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땐 어떤 곡을 듣냐는 물음은 상당히 흔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답 또한 정해져 있죠. 흥을 돋우는 신나는 음악을 듣거나, 더 우울해지는 슬픈 음악을 듣거나. 아마 대답은 둘 중 하나로 갈릴 겁니다.
저 또한 이 질문을 솔찬히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답은 늘 같았고요.
“저는 슬픈 노래를 듣습니다.”
본디 차분하고, 단조로운 노래를 즐겨 듣는 편입니다. 오랫동안 메이트의 음악을 애정 했다는 사실이 저의 성향을 가늠케 해주죠. 그래서 저는 슬프던, 슬프지 않던 주로 슬프다 불리는 부류의 음악을 듣습니다. 그러니깐, 힘들 때도 슬픈 음악을 듣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어떤 음악을 듣냐는 질문 다음으로 ‘왜’냐는 질문까지는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아마 제가 예측 가능한 답을 내놨기 때문일지도. -혹은 더이상 궁금하지 않았거나- 물론 누군가 이유를 물었다 해도 명확하게 답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도리어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왜 슬플 때 슬픈 음악을 듣는걸? 정말 오로지 나의 기질 때문일까?’
자문을 듣자하니 출처 모를 갈증이 밀려옵니다.
사실 저는 그 이유를 가늠해보기 위해 나름대로 애썼던 적이 한 차례 있었습니다. 그땐 오히려 쉬웠습니다. 한 유명인이 같은 질문에 대해 무릎을 탁 칠만한 답을 줬거든요. 그 한 마디가 비눗방울처럼 떠오릅니다.
“우울할 땐 감정의 밑바닥까지 추락해야 비로소 바닥을 딛고 다시 올라설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마음을 울린 말이었습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저 또한 감정의 밑바닥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슬플 땐 더 깊은 곳으로 저를 추락시키곤 했죠. 마치 그의 한 마디가 나 자신도 몰랐던 나를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듯했습니다. 그래, 나도 그래서 슬픈 음악을 듣는 걸 거야! 그 덕분에 더 이상 궁금해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비교적 아주 단순하게 해결됐었죠.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아마도 '감정의 밑바닥'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단 걸 느꼈기 때문이겠죠. 네, 그 이유 하나만으로 슬플 때 슬픈 음악을 듣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죠. 그래서 다짐했습니다. 나 자신을 한번 더 탐구해보겠노라고. 그래서 "그 이유"를 한번 더 가늠해보겠노라고. 이유를 가늠키 위해선 나를 돌아봐야 하고, 나에게 이는 감정을 관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한번 저의 바닷속 심해를 탐험해보기로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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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펐던 시간을 돌이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질문 자체에 '슬플 때-'라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비교적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슬픈 기억도 근 1여 년 전 일이기 때문에 아픔보단 무뎌짐이 자리했기 때문이죠. 그때도 어김없이 슬픈 음악들과 함께 시간을 엮어 냈습니다. 윤종신과 이소라, 토이의 절절한 이야기와 정준일 그리고 박지윤까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슬픈 음악들을 총망라하여 플레이리스트에 꾹꾹 눌러 담고, 하염없이 거리를 거닐였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또렷하게 들리던 가사와 마음에 이는 오만가지 아픔들. 곡이 넘어갈 때마다 마치 비운의 남주인공이 된 것처럼 이야기에 절절하게 스며들며 아픔을 토해냈습니다. 그땐 세상이 무너질 듯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슬픈 음악 덕에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수개월 간 슬픈 음악과 함께 아픔을 딛고 한 단계 더 성숙해질 수 있었죠.
그래서,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결국에는 ‘위로’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정말 힘겹고, 세상이 무너지고 있을 때 ‘괜찮아, 잘될 거야, 시간이 약이야’라는 말보다는 ‘슬픔이란 게 원래 그런 거야, 다시 곱씹어봐도 좋아, 굳이 잊지 않아도 돼’와 같은 말들이 훨씬 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가라앉는 나의 감정을 애써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려 맑은 공기를 쐐게 해 주려는 것보다는 함께 심해로 빠져드는, 웃기는 표현이지만 슬픈 감정을 꼭꼭 되새김질해볼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위로가 훨씬 더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뭔가 우리 삶에 필히 우울한 시기가 존재함을 이해해주고, 이를 함께 해주는 느낌이랄까요. 슬픈 음악은 제게 그런 힘이 되어 줬습니다.
자, 이제 최종적인 답변을 해볼까 합니다. 제가 슬플 때 슬픈 음악을 듣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죠. 그 이유는 바로 ‘누군가 함께 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나는 슬픈데 억지로 밝아지라 강요하는 음악보다는 그 슬픔마저 온전히 나의 것으로 아로새길 수 있도록 발걸음을 함께 해주는 음악. 저의 슬픔에 말없이 어깨를 내어주는 음악.
어찌 보면 참으로도 쓸모없는 고찰과 자문이었지만 꽤나 괜찮은 자답과 고민의 시간이 되어준 것 같아 마음이 한결 선선합니다. 오랫동안 안고 있었던 궁금증도 해결하고, 저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물론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을 겁니다. 각자에게 맞는 나름의 방법이 있는 것이고, 저 또한 미래엔 같은 질문에 정반대의 답을 내놓을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여태껏 저의 답은 동일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동일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불어 오늘 저에게 슬플 때 슬픈 음악을 듣는 의미가 가져다주는 위로처럼 저 또한 제 주위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