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끝자락
아이러니하게도 불행의 시작은 행복의 끝과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막 집을 사서 이사를 한 참이었고, 뮌헨과의 접근성이 좋은 근교, 아이들의 Grundschule (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바이에른 주에서는 4학년까지 다닌다), Gymnasium(중, 고등학교 과정이 합쳐진 대학입학을 목적으로 들아가는 학교, 바이에른 주에서는 5-13학년이 다닌다)이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고, 공을 들여 리노베이션 한 덕에 막 샵을 다녀온 연예인처럼 단장을 한 새집 같은 헌 집이었다. 그 간의 고생이 싹 잊히는 것이, 출산 후 아이를 안고 고통을 잊은 산모 같았다. 아이들 학교, 유치원이 가까운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조건 중 하나였다. 애가 셋이나 되는데, 애들 등, 하교에까지 에너지를 쓰고 싶진 않았고, 이를 테면 우리에게 역세권보다 학세권(오로지 거리에만이 고려 사항이긴 했지만)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깔끔한 집에 들어와 하나하나 정리를 하다 보니 내 인생도, 마음도 착착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민 생활 챕터 2를 시작하는 거야!
생각해 보면, 인생이 책의 목차처럼 챕터별로 쫙쫙 나눠져 있지도 않고, 굳이 따지자면 너무 많은, 굵직한 전환점들이 줄을 지어 서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은 큰 의미가 없었지만, 여하튼 마음을 다잡기엔 충분한 구호였다.
민트-큰 아들의 별명이다-의 4학년 담임 선생님은 수학 특성화 Gymnasium으로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가까운 학교를 포기할 수 없었다. 사실, 학교가 거기 있어서 그리로 이사 갈 집을 정했는데, 버스와 U-bahn(한국의 지하철에 해당하는 대중교통)을 타고 다녀야 하는 학교를 간다는 게 우리로서는 선택 가능한 옵션에 들어 있지 않았다.
막내아들은 유치원 자리를 받았고, 둘 째는 무리 없이 전학 수속을 마쳤다. 민트도 4학년 시험 때 몇 번 아빠의 도움을 받은 덕에 충분한 점수로 Gymnasium(바이에른의 Gymnasium은 입학 시 4학년 때 성적을 가지고 당락을 결정짓는다)에 자리를 받을 수 있었다.
바이에른 주의 학교들을 9월 둘째 주 화요일에 동시에 입학과 개학을 한다. 나는 둘째를 학교로, 막내를 유치원으로 보내놓고, 조금 늦게 큰 아이의 입학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입학식은 그새 끝무렵이었고, 먼저 가 있던 남편에게 입학식의 분위기를 들으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놀랍게도 그 학교 입학생 중에 한국인이 우리 아이를 포함 세 명이나 있었다! 이전 마을에선 상상도 못 해 본 일이었다. 그곳에선 동양인도 만날까 말까, 드물었다, 세상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는 중국인들도 한 두 가정 정도로 적은 곳이었다.
얼마나 든든한지.
한 아이는 예전에 인연이 있어 원래 알고 지내던 가정의 아이였고, 다른 한 명은 이 마을에 꽤 오래 살고 계셨던 분들의 아이인 것 같았다. 한국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학교 앞에 자연스레 모였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엄마들은 카톡 아이디를 교환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렇듯 순풍에 돛 단 듯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이렇게 행복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을 줄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이 나의 불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