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보면서 떠벌이는 내 모습이 부끄러운 줄 몰랐던 시기가 아주 길었다. 중학생 때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나는 TV를 볼 때마다 토를 달았다. 내 목소리가 곁에 앉은 사람들에게는 민폐라는 걸 알면서도 움직이는 화면에 의견을 내지 않기가 어려웠다. 새끼 고양이를 보면 "어머, 귀여워!"하는 말이 튀어나오듯, 시시각각 변화하는 TV 영상에 반응했다. 40대 완연한 어른인 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입을 다물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지만, 고백하자면 여전히 쉽지 않다. OTT 시대로 접어들면서 TV 자체를 멀리하게 되었지만, 실은 지금도 텔레비전을 보면 자동으로 ‘어허!’ 소리가 터져나온다. “빼빼 마른 애가 무슨 다이어트약 광고냐? 저건 사기 아니야? 화면이 흉하구나. 요즘도 저런 드라마가 나와? 쟤들 놀고먹는 걸 무슨 재미로 보니? 또 노래 대결이냐?”
‘부정적 의견이 너무 많다.’라는 말은 쭉 들었다. 엄마와 아빠, 학교와 학원 친구들 모두 입을 모아 ‘너는 부정적이야!’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처럼 불쾌감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매일 9시 뉴스를 보면서 분노하지 않는 무덤덤함, 괴상한 예능프로그램의 알 수 없는 개그 코드에 웃을 수 있는 무던함 같은 것이 나에게는 부족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 불쾌감을 입 밖에 내지 않는 참을성이 없었다. 불편하잖아? 이상하지 않아? 부자연스럽고 어색하잖아, 왜 그냥 넘어가는 거야?
영화 비천무 포스터
수능이 끝나고 학교 바로 옆에 사는 한의 집에 놀러 갔다. 지루하고 허망한 마음에 사랑하던 만화책에도 애정이 식어버린 겨울날, 하굣길에 한을 따라가서 오후 내내 한의 방에 머물렀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반 친구들을 출석부 순서대로 평가하거나,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방법을 고심하면서, 어차피 수능 점수 맞추어서 갈 대학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어느 날 한의 어머니가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온 영화 ‘비천무’를 본 날이 떠오른다. 엄청나게 히트한 OST인 이승철의 ‘말리꽃’을 남긴 영화 비천무. 김희선과 신현준이 나온 무협 액션, 로맨스 영화였는데 20년 전이라 해도 CG가 민망하리만치 어색했다. 줄거리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개연성이 부족하게 느껴졌고 주인공 캐릭터는 고구마 답답이에 이상한 새드엔딩까지 골고루 서운한 영화였다. 곁에 친구 어머니가 앉아 계셔서 참는다고 참았는데도 말을 쉴 수가 없었다. “아, 설마 여기서 엇갈리는 거야? 연기가 영…, 진짜 뻔하네. 아이고….” 방귀를 참는 것이 이보다 쉽지 않을까 싶을 만큼 참기 힘든 실시간 감상평 남발에 한과 어머니가 질려가는 것도 생생히 느껴졌다. 그런데도 입을 다물 수는 없었기에 다음날 한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너랑은 영화 같이 못 보겠다고 하더라.” 민망해서 킬킬 웃었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하던 여름날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졸업한 선배들이 이끄는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여름방학이라 숙식하면서 유물 복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날은 동기나 후배들이 없이 나 혼자 선배들과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6시 내 고향’이 끝나고 흘러나오는 지자체 관광 상품 광고에 나는 또 입을 열고 말았다. “선비 체험? 유교 마을? 그런 곳에 간다고 애들이 예의가 생기나? 저건 또 뭐야? 뭐 저런 걸 판다고?” 내가 입을 다물지 않자 듣다 못 한 선배 하나가 웃으며 나를 달랬다. “수진아, 그냥 좀 보면 안 되겠나?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아?” 그제야 나는 머쓱하게 입을 다물 수 있었다. 속으로는 이런 말들을 삼키면서. ‘보는 사람들을 설득한답시고 함부로 비웃는 광고들, 잠자코 볼 수 있다고? 봐도 안 본 듯이 들어도 안 들은 것처럼 편하게 넘길 수 있다고? 믿을 수 없어. 나를 잡고 흔들려고 하는 저 화면들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두둥!
시간이 흘러도 텔레비전에 무덤덤해지기에 실패한 나는 텔레비전 전원 끄기를 선택했다. 나에게 제멋대로 아무 말이나 집어던지는 TV는 내 말에 화답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을 오랜 세월 끝에 깨닫고 TV를 껐다. 홀린 듯 입을 벌리고 보던 뮤직비디오와 패션 채널, 카메라 앞에서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들과 내 알 바 아닌 세상 소식들에 무심해지기로 했다. 사람들은 다들 요즘은 그게 훨씬 더 심하다고, SNS가 삶을 좀먹는다고 난리다. 물론 게시판과 인스타에 내 영혼이 얼마나 털렸는지는 말해 뭐해 입 아프겠지만 내게는 텔레비전 시절보다 인터넷 시대인 지금이 평화롭다.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으로 무분별하게 인연을 맺고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던 시절을 지나,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며 오프라인 지인들의 적극적 유입을 막은 작고 소중한 나의 온라인 삶은 대체로 평온하다. 막을 도리 없이 꼴 보기 싫은 광고와 더러운 스팸 메시지를 부지런히 차단, 신고, 삭제하며 밉지 않은 일상과 아끼는 취미로만 채우는 블로그와 인스타에 만족한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발견하는 재미있는 콘텐츠 따위는 필요 없다. OTT와 IPTV에 찜해 둔 영화와 드라마들, 리뷰를 보고 저장해둔 작품들의 리스트가 끝이 없으니…. 책도 읽어야 하고 그림도 그려야 하고 이런 글도 써야 하니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구시렁댈 시간이 없다.
아이가 새로 나오는 티니핑 시리즈를 본방 사수해야 하는 수요일에는 별수 없이 어린이 방송 채널을 튼다. 아이들을 현혹하고 어른들을 괴롭히는 장난감 광고들이 눈 시리게 현란한 색으로 납작한 화면을 채울 때면 옛날 버릇이 튀어나온다. “저런 쓸데없는 완구를 만들어 팔다니, 무슨 광고가 이렇게도 많이 나오냐?” 친정에 가면 엄마 아빠가 보는 TV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서 리모컨으로 볼륨을 줄이거나 TV를 끄게 한다. 시가에 가면 내 맘대로 텔레비전을 끌 수도 혼자 방에 들어갈 수도 없으니, 소파에 기대앉아 책을 펼친다. 시끄러운 뉴스 소리와 생활 소음에 둘러싸여 책에 집중하려 애쓰면 선생님 눈을 피해 몰래 만화책을 읽을 때처럼 한층 즐거운 독서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불쑥불쑥 TV를 향해 탄식하고 비꼬는 말을 던지게 될 때 흠칫 놀라며 또 그 순간들의 기억을 떠올린다. 클리셰 범벅인 비천무의 로맨스에 역정을 내는 나와 영화 감상을 방해받은 한이 어머니의 참는 표정, 힘든 일과 후에 TV를 틀고 멍하니 쉬는 발굴장 사무실에서 텔레비전보다 시끄러운 나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