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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Sep 12. 2024

추석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당신은 사라져 주세요.



 추석이 싫은 건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해서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를 도와 명절 준비를 해 온 나에게는 시가에서 하는 전 부치기 정도는 별 일이 아니다. 시어머니와 숙모님과 고모님이 주로 맡아하시는 일에 뒤집개를 들고 명태 전이나 두부를 슬쩍슬쩍 뒤집는 처지라 일을 한다고 하기에도 머쓱하다. 차례상 설거지가 힘들긴 하지만 손 느린 나를 기다리다 지치는 어른들 중 누군가가 도와주기 마련이다. 먹기만 하고 누워 있는 남편이 거슬리지만, 뭐 그건 명절이라서 특별한 풍경이 아니다.


 싫다는 말로 대신하고 있지만 실은 추석날 밤이 두렵다. 엄마 아빠와 동생들을 만나는 추석 점심까지는 즐겁지만, 남동생이 떠나가고 오후 시간이 되면 스멀스멀 우리 집에는 불안의 공기가 차오른다. 전통이란 말로 비꼬아 웃을 여유도 없는, 악습과도 같은 삼촌의 방문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수를 써도 인연이 끊어지지 않는 아빠의 동생. 내가 그를 본 건 7년 전이 마지막이다. 술에 취해 찾아온 그가 아빠를 붙들고 헛소리하는 걸 내가 나서서 정리하고 돌려보낸 추석날 밤 이후에 그를 본 적이 없다. 몇 해 전 경찰이 개입해서 드디어 다시는 안 만나게 된 줄 알았던 삼촌의 두꺼운 낯짝을 올해 다시 만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떻게 해도 떨쳐지지 않는다. 몇 달 전에 삼촌과 아빠가 화해(?)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물론 자식들 누구도 그런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아빠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말릴 도리도 없다. 다만 삼촌이 엄마와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당부할 뿐이다.


 자기 부모님을 죽이겠다고 위협한 사람을 친척 취급할 사람은 없다고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몇 번이나 받았던 술 취한 그의 전화, 명절이면 벌어지던 그의 술주정과 폭력적인 행패, 그의 존재로부터 말미암은 셀 수 없이 많은 엄마와 아빠의 싸움을 견뎌야 했던 나의 심정을 그에게 전해주고 싶다. 알코올 중독으로 마비된 그 멍청한 두뇌에 나의 경멸을 새겨 넣어 두 번 다시 나와 마주치지 않게 해주고 싶다. 나는 항상 삼촌의 장례식을 기다린다. 엄마 아빠보다 그가 먼저 죽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의 장례식에는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가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한다. 이런 내 악한 마음에 지치면, 수많은 악행과 위험천만하게 반복하는 음주와 음주 운전에도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있는 삼촌이 복권에라도 당첨되어 우리 집을 외면하기를 바란다. 어젯밤 빨래를 널다가 또 떠오른 삼촌, 그를 마주치면 할 말을 한참이나 머릿속으로 써 내려가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은 나와 상관없다. 아빠의 일은 아빠의 일이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나의 일이 아니다.


 추석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란다. 우리 삼 남매가 다가오는 모든 명절에 그를 떠올리지 않기를 바란다. 역시 내가 기다리는 건 부고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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