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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oy Oct 15. 2024

그러니까 같은 반이 됐단 말이지!

오, 같은 반에 한국 아이가 있다고!

이 이야기는, 변화를 싫어하는 독일인들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야겠다. 


독일인들은 정말이지 변화를 싫어한다. 이것이 유럽 전체의 특징인지 독일만의 특징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느낀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는 속도, 아우토반(Autobahn- 독일의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자동차들은 무려 180km를 달리는 내 차 옆도 씽 하고 지나쳐 가는데, 그 외의 모든 부분은 슈퍼카와 경운기의 경주를 보는 느낌이랄까. 놀랍게도 벤츠와 BMW의 독일이 경운기 역할이다. 독일에 와서 적응해야 할 중요한 이슈였다. 그중에서도 변화의 속력은 느리다 못해 그저 멈춰 있는 것만 같은데, 그러한 특징은 카페 메뉴가 잘 보여준다. 


Espresso, Tasse Kaffee, Capuccino, Milchkaffe, Latte Macchiato, Tee..


이게 다다. 

메뉴의 내용은 이런 건데, 에스프레소, 그냥 커피, 카푸치노, 우유커피, 라테 마키아토, 차. 

게다가 나같이 둔한 사람은 카푸치노와 우유커피, 라테 마키아토까지도 그 차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맛이 비슷하다. 저 메뉴에서 커피 양에 따라 옵션이 두 개(Groß, Normal - 큰 거, 보통 거), 뭐 따뜻한 우유나 코코아 정도도 있기는 하다. 점점 더 다양해지고, 그래서 각 카페가 자기들 만의 시그니처 메뉴와 매 시즌 새로이 개발되는 음료가 있는 한국의 카페는 한 번씩 방문할 때마다 "여기가 찐 한국이구나!"를 느끼게 한다. 


이렇게 변화를 싫어하는 땅에서 어떻게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아차차, 두 개다 독일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지! 


그렇게 된 이유로 여기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할 때 함께 반이 되고 싶은 친구를 적을 수 있는 기회를 받게 되는데, 새로운 친구, 또한 변화이기 때문에 변화를 극도로 싫어-혹은 두려워- 하는 이들이, 새로운 학기, 학년에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최소한으로 하고자 하는 장치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오, 같은 반에 한국 아이가 있다고!


같은 반에 한국인 아이가 있다는 것은 입학하기 전 주 금요일 학교 벽에 붙어 있는 신입생 반편성 공지에서 알 수 있었다. (보아라, 반편성을 온라인으로 알려주지 않고, 종이에 프린트해 학교 벽에 붙이는 이 고전미를!) 영어식, 혹은 독일어식 이름이었지만, 한국인의 성이었다. 

어떤 아이일까, 남자 이름인데, 어디 살까? 너무 잘됐지 뭐야! 

들뜬 가족들은 이런저런 질문과 예상을 쏟아 놓으며 이름 밖에 모르는 큰 아이의 같은 반 한국인 아이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7개 반 중 한국인 두 명을 같은 반에 붙여 놓은 이유는, 추측 건데, 전학 온 민트를 위한 학교 측의 배려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 같이 반 되고 싶은 아이를 적어 낼 수 있었던 토박이 아이들은 다 끼리끼리 이미 친구 그룹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동네 애들도 하나 모르는, 입학식날 떡 하니 나타난 동양인 아이가 그 사이에서 새 친구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거란 예상을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거기까지 배려해서 반 배정을 해 줬다고? 정말이지 다정한 시작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민트는, 한국인 아이(이제부터 우리는 그 아이를 T라고 불러보자)와 단짝이 되어서, 옆 자리에 앉고, 같이 놀고, 같이 밥 먹고, 도시락 메뉴도 공유했다. 당시 코로나 상황으로 학교 식당(Mensa)을 운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침, 점심 두 개의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녀야 했다. 게다가 그쪽 엄마는 다양하고 손이 많이 가는 한식메뉴를 자주 도시락으로 준비해 주었기 때문에 T는 민트의 부러움을 샀고, 나는 부담스러웠지만 슬쩍 모른 척, 부담되지 않는 선의 도시락, 이라는 기조를 유지했다. 게다가 둘이 서는 한국어로 대화했다. 그 아이는 독일에서 나고 자란 교포 2세, 민트도 이미 독일 생활에 꽤나 적응한 시기였는데도 한국 아이를 만나면 한국어를 쓰고 싶은 본능이 그들의 피에 흐르고 있었나 보다. 급기야 선생님에게 다른 아이들이 함께 있으므로, 둘이만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로 대화하기보다는 독일어로 대화하기를 권장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글쎄,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담임 선생님의 권장사항이기에, 그녀의 기분을 거슬러서 좋을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에 민트에게 그 사실을 전달했다. 민트는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보통 독일의 김나지움은 일주일에 한두 번만 오후 수업(선택 특별활동)이 있고, 오후 1시에는 정규수업은 끝이 난다. 하지만 OGS(Offene Ganztagschule) -학교에 따라서는 OGtS라고 부르기도 함-라는 제도가 있어, 신청한 아이들에 한해 오후에 학교에서 함께 숙제도 하고, 남아 있는 아이들끼리 놀기 도하는, 한국으로 치자면 방과 후 교실 같은 것- 이 있다. 우리의 민트와 T는 둘 다 OGS를 신청한 소수의 아이들에 속했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신청하는 사람이 적고, 아이들은 대부분 정규 수업까지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 개인 시간을 가진다. 그 시간은 대부분 운동 클럽, 악기 레슨, 봉사 활동, Praktikum(인턴쉽)으로 채워지고, 숙제와 복습, 시험 준비와 같은 공부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물론 개인차가 크게 날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사회 전체 분위기가 공부를 강제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 한국과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민트의 숙제를 챙길 능력도 에너지도 없었고, 이용할 수 있는 학교의 서비스(?)는 모두 이용하고 싶었기 때문에 OGS를 선택했고, 아이도 그다지 불만은 없었다. 그렇게 평화롭게 이어지고 있던 일상은, 한 통의 전화로 헤어나기 힘든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평화는 야속하게 짧았고, 인생이 "늘 그래왔듯"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혹독한 수업이 시작됐다. 


계절은 여전히 가을에 머물러 아름답기만 한데, 속 시린 겨울이 그렇게 빨리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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