영호에게 왜 작가가 되고 싶은지를 물으면서 하는 말이다. 이제 그다지 새롭지도 않은 말. 책이 나온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느니, 책이 정말 잘 안 팔린다느니 하는 말이 식상하다. 그런데도,  나는 또 저 대사에 반응했다. 한 번도 내 책이 세상을 놀라게 할 거라 생각한 적 없다. 그러지 말라고, 자기 책인데 네가 제일 자신 있어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잘 팔릴지도 모른다고, 누군가가 나에게 말할 때마다 시니컬하게 답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판매량은 책의 퀄리티와 비례하는 게 아니라고. 그런데도 책이 나오면 조급해진다. 많이는 팔리지 않더라도 너무 안 팔리는 수준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안 팔려서 놀란 적은 없다. 기대치가 낮았다. 매번 '이만큼이나 팔려서 놀랍다'라고 생각했다. 그게 너무나 감사하면서도 슬펐다.


그러면서도 왜 자꾸 쓰는지 묻는다면, 영화 속에 답이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사인을 해달라고 찾아온 이에게 박영호가 묻는다. "이 책이 의미가 있었나요?" 그리고 상대는 이런 답을 한다. "저도 서울에 혼자 살고 있어서 공감도 많이 되고,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이 답을 들었을 때 박영호의 마음은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제일 잘 안다. 계속해도 되겠다고, 더 써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실패한 책이라도, 많이 팔리지 않았더라도, 누군가 한 사람이 이렇게 읽어주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내가 그렇다. 메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은 요원하더라도, 쓰지 않았으면 닿지 않았을 누군가에게 닿아 응원이 되었다면 충분하다. 계속 쓸 이유가 된다.


잠시 등장한 어느 시인의 북토크 장면. 첫 책을 지금 보면 부끄럽지는 않냐는 질문에, 시인이 답한다. 부끄럽다고. 쓸 때마다 부끄럽다고. 오늘 쓴 글이 내일 부끄러워질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쓰는 거라고. 이 역시 나도 그렇다. 내일이면 부끄러워질지도 모르는 글을 오늘도 쓴다. 왜일까. 어떤 글은 나를 살리고 싶어서 쓰고, 어떤 글은 누군가에게 응원이 되고 싶어서 쓴다. 두려운 건 내일의 후회가 아니다. 원했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쓸모없는 글이 될까 봐 글 앞에서 신중해진다. 나는 늘 그렇다.


내게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다. 나의 우여곡절을 되짚는 다큐였다. 울컥 눈물이 난 건, 인쇄소 장면에서였다. 감리 보는 장면에서 VACAY 작업 시절이 겹쳐 보였다. 극 중의 책은 에세이지만 도시를 담는다. 사진이 중요한 책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VACAY는 사진이 더욱더 중요했다. 단행본이 아니라 매거진이니까. 난생처음 감리를 보던 날, 디자인 실장님의 경험에 기대어 이 색을 올리고 저 색을 내리면서 괜스레 설렜다. 지금 내가 그 장면에서 울컥하는 건, 현재가 아니라 과거이기 때문일 거다. 지나버려서 그립다.


<싱글인서울> 제목이 말하듯 서울을 보여주는 영화다. 모든 배경이 서울이고, 심지어 마지막에 남자 주인공을 "서울 같다"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당연히 아름다운 서울 풍경이 자주 나온다. 서울을 담은 미장센을 볼 때마다, '아 저 장면' 했다. VACAY 서울 편을 만들 때 많이 고민하고 고민했던 바로 그 서울의 모습이었다. 우리의 서울은 현대적이면서 고전적이다. 우리가 매거진에 담고 싶었던 장면이 고스란히 영화에 녹아 있다. 마지막 한강의 일몰에서는 완벽히 실패했던 한강 촬영이 떠올랐다. 그래, 한강은 저렇게 아름다웠지. 우리가 촬영한 그 반대편의 한강이 말이야. 서툴렀지만 완벽하고 싶었던, 깊이 고민하고 했던 결정이 완벽한 오판이 되기도 했던 그때가 아련하다. 지나버려서.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났다.


영화 속 주인공의 기억처럼 지나간 것들은 편집된다. 우리 뇌는 효율을 중시하기에 적당히 잊고 적당히 저장한다. 종종 마음이 끼어들어 원하는 방식으로 편집한다. 영화 속의 첫사랑 기억도 그렇다. 영호와 상대가 쓴 내용이 다르다. 분명 그렇다고 믿고 쓴 내용이 사실은 진실이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어쩌면 나의 기억도 그런지 모른다. 그럴 장면이 아닌데 괜스레 아련해지는 건지도, 의미 없이 울컥하는 걸지도. 그렇지만, 오늘은 그대로 두기로 한다. 감정이 복받치는 순간도 그런대로 괜찮으니까. 어릴 때부터 내게 극장은 그런 곳이었다. 감정이 가득 차는 곳. 스크린 속 인물의 것이든, 나의 것이든.


"흥행은 잘 모르겠고, 나는 마음에 들었어. 우리 동네 영화관에서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가까운 시일 내에 한 번 더 보러 가야겠어." 영화를 보고 나오며 남편에게 말했다. 다음번엔 꼭 안경을 챙겨야지. 고민하며 담았을 서울의 장면들을 커다란 스크린으로 제대로 다시 한번 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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