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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Nov 08. 2023

어제의 나를 칭송한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경험

일주일은 긴 걸까, 짧은 걸까? 시간의 길이라는 건 지나치게 상대적이고 주관적이어서,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 초보운전자에게 운전 연습을 하지 않은 일주일은 연습할 때보다 빠르게 지나간 짧은 시간이었는데, 다시 운전대를 잡으려고 보니 운전하는 법을 다 잊어버리고도 충분한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일주일이나 쉬었어. 운전하기 무서워. 분명 또 낯설어져 있을 거야.


어제 아침, 나는 또 이런 나의 두려움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었다. 마음 한편에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금 나가야만 한다는 여리고 여린 마음 한 조각이 삐죽 나타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장악한 두려움을 그 여린 조각이 무심히 공격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이. 두려움에게 대꾸하지 않고. 그냥 뚜벅뚜벅. 솔직히 나도 이 전투에서 승리할 자신이 없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으음, 이건 나의 승리가 맞을까? 여하튼 나도 놀라웠던 어제 아침의 내 전략에 대해서 기록해두려 한다.


1. 두려움은 내버려 둔다. (머리 넌 두려워 하렴. 몸 나는 운전하러 갈 테니까.)


흠칫, 놀랐다.


생각인지, 마음인지, 여하튼 나를 지배하는 정신은 온통 '두렵다. 나가기 싫다. 안 가면 안 될까? 그냥 누울까? 오늘 너무 춥잖아. 나 새벽에 일어나서 지금 졸리기까지 하는데? 오늘 안 하면 목요일에도 시간이 있어. 무서워. 하기 싫어. 운전을 그만두는 건 어떨까? 겨울이 오니까 곧 눈이 올 텐데 그냥 내년 봄에 다시 시작할까? 춥고 졸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몸은 계속 움직이고 있는 거다. 저 생각과는 완전히 반대로. 다시 침대로 들어가는 게 아니고 일단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머리가 '안 나가고 싶어' 하는데, 몸은 얼굴에 선크림을 발랐다. 머리는 '무서워. 오늘 꼭 안 해도 되는 일이야.' 하는데 몸은 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는 '안 나가면 안 될까?' 하는데, 몸은 가방에 노트북을 챙겨 넣었다.


뭐지?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몸이 머리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몸이 머리와 따로 놀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결국 내 손은 차키를 잡더니 주머니에 넣었다. 그다음은 신발 신고 문을 열고 나가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무의식은 1층을 눌러버렸지만 바로 1층을 취소하고 지하 2층으로 변경했다. 익숙한 듯 두 발로 걸어 나가면 될 1층을 누른 건 내 머리의 마지막 저항이었을까.


화장대 앞에서 얼굴에 이것저것 찍어 바르는데, 거울에 비친 내가 낯설었다. 아직 머리는 운전하러 나가기로 결정하지도 않았는데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내 몸뚱이가 신기했던 거다. 생각에는 두려움이라는 표정이 있었는데, 움직이는 몸에는 표정이 없었다. 무심함 그 자체. 유체 이탈자처럼, 생각도 감정도 없이 기계처럼 움직이는 몸에게 '뭐야? 왜 너 내 몸인데 내 말 안 들어?' 할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길 위에서 '뭐야, 아무 생각 없이 나오니 운전도 더 둔한 느낌이잖아.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 8차선 도로에서 좌회전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몸과 머리가 다시 하나가 되었고, 몸도 표정을 되찾았다.


2. 하지 않았을 때의 좌절감을 상상한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고 해서, 내 몸이 정말 저절로 움직였을 리 없다. 작고 연약해서 거대한 두려움을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해야 한다'는 마음이 해낸 일일게다. 이 마음은 두려움을 이기는 대신, 두려움을 내버려 둔 채로 몸을 지배하기로 했다. 거기엔 조력자가 있었다.


하지 않았을 때의 좌절감을 떠올릴 수 있게 한, 상상력이라는 친구였다.


나는 하기로 한 일에 대한 집착이 꽤나 강한 편이다. 계획한 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외부 요인이 아닌 내부 요인으로 포기했을 때 스스로를 자책하는 경향이 크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쉽게 결심하지 않는다. 정말 꼭 해야 할 것만, 구태여 그 이상을 계획하지 않으려 한다. 운전을 포기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필요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포기를 하고서는 좌절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한 건 절실함 때문이었다. 필요한 때에 아이의 병원에 닿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던 순간 했던 결심이다.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해야만 한다. 마지막 연습이 지난주 화요일. 하루만 지나도 일주일이 넘었다는 생각 때문에 백배는 더 망설여질 게 분명하다. 나는 나를 더 자책하겠지. 왜 어제의 나는 운전하러 나가지 않았냐고. 오늘의 나를 왜 더 힘들게 만들었냐고. 마음먹어놓고 해내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울 거다. 운전, 그게 뭐라고. 그까짓 것 때문에 좌절감에 빠지고 싶지 않다면, 움직여야 했다.


3. 창 밖의 초록과, 테이블 위의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떠올린다.


운전 연습 목적지는 집에서 20~25분 거리의 카페. 준비하고 운전해서 도착하는 데까지 1시간이면 충분하다. 20~25분의 터널만 지나면 나는 평화로운 카페에 앉아있을 수 있다. 비록 아이 등원길은 추웠지만, 내 차를 운전해서 카페에 도착하면 그곳은 분명 따뜻하겠지. 거기에 따뜻한 커피 한 잔, 노트북을 펴고 투닥거리다가 고개를 들면 초록 풍경이 펼쳐질 게다.


그 장면을 딱 두 번 떠올렸다. 두렵다고 아우성치는 와중에 딱 두 번. 사실은 '걸어서 나가는 집 앞 커피숍에도 커피는 있잖아.'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기는 했지만, 거기엔 호수가 있는 초록뷰가 없다고 재빠르게 쏘아붙였었다. 두려움에 눌려 오래가지 못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곳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누린 바로 그 풍경.


수요일 아침, 오늘 나는 여유롭다. 어제 운전 연습을 했고, 오늘은 모임이 있는 날. 애초에 운전을 쉬기로 한 날이다. 어제 나가지 않았다면, 어제 못했으니 오늘 시간을 쪼개서라도 운전대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 불안해했겠지. 어제 유체이탈 전략으로 운전 연습에 성공한 나를 칭송한다. 어제의 너는 칭송받기에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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