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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Apr 30. 2024

걸으면 안 되는 길

틀린 길로 걷는 이야기




 많이 걷는 편이었다. 어릴 적에는 차를 타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이벤트로 여겨지는 산골에 살았다. 하루에 세 번 들어오는 버스와 아빠의 오토바이 외에는 탈 것이 없던 시절이 아니었더라도, 산골에서 자라는 어린이는 산과 들과 밭으로 쉼 없이 돌아다녔겠지만. 초등학교 6학년에는 친구들과 떼 지어 걸어서 두류공원에 소풍 갔고, 중학교 1학년에는 버스 안에서 북적대기 싫어서 한 시간씩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길 잃은 사람처럼 거리를 두르고 둘러 오래 걷기 시작한 때는 수능이 끝난 후였다. 학교에서 영화를 보며 슬렁슬렁 시간을 때우고 갈 곳도 할 일도 없는 채 점심 때면 교문을 나서야 했다.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이라는 목표로 친구와 3-4킬로씩 걷다가, 지치면 맥도널드에 들러 애플파이를 사 먹고 다시 집까지 걸었다.  거의 8킬로가 되는 거리를 걷고도 혼자 또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상가를 지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곳이 없는지 유심히 살펴보고, 전봇대에 꽂힌 교차로를 부지런히 뒤적였는데 내가 일할 만한 곳은 찾지 못했다.


 12월에 접어들어 날이 많이 추워진 시기에도 혼자 걷다가 지치면 그제야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사랑하던 만화책도 재미없게 느껴지던 허무의 시기. 김동률과 이적의 목소리를 들으며 신도시 개발 직전의 허허벌판을 끝없이 걸었다. 슬펐다. 슬픈 마음을 놓아버리고 싶지도 않았다. 우울에 잠긴 마음을 왜인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이리저리 걷던 시간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변변찮은 겨울을 보내고 들어간 대학생활에서 사람들과 부대낀 그 많은 시간들이 나의 일부가 되었지만, 걷는 시간이 기억에 살아남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소중했던 단짝 친구와 한밤의 골목을 걸으며 나눈 비밀보다, 누구도 모를 외로움을 껴안고 헤매는 시간에 내가 자라났을 거라고 우겨본다.

 남자 친구와 연애에 집착하던 시기에도 위기가 닥치면 걸었다. 정신줄을 부여잡고 잘 걸었으면 좋았겠으나, 그럴 때 술친구가 없으면 견딜 도리가 없어 걸었던 것이다. 답이 없는 전화기를 붙잡고 스스로도 질릴 만큼 긴 메시지를 보내며 거리를 걸었다. 인도가 이어지지 않은 자동차 도로 구석을 따라 걷다가 경적소리를 듣고 퍼뜩 정신을 차리지만, 적당히 걸을 장소에서 멀어진 지 한참이라 걸음을 이어가기도 했다. 구두를 신은 발과 다리의 통증이 아픈 마음의 슬픔을 넘어서도록 몇 시간을 걸으면서 깨닫는 건,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다르다는 뻔해빠진 진실이었지만 걸음이 멈추면 내 깨달음도 거기에서 멈추었다. 다 아는 문제를 진흙으로 덮어두고 물 같은 마음을 덮으면서 흙탕물을 마구 휘저으며 살아나갔다.


 세상이 험하다는 건 그때도 충분히 알았다. 그래도 겁 없이, 자기 파괴적인 심정으로 어둡고 외진 길로 걸었다. 될 대로 되라지. 그래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오늘도 지치기만 할 테지. 그 외에 나를 데리고 달랠 방법이 없던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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