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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Mar 25. 2024

북클럽 여러분들께 보낸 편지

<에디토리얼 씽킹> 모임 전 괜히 보내보는 메일


안녕하세요. 눈그린 북클럽의 여러분들.


 빗방울이 날리다가 말고, 여름이의 열감기가 떨어지지 않는 일요일. 저는 친구와 함께 빌린 창문 청소기로 열심히 창을 닦고, 그러는 김에 방청소도 했습니다. 오늘 산책길 마켓에 가서 놀고 사 오고 싶은 물건도 많았는데, 갈 수가 없어 슬펐지요. 그런 와중에 친구의 아이도 열감기에 걸린 김에(?) 오후에는 친구네 집에서 편히 놀았습니다. 집에 와서는 또 창문 청소기를 윙윙 돌리고, 확실히 깨끗해진 주방 창문을 보며 기분이 좀 좋아졌어요. 점심때 떡볶이와 우도땅콩 막걸리를 배불리 먹었더니, 저녁까지 배가 부르더군요. 아이가 잠든 9시 30분에는 급격한 허기에 군고구마와 빵을 허겁지겁 먹고, 오늘 안에는 메일을 보내야지 하면서 이러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풀무원 플레인 그릭요거트와 티스푼이 놓여 있어요. (냠냠)


 ‘에디토리’ 재미나게 읽으셨나요? 혹은 읽고 계신가요? 저는 방장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덜 읽었습니다. 민망하네요. 그래도 내일 완독할 거예요. 모임 전까지는 반드시 다 읽거든요. 당연한 소리를 구구절절하고 있네요. 괜히 메일 주소를 받았나, 은근슬쩍 후회를 했다가, 메모장을 열어 아무말 대잔치를 벌일 때는 신이 났다가, 오락가락하면서 의식의 흐름대로 써서 보내려는 메일을 읽어주는 그대, 감사합니다.

책 사진 찍던 날

 10대 때 봤던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의 한 꼭지가 있는데, 몇 년 전부터 머릿속에 떠올라서 구글 검색까지 시도했었어요. 제대로 못 찾은 것인지 그 방송을 다시 보지는 못했습니다. ㅎㅎㅎ 그 영상은 오랫동안 제 무의식 어느 한구석에 숨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팟! 하고 떠오른 후에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과거 회상 전문가이니까요. 물론 몽땅 제 기준이니 정확도를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도심지를 벗어난 곳에 있는 개인 병원 의사의 사연이었습니다. 40대나 50대쯤 된 남자 의사가 주인공이었어요. 보통 키에 살집이 별로 없고, 안경을 쓴 아저씨였습니다. 그냥 정말 평범한 인상(의사니까 똑똑해 보였고요)의 아저씨였지요. 그 아저씨가 방송에 나오게 된 까닭은 안 그래도 바쁜 사람의 취미 생활이 과해도 너무 과해서였습니다. 그 아저씨의 취미 활동이 다 기억나지는 않아요. 종일 병원에 출근해 있으면서도 짬을 내서 피아노를 배우러 가고, 수영인지 자전거인지 운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서예인지 그림인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붓을 들고 하는 활동도 했어요. 퇴근 후에도 바빴지만, 일과 시간 틈틈이 계속 무언가를 배우고 예술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이 특이함의 핵심이었어요. 일상 자체가 빨리 감기로 움직이는 사람처럼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어찌 보면 조금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도 보였어요.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인 만큼 주변 사람들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갸웃,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왜 저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지 모르겠어요."


 제작진의 질문에 아저씨는 이런 식으로 대답했던 것 같아요. 시간은 별로 없지만 꼭 하고 싶은 게 너무너무 많다고요. 그래서 이렇게 일하다가도 피아노 학원으로 달려가고, 쉬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요. 다른 장면은 모두 희미해지고 아직까지도 선명한 순간이 하나 있다면, 그 아저씨가 파헬벨 캐논 변주곡을 열정적으로 연습하는 장면입니다. 연습을 많이 해서 별로 틀리지도 않는, 반듯반듯한 연주였어요. 아저씨는 연습한 분량만큼을 연주하고 또 바쁘게 진료실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 취미, 일, 취미.


 제가 피아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때때로 피아노를 치려고 애쓰는 건, 어릴 적의 꿈과 소망이 근원이지만. 텔레비전에 나온 이름 모를 의사 아저씨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피아노 연습할 시간이 없다고? 저렇게 바쁜 사람도 피아노를 배운다고! 이런 생각이 아주 깊이 새겨진 채로 살고 있었다는 느낌도 들어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면서 살려니 참 바쁩니다. 살림하고 애도 키워야 하고 돈도 더 벌어야 하는데 제대로 하는 것 없이 시간도 부족하고 바빠요. 그 와중에 잠은 또 어찌나 많은지, 어제도 11시간을 자버렸습니다. 아이고. 그래서 오늘 바쁜 와중에 그림일기 스케치를 좀 했고, 윙윙대는 청소기를 지켜보면서 메모장에 이 글도 좀 썼어요.


“에디토리얼 씽킹”을 하려고 애써보니 이 정도 생각밖에 나지 않더라고요.

 내 일상을 편집해 본다면 나에게는 챌린지와 취미 등 활동이 모두 에디팅! 일기 쓰는 방식이라든지, 스토리나 피드에 올리는 것, 블로그에 쓰는 것들과 브런치에 올리는 글들, 평화롭고 좋아 보이는 순간들의 합으로 만들려는 노력. 그렇게 하려고, 인생의 다른 부분들은 덜어내려고 애쓰는 일상. 왜 그리 애쓰느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그저 일상만 살기에는 너무 멋없고, 소확행 같은 단어에 의지하고 싶지도 않고, 또 대단한 꿈은 없어서 그런 거라고 밖에는 할 말이 지만 그냥 사라져 버리는 하루하루가 허무하니까 애쓰고 싶고, 그래도 별다른 결과가 없다는 걸 알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 진짜 아무것도 안 되니까. 뭐라도 되겠지, 안 되더라도 되겠지. 하는 정신으로 산다.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서 술술 읽히는 책, 자신감 있는 깨우침 덕분에 나는 거저 얻는 통찰이 가득 담긴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사실 좀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어요. 프로페셔널의 세계란 이렇게 근사하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지고,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듯한 두려움도 불거졌습니다. 인스타에서 에디토리 책으로 스터디하는 젊고 아이디어 넘치는 직장인들의 사진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 과하다는 것 잘 알지만 ‘뒷방 늙은이’의 심정이 되더라고요. 내 삶을 가꾸고 닫힌 생각을 여는 책으로는 이만한 책이 없겠지만, 이상하게 쭈구리가 되기도 하는 복잡한 마음으로 밑줄 그은 부분을 한 번 올려볼게요.


165쪽에 밑줄치고 별표 친 부분을 보며 자신감을 끌어올려볼까요?


세상을 보는 당신의 두 눈, 정보를 해석하고 세상과 호응하는 당신의 방식은 귀하고 소중하다. 뛰어나서가 아니다. 화려해서가 아니다. 유일해서다. 당신이 이 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렇다. 그러니 부디 질문하기를, 입장을 갖기를, 드러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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