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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오니다온 Jul 14. 2020

<사랑이 뭘까?>

사랑에 빠지면 늘 비참해졌다. 욕심이 생겨서였다.


나는 삐뚤어지지 않은 방식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관해 길고 긴 생각을 이어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는 부모의 불완전한 – 다르게 표현하자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방식의 – 사랑에 올바르게 대처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에서 시작한 생각은 그때의 미숙함이 평생 내게 있어 사랑의 정의가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걸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은 어디로부터 시작되는지까지 무질서하게 뻗어 나간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소유와 사랑이 동의어가 되는 것이 끔찍했다.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나의 모든 것을 통제할 이유가 되는 것이 무서웠다. 내가 배운 사랑의 모습은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나는 자꾸 비참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내가 경험한 사랑이 너무 달라서, 그 간극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미끄러졌다. 일그러진 모습의 사랑을 하느니 차라리 사랑하지 않고 싶었는데, 사랑 없는 삶은 너무 삭막하니까, 나는 그 양가감정을 견뎌내는 시간 속에서 자꾸만 일그러졌다.


사랑이 뭘까? 연애와 사랑이 동의어이길 간절히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 날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그런 날들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쳐 부산에 있었다. 그때 나한테 나타나 줘서 너무 고마운 영화였다.



테루코는 사랑에 빠지면 오직 사랑하는 대상만이 삶의 우선순위에 놓이는 여자다.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만난 마모루와 사랑에 빠지지만 정작 마모루는 자신이 필요할 때만 테루코에게 연락을 한다. 그의 행동에 마음이 싱숭생숭하지만 마모루에게 연락이 오면 테루코는 바로 달려 나가고, 그의 작은 언행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동거까지 하게 된 후에도 마모루가 그들의 관계를 연인으로 정의하지 않은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제멋대로 몇 달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불쑥 깊은 밤 테루코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바로 나와줄 수 있느냐’고 묻는 마모루는, 그 자리에서 테루코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스미레를 소개한다. 상대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는 마모루의 태도에 테루코는 괴로워하지만 마모루는 오히려 ‘너 같은 성격은 조금 힘들다’며 테루코의 불평을 일축한다.



물론 테루코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마모루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테루코의 마음을 알면서도 육체적인 관계나 생활의 편의를 위해 그녀를 이용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테루코의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모루를 사랑하는 것이 테루코의 잘못은 아니다. 영화 말미에서야 마모루는 자신의 불분명한 행동이 테루코에게 얼마나 상처였는지를 깨닫고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한다. 그러나 테루코는 크게 웃으며 내가 아직도 너를 좋아하는 줄 알았냐고, 언제적 얘기를 아직도 하냐는 거짓말로 마모루와의 관계의 끈을 놓지 못한다.



이제 테루코는 어디로 가야 할까? 대체 제멋대로인 마모루를 왜 그렇게나 사랑하게 된 걸까? 감정의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아니 사실 당사자마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테루코는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사랑인지도 확신이 없지만, 감정의 이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마음이 사랑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는 걸까.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그 비참함을 견뎌내는 것일까. 대체 사랑은 뭘까? 질문으로 시작한 영화는 어김없이 질문으로 끝나 버린다.


그렇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갔을 때, 나는 여전히 사랑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사랑이 아닌 것들은 조금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테루코도, 마모루도 사랑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너도, 나도 사랑 같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네 이름을 보고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S는 나를 토닥였다. 이유도 모른 채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니던 너를 향한 감정이 뚝, 끊기는 순간이었다. 나는 더 이상 비참하지 않았고 아직 쌀쌀한 광안리 바다 앞을 자유롭게 달렸다. 어떤 영화를 만나는 건 그 자체로 운명 같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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